여는글
도덕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의 부동산 투기 사건으로 민심이 들끓고 있다. 정권의 신뢰는 바닥이다. 변칙과 반칙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 새삼 한 사회의 청렴지수를 생각하고 개개인의 수준을 생각하게 한다. 투기 당사자들에게 묻고 싶은 말은 단 한 마디다. “아니, 먹고살 만한 분들이 왜 이러세요?” 아니, 하나 더 묻고 싶다. “이런 짓 하려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셨어요?”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정을 저지르는 연유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렇게 진단한다. 청탁이나 압력으로 뇌물을 받는 행위, 그 내면에는 단순히 재물 축적의 탐욕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심리가 작용하는가? 존재감의 확인과 자기만족이 내면에 자리하기 때문이라 한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럴듯하다. 청탁을 받으면 ‘내가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차명으로 투기를 하거나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하여 합법적 반칙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구나’ 속된 말로 ‘해 먹는/해 먹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라는 의식이 작동하지 않을까?
“이제, 나도 해 먹는 사람이다” 조정래 소설 〈한강〉에서 읽은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내용은 이렇다. 빈궁한 시골살이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남자가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우여곡절 끝에 쌀가게에 취직했다. 날마다 가정에 쌀을 배달하며 성실하게 일하니 주인의 신뢰를 얻었다. 남자는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다.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조금씩 훔친 쌀을 모아 되팔았다. 그렇게 적은 돈이 생겨 마음이 흡족했다. 부수입도 유용했지만 자신도 이제 ‘해 먹는’ 위치에 있다는 생각에 우쭐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는 결국 좀도둑질이 들켜 해고된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정의 평범성’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마도 내심 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투기 행위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진정 청렴하고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동시적 해법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는 하루속히 ‘이해충돌방지법’ 같은 법 제도를 굳건히 정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 반드시 필요한 항목은 개개인의 ‘도덕성 확립’이다. 도덕과 윤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현재 진행형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간디는 ‘일곱 가지 사회악’을 말하면서 ‘도덕 없는 경제’를 지적했다.
일곱 가지 사회악은 무엇인가? 1925년 잡지 〈영 인디아Young India〉에서 간디는 사회악을 이렇게 정의한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윤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종교’. 이는 다시 말하면 모든 분야에서 도덕과 윤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와 교육, 과학과 경제에도 도덕과 윤리는 필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최고의 지식과 정보, 첨단의 과학과 기술이 넘쳐나고 있다. 똑똑함과 잘남이 득세하고 있다. 그런데 삶의 질은 어떤가? 과연 그에 비례하고 있는가? 무지와 탐욕의 끝은 늘 초라하고 슬프다. 이번 투기 사태는 현상적으로는 개인과 집단의 일탈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도덕 없는 경제와 인격 없는 교육에 있을 것이다. 전제 없는, 전제가 잘못된 행위의 결말을 성찰해야 할 때다. 그러므로 도덕은 결코 박제된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다. 진짜 품격 있는 삶은 상식과 진실에 있다.
그러니 제발 정신 차리고 살자.
글.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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