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힐마 아프 클린트 : 추상이 명상이 되는 순간
글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고민하는 글쓰기와 창작 활동을 한다.

명상의 시간
미술관은 가끔 명상의 장소다. 머릿속의 잡생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온전히 시각언어 앞에 서 있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인간은 왜 미술이라는 세계를 만들었는지 근본적인 질문 앞에 놓인다. 물론 대중적으로 너무 인기 있는 전시의 경우 명상은커녕 감상조차 어렵다. 10월 26일 막을 내린 부산현대미술관의 〈힐마 아프 클린트 : 적절한 소환〉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10점의 대형 그림’(1907) 앞에서 한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이 그림은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인간의 삶을 네 단계로 나누어 10점의 대형 그림으로 표현한 추상화이다. 중년을 통과 중인 내 삶은 이 그림들 중 어디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는 스웨덴에서 태어나 12세부터 미술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 19세기 여성에게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스톡홀름 아카데미에서는 1864년에 처음으로 여학생 입학이 허가되었는데 유럽에서는 이른 축에 속한다. 오늘날 스웨덴의 국민화가로 불리며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카를 라르손은 여성이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1889년 그는 여학생을 학교에서 몰아내겠다는 편지를 쓰기도 했을 정도이니 여성들이 미술을 배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환경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성별이 큰 장벽이던 시절이지만 아프 클린트는 다앙한 방식으로 미술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흥미롭게도 아프 클린트의 예술세계에서는 영성과 과학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식물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보이는 세계를 세심히 관찰하는 한편 신지학에 대한 사유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해갔다. 신비하다는 말은 그의 광활한 작품 세계를 다 담지 못하는 듯 하다. 때로는 수학적으로 정교하고 때로는 흐드러진 풀잎처럼 자유분방하다. 그에게 미술은 지적 탐구이며 동시에 영적인 활동이었다. 게다가 열 여덟살에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고 그로 인한 상실감은 아프 클린트에게 일찍부터 영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도록 했다.
1906년 44세인 아프 클린트는 첫 번째 추상 회화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최초의 추상화가로 알려진 칸딘스키의 작품(1910)보다 앞선 시기이다. 1906년 아프 클린트는 ‘신전을 위한 그림들’이라는 작품을 제작했고 1915년까지 연작을 만들었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5인회’의 동지들이 이 작업에 협력하기도 했다.

여성 그룹 결성
아프 클린트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대체로 여성들과 어울려 살았다. 여성들과의 돈독한 우정이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아프 클린트의 삶에서 내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1896년 여성 작가 5인이 모인 ‘5인회De Fem’라는 그룹 결성이었다. 시그리드 헤드만, 마틸다 닐손, 닐손의 동생인 코르넬리아 세데베리, 그리고 안나 카셀과 아프 클린트이다. 그들은 모여서 함께 기도를 하고 신지학 관련 책을 읽거나 강령회에 참석하곤 했다. 신지학은 19세기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비주의 철학이자 종교운동의 하나다. 5인회 회원들은 마치 어떤 영적인 존재가 자신들에게 말을 건다고 여기고 그 말을 전달하는 매개자처럼 작업했다. 이들의 작업방식은 20세기 초 결성된 초현실주의 운동보다 앞서 자동기술법을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5인회의 친구들 중에서도 안나 카셀은 아프 클린트에게 중요한 친구다. 두 사람은 함께 신지학에 몰두한 동료이며 예술적 영감을 나누는 친구로 평생의 동반자나 다름없다. 카셀은 아프 클린트의 생애 대부분 동안 재정적으로도 지원했다. 특히 스톡홀름 근처의 뮌쇠Munsö 섬에 새로 지어진 작업실 건립을 도왔으며, 이 작업실은 1917년에 개관했다. 아프 클린트가 사망했을 당시, 그의 그림들이 보관되어 있던 장소이다.
아프 클린트는 영적인 회의나 모임을 통해 전시를 하곤 했지만 왕성한 작업량에 비하면 생전에 전시회에 자주 참여하지 못했다. 참여하더라도 ‘10점의 대형그림’ 같은 야심찬 작품보다는 당시의 취향에 더 어울리는 작품을 출품하곤 했다. 아프 클린트는 자신이 이 세상에 너무 앞서 온 존재라는 걸 알았던 걸까. 어떤 작품은 자신이 죽은 후 최소 20년이 지나기 전까지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944년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오랜 세월 주류 미술사에서 잊혀졌어도 그의 세계는 우주에 남아 이렇게 소환되었다.
아프 클린트는 조카에게 1200점이 넘는 작품과 125권의 일기장을 남겼다. 일기장 안에는 평생에 걸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그의 생각과 연구가 담겼다. 사후 75년이 지난 2019년 구겐하임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구겐하임 미술관 60년 역사 중 가장 많은 관객이 찾아왔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은 2021년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여성과 추상〉 전시에도 포함되었다. 아프 클린트는 이제 최초의 ‘여성’ 추상화가가 아니라 미술사에서 최초의 추상화가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신비하다는 말은 그의 광활한 작품 세계를 다 담지 못하는 듯 하다.
때로는 수학적으로 정교하고 때로는 흐드러진 풀잎처럼 자유분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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