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1-02월 2025-12-31   73396

[회원 인터뷰] 중요한 것은 깃발을 내리지 않는 마음 – 황예린 회원

글 박효원 / 사진 차종관 공익저널 기자

참여사회와 인터뷰 하며 환하게 웃고있는 황예린 회원의 모습.
ⓒ차종관

역사책에 오래오래 기억될 역동의 2025년, 시민들은 끝내 비상계엄을 막아내고 대통령 파면을 끌어냈다. 민주주의를 제자리로 돌리려는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 광장은 들썩였고,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어김없이 참여연대 깃발이 나부꼈다. 이 자리에 매일같이 함께한 사람이 있다. 2025년 회원송년회에서 ‘참여파워상’을 받은 황예린 회원이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부터 뒤늦게 찾아온 탄핵의 봄까지, 그는 집회에 단골로 출석했다. 집회·시위를 업으로 하는 참여연대 상근활동가들도 모두 놀랐다.

이렇게 참여연대와 함께 시작된 황예린 회원의 활동은 한 해 동안 꾸준히 넓어졌다. 어찌 보면 이제 그의 활동 영역이 참여연대를 넘어선 것처럼 보일 정도다. 봄부터는 ‘방구석 탐조인 연합’이라는 자신의 깃발을 들고 광장에 섰다. 마침내 파면이 선고되고 사람들이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진 뒤에도 깃발을 내리지 않았다. 다시 추운 겨울이 찾아온 지금도 그는 열심히 집회 현장을 찾아다닌다. 그가 선택한 일상은 안온하고 평화로운 하루가 아니다. 함께 외치고 함께 싸우고 함께 버티는 삶이다.

크고 작은 투쟁 현장에서 힘차게 휘날렸을 깃발에는 2025년 내내 황예린 회원이 투쟁해 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만든 지 1년도 안 됐는데 어느새 그의 깃발은 꽤 낡고 닳아 있었다. 마치 수년간 투쟁 현장을 지킨 것처럼 보이는 깃발을 보면, 그리고 익숙하게 깃발을 펼쳐 보이는 황예린 회원의 모습을 보면 “계엄 이전까지는 사회적 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2025년은 한국 역사는 물론 황예린 회원의 인생사에서도 변곡점이 될 듯하다. 귀여운 새 이야기에 눈을 반짝거리는 ‘방구석 탐조인 연합’ 기수, 대학 연구자의 노동환경을 고민하는 대학원생노동조합의 조합원, 전국 곳곳의 집회 현장을 누비며 함께 투쟁하는 열혈 시민,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여연대의 청년회원.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은 1년 새 조금씩 길어졌고, 앞으로는 더 길어질 듯하다. “1년이 마치 10년처럼 지났다”는 황예린 회원을 만나 숨 가쁘게 투쟁하고 연대해 온 2025년을 돌아보았다.


2025년 회원송년회에서 ‘참여파워상’을 받으셨어요. 참여연대 활동에 가장 많이 함께한 회원님께 드리는 상인데, 탄핵촉구집회에 얼마나 열심히 나가면 이런 상을 받을 수 있나요? (웃음)

일단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기 전까지는 거의 매일 나갔고, 그 뒤로도 주말 집회의 60~70%는 나간 것 같아요. 오히려 주말엔 약속이 있어서 빠지기도 했는데, 집중투쟁기간에 진행된 평일 집회는 거의 나갔어요. 정말 간절했거든요. 이전 세대가 그리고 우리 세대가 함께 쌓아온 사회적 가치들이 비상계엄 선포 한 번으로 무너지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보다 집회에 많이 나간 분들도 있고, (집회 참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제가 눈에 띄어서 상을 받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송년회 당일까지 제가 ‘참여파워상’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뭔가 상을 받는다는 건 알았죠. 꼭 참석해야 한다고, 참여연대로부터 미리 연락받았거든요. 원래는 선약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는데, 상 받아야 하니까 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그때도 무슨 상인지는 끝내 얘기를 안 해주셨어요. 송년회에 갔더니 식순에 제가 수상자로 나와 있어서 그제서야 알았어요.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나갈 수도 있는데 참여연대와 함께한 이유는 뭘까요?

2030세대 안에서 정치·사회적 입장의 차이가 크잖아요. 또래 중에서 집회 나간 사람이 소수예요. 또 제 친구들은 집회에 나갈 여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고요. 그렇다고 혼자 나가긴 싫었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국가가 언제 폭력을 행사할지 모르니까요. 이명박정부 시절에 제가 중학생이었는데, 당시 부모님을 따라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나간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차벽을 세우고 골목을 막았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시민들이 경찰 방패에 찍혀서 부상당했다는 이야기도 듣고. 그 뒤로 공권력에 대한 공포가 생겼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그전 해인 2023년에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하고 조금씩 활동에 참여해서 친밀감이 좀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편하게 참여연대와 함께 집회에 나가게 되었어요. 게다가 이럴 때일수록 여럿이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이 나서는 것도 좋지만 조직력이 있으면 더 좋잖아요. 함께 있으면 목소리도 힘도 커지니까요.

오랫동안 광장을 지켰으니 기억에 남는 집회가 많겠네요. 탄핵 선고가 지연된 시기, 그러다가 결국 파면 결정이 나온 순간에도 마음이 남달랐을 것 같고요.

선고가 자꾸 지연되니까 아무래도 집회 분위기도 늘어지더라고요. 어떻게 원동력을 만들어야 하나 싶었어요. 제가 환경영향평가 관련 일을 하는데 업무 특성상 5월부터는 바쁘거든요. 그러면 제 에너지도 줄어들 거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사정 때문에 탄핵 촉구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겠죠. ‘그렇게 되면 어쩌지? 이러다가 혹시 탄핵이 안 되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이 있었어요. 다행히 4월 초에 파면이 되었죠. 저는 선고 당일에 연차를 내서 전날부터 철야를 하면서 현장에 있었어요. 문형배 재판관이 주문을 읽을 때 주변이 싹 조용해지더라고요. 짜릿한 기분이었죠. 선고가 나오니까 다들 웃고 소리 지르고 춤추고.

그런데 그 순간에 저는 당연히 기쁘면서도 걱정이 먼저 들었어요. 우리 사회의 부식된 부분, 무너진 부분들이 계엄과 탄핵을 거치면서 제대로 드러났잖아요. 이전부터 쌓여온 문제들이죠. ‘이런 상황을 수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 과연 이게 될까? 된다고 해도 얼마나 오래 걸릴까?’ 그런 게 걱정이었어요. 계엄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된 것 같아요. 내란재판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책임을 피해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이번 광장을 통해 함께하는 사람도 많다는 게 희망이죠.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보다 남태령 집회예요. 딱 작년(2024년) 이맘때네요. 밤은 못 샜는데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나갔죠. 제가 현장에 갔을 때는 인원이 2000명도 안 됐는데 오후에 대열을 보니까 사람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결국 길이 열리고 그 많은 사람이 함께 행진했죠. 근처 아파트에서도 길에 세워진 버스에서도 시민들이 손 흔들며 박수를 쳤어요. 그게 저에겐 첫 승리의 경험이에요.

탄핵 심판이 끝나고도 꾸준히 집회에 나가신다고요. 많이 지쳤을 텐데 쉬고 싶지 않았나요?

그래서 4월엔 쉬었어요. 한 달 쉬니까 다시 나가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웃음) 요새는 오히려 작년 이맘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요. 주말엔 약속이 있으니까 평일에 주로 집회를 가거든요. 지난 금요일에는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꿀잠 연대 문화제’에 갔고, 어제는 ‘오세훈 아웃 투쟁문화제’에 갔고요.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나가야 하지 않겠니?’ 하면서 스스로 다독여요.

그런데 이게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에요. 집회에 나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나잖아요. SPC나 쿠팡의 노동권 문제, 서울시의회가 폐지안을 가결한 학생인권조례 문제, 교내 성폭력을 알렸다가 해임 위기에 처한 지혜복 교사의 복직 문제…. 이런 상황을 알게 되면서 오랫동안 억눌려온 사람들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그냥 말로 듣는 게 아니라 직접 마주하는 거죠. 집에서 기사를 읽으면서 의제를 찾아볼 수도 있지만, 현장에 가서 직접 듣는 게 가장 와닿거든요. 이렇게 한번 (사안들이) 보이면 자꾸만 보여요. ‘아, 이때 사람들이 모이는구나. 시간이 비네. 가야겠다.’ 이렇게 되는 거죠.

지난 1년간 회원님의 삶이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예, 확실히 많이 바뀌었다고 느껴요. 사고의 기반도 행동도 많이 바뀌었죠. 그전에도 크고 작은 집회가 많았을 텐데, 제가 잘 몰랐던 측면도 있고 알더라도 소극적이었어요. 이번에 탄핵 정국 거치면서… 아무래도 남태령 집회의 영향이 크죠. ‘내가 혼자 나가도 되는구나’ 알게 된 뒤로는 개인 시간이 많이 줄었어요. (웃음)

그렇게 나갈 때마다 ‘방구석 탐조인 연합’ 깃발을 들고 가시죠. 이 깃발은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요?

‘방구석 탐조인 연합’의 콘셉트는 예전부터 마음에 있었어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촉구집회에서도 다양한 개인 깃발이 나왔잖아요. 그때 ‘내가 깃발을 만든다면 새와 관련된 걸로 해야지’ 생각했거든요. 이번 탄핵촉구집회에 또 여러 기발한 깃발들이 나오니까 저도 다시 고민을 해봤죠. 방구석에 있는 것도 좋아하고 탐조도 좋아하니까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진짜 만들게 된 계기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힘들게 체포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석방되었을 때였어요. ‘안 되겠다. 이제 깃발을 꺼내 들 때가 됐다’ 싶어서, 홧김에 주말 동안 디자인을 하고 바로 뽑았어요. (웃음) 그 뒤로는 웬만하면 집회 나갈 때마다 깃발을 들고 가요. 눈이나 비가 올 때, 출장 갔다가 바로 집회에 갈 때만 빼면 늘 가져가는 것 같아요.

이제는 ‘방구석 탐조인 연합’ 깃발 아래 다른 깃발이나 스티커도 늘었죠. 집회에서 받은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달았고요. 한동안 그렇게 들고 다니다가 광주 퀴어문화축제에 가면서 ‘방구석 퀴어 앤 앨라이 연합’ 깃발을 새로 만들었어요. 광주 퀴어문화축제에는 꼭 가고 싶었어요. 일단 제가 오픈리 퀴어이기도 하고, 또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5월마다 광주에 갔기 때문에 친근한 지역이기도 했죠. 그런데 거기에 혐오 세력이 온다는 거예요. 그 소식을 듣고 깃발을 하나 더 만들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세 가지 깃발을 함께 들고 갑니다.

황예린 회원이 집회 때마다 들고 나가는 세 가지 형태의 깃발을 보여주고 있다. 상단 가장 큰 깃발은 방구석 탐조인 연합, 중단에는 방구석 퀴어 연합, 하단에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황예린 회원이 집회 때마다 들고 나가는 깃발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차종관

깃발에 적을 정도로 중요한 정체성일 텐데, 언제부터 탐조를 시작했나요?

동물을 다 좋아해서 전공도 관련 분야로 정했는데 여러 동물 중에서도 곤충, 뱀, 그리고 새를 특히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냥 좋았어요. 그러다가 탐조라는 취미를 시작한 건 5년쯤 전인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 탐조 수업도 듣고, 마침 연구실에 쌍안경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탐조를 시작하게 되었죠. 어디든 쌍안경을 들고 다니면서 새를 관찰했어요.

처음엔 철새도래지에 많이 갔어요. 평소에 못 보던 새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집 근처에도 새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어디 멀리 가지 않고 ‘생활 탐조’를 하고 있어요. 어느 날 평소에 못 듣던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서 자세히 보니까 집 앞 벚나무에 밀화부리라는 새가 둥지를 틀었더라고요. 출근 시간에도 조금 일찍 나오면 작은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요. 참새도 있고,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멧새, 박새, 쑥새도 있고요.

탐조를 처음 하시는 분에게도 일단 공원에 나가보는 걸 추천해요. 사람이 좀 적게 다니고 새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서 벤치에 앉아보세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만히 시선을 두다 보면 새가 보이기 시작해요. ‘쟤들은 왜 저렇게 뛰어다닐까?’ 상상해도 좋고,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요. 새를 보는 동안은 속세를 떠나 자연에 있는 느낌이에요. 일단 새는 다 귀엽고 예쁘니까요.

대머리독수리처럼 안 귀여운 새도 있잖아요. (웃음)

앗, 대머리독수리도 귀엽습니다! (웃음) 큰 새들이 우르르 모여있으니까 무섭게 느낄 수도 있는데, 걔네가 사실 겁쟁이라서 모여있는 거예요. 그리고 덩치가 크고 무거우니까 움직일 때 뒤뚱뒤뚱하거든요. 그것도 귀여워요. 사실 저에겐 곤충도 뱀도 귀여워요. 자연에 있는 생명은 하나하나 매력이 있어요. 그게 귀여운 거죠.

귀여운 새들을 계속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새들도 기후위기의 영향을 받아요. 특히 철새들을 보면 확실히 느껴지죠. 몽골고원에 살다가 추워지면 한국에 내려와야 하는 독수리가 잘 안 보여요. 몽골도 따뜻하니까 안 움직이는 거죠. 그리고 도감엔 겨울에만 온다고 하는 철새가 여름에도 보여요. 그런 새들이 늘었어요.

탐조 말고 또 최근에 회원님이 관심을 두는 일은 무엇일까요?

취소된 새만금 개발을 정부가 다시 밀어붙이고 있어서 걱정이에요. 공항도 너무 많이 짓고 있어요. 제주도에도 신공항을 지겠다고 하고 인천에 공항을 하나 더 짓는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탐조하는 입장에서도 우려스러운 게, 공항으로 좋은 입지는 새들이 살기에도 좋은 입지예요. 겹칠 수밖에 없죠. 이런 상황이 맞는 건가 싶어요.

노동 의제에도 관심이 많아요. 직장인이라서 더 와닿고요. 대학원은 이미 졸업했지만 저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합니다. 광장에서 있으면서 전국대학원생노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마침 졸업생도 가입할 수 있다고 해서 함께하게 되었어요.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박사 과정에 진학할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대학원생은 연구실 노예’라고 할 정도로 노동환경이 열악해요. 위계가 확고하다 보니 강압적인 지시도 많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진학을 하면 과연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미래의 저를 위해서 혹은 저처럼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2026년도 참 바쁘겠네요. 지난 2025년은 회원님에게 어떤 해였는지, 또 새해는 어떤 해가 되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2025년은 사실 1년이 아니라 10년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너무 많은 것이 바뀐 해라서 1년밖에 안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너무 바쁘고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원동력을 발견하기도 했죠.

2026년에는 기타를 배워보려 해요. 이미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좌도 신청했습니다. 남태령 집회처럼 무대나 음향이 마련되지 않은 현장에서 기타를 치면서 투쟁가를 부르고 싶어요. 그리고 또 생각나는 건, 이제 날이 춥잖아요. 힘들게 투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특히 세종호텔의 우리 고진수 동지! 얼른 따뜻한 곳으로 돌아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소원까지 참 회원님답네요. 회원인터뷰의 공식 질문으로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나에게 참여연대란?

음…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곳이에요. ‘이 사회를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 그렇게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참여연대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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