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5년 07-08월 2025-07-07   16619

[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프레드릭 더글러스 : 저항이 된 얼굴 사진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고민하는 글쓰기와 창작 활동을 한다.

20대의 더글러스

적극적으로 찍히자

사진을 찍거나 혹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작가이며 찍히거나 그려지는 사람은 모델이다. 모델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수동적인 위치에만 있어야 할까?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엘로이즈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에게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라고 되묻는다. 모델에게도 시선이 있다.

19세기 중요한 발명 중 하나는 바로 사진이다. 1839년 루이 다게르에 의해 소개된 다게레오타이프는 노출 시간을 20분으로 줄여 사진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노출 시간이 줄어들자 일상에서 실용적으로 쓰이게 되었고 초상화를 그리기보다 카메라 앞에 앉는 유명인사들이 늘어났다. 그 덕분에 우리는 19세기를 살아온 인물들의 얼굴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19세기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초상 사진을 남긴 사람은 누굴까.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던 링컨보다 더 많은 사진을 남긴 인물은 노예해방 운동가인 프레드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8~1895다. 그는 사진작가가 아니지만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와 초상이라는 장르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더글러스는 흑인으로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가졌다. 주 아이티 대사로 임명되면서 미국의 첫 번째 흑인 대사가 되었으며,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연방정부 임명직으로 일했던 정치인이다. 그리고 그는 미국에서 최초로 잡지 표지 사진에 등장한 흑인이다. 1883년에 〈하퍼스 위클리〉 의 표지에 등장한다. 더글러스는 당시에 그 어떤 유명한 백인보다 많은 사진을 남겼다.

그에 앞선 1863년 ‘하퍼스 위클리’에 ‘고든의 상처 난 등 사진’이 실렸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게 돌아선 한 남자의 등이 찍힌 사진이다. 수없이 채찍으로 맞아 생긴 울퉁불퉁한 흉터가 등을 뒤덮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에 충격을 주었고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도망노예법 폐지를 지지하는 흑인 운동가들은 물론이고 많은 백인들도 이 사진을 활용했다. 실제로 ‘고든의 상처 난 등사진’을 통해 드러난 흑인의 비참한 몸은 사람들에게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람을 착취하는 노예제를 고발하기 위해 흑인의 몸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사진의 주인공인 고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정보가 없다. 도망쳤다가 잡혀서 주인에게 채찍을 맞아 심하게 망가진 그의 등만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피해자의 몸’으로 남았을 뿐 그의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40대의 더글러스

저항이 된 얼굴 사진

더글러스는 비참한 피해자의 몸으로 전시되는 대상화 된 흑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인격체로서 인물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정장을 갖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앉아 제 모습을 남겼다. 그의 ‘사진 찍기’는 평생에 걸쳐 그가 쌓은 일종의 시각적 운동이며 자서전이다. 수년 전 나는 운이 좋게도 더글러스가 전 생애에 걸쳐 찍은 사진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만났었다.

미국 보스턴의 파크 스트릿 역에 내려 부촌으로 유명한 비콘 힐 동네를 찾아갔다. 금빛 돔으로 빛나는 메사추세츠 의회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언덕길을 따라 걸으면 흑인 역사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1963년에 첫 전시를 한 이 박물관은 미국 동부에서 흑인 역사를 정리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2016년 이 곳에서 ‘프레드릭 더글러스 초상 사진전’이 개최되었다. 더글러스가 평생 동안 찍혀온 사진을 만날 수 있었다. 더글러스는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이 초상 사진의 기획자라고 할 수 있다. 더글러스는 이미지가 가진 운동성을 알아챘다. 권력을 드러내는 권력자의 초상화와는 달리 소수자의 외모를 공적 영역에 권위 있게 노출시키기는 일종의 운동 방식이다. 더글러스에게 사진은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정치적 도구였다.

미국에서는 1850년대 중반 즈음 거의 모든 도시마다 사진 스튜디오가 들어섰다. 더글러스의 첫 번째 사진은 1841년에 찍은 것으로 기록된다. 1895년 사망할 때까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초상 사진을 찍었다. 20대의 젊은 모습부터 그의 머리와 수염이 흰 색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나 마지막에 삶이 끝난 뒤 누워있는 모습까지 이어진다. 그는 1895년 2월 20일 사망했는데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의 날짜는 21일이다. 이미 고인이 된 그는 이전의 사진들처럼 앉지 않고 단정하게 누워있다. 일평생 사진을 촬영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남아 있지 않다.

소수자의 초상화는 시각적 재현의 권력에 균열을 만든다. 프레드릭 더글러스가 남긴 얼굴의 영향력은 흑인 사회에 꾸준히 이어졌다. 랠프 앨리스의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에도 그의 초상화가 언급되며 20세기에 다른 흑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채찍으로 맞은 상처 입은 몸이 아니라 진중한 눈빛을 가진 인격체로 보이고자 꾸준히 애써온 창작자들의 흔적이다.

더글러스는 비참한 피해자의 몸으로 전시되는 대상화 된 흑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인격체로서 인물을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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