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1-02월 2025-12-31   74938

[이슈] 우리가 바라는 헌법

정리〈참여사회〉편집팀

과거엔 헌법에 아주 실체적인 내용들, 권력을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분배되는가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 헌법은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을 담아내는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수많은 국가들이 헌법 개정을 할 때 기본적 방향으로 연대성을 강조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거나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한 가지 삶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존중하고 이를 보장하고자 한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인 한상희 헌법학자는 이번 참여사회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시민들은 거리에서 헌법이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체감했다. 하지만 헌법이 한 사회, 한 세계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내는 역할을 하는 만큼 구체적인 의제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참여사회는 기후위기부터 경제, 생명과 안전, 정보인권, 성평등, 돌봄에 이르는 여러 의제를 가지고 활동하는 필자들에게 ‘우리가 바라는 헌법’을 물어봤다.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

“생명이 재생산되고 발생하는 곳인 자연, 곧 파차마마는 그 존재를 온전히 존중받고 그 생명주기와 구조, 기능, 진화과정이 유지되고 재생산되도록 할 권리가 있다.” (에콰도르 헌법 71조)

2008년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규정하였습니다. 에콰도르의 헌법은 ‘부엔비비르(Buen Vivir)’, 곧 ‘좋은 삶’의 권리에 관한 내용을 별도의 장으로 담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남미의 ‘부엔비비르’ 개념이 다음과 같은 기본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연과의 조화, 원주민의 가치와 원칙의 존중, 기본적 필요의 충족, 국가의 책임으로서 사회정의와 평등, 민주주의가 그것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헌법을 말하는 것은 기후위기 앞에서 ‘좋은 삶’은 무엇인지 묻는 것입니다. 기후재난과 생태계 파괴를 유발하면서 맹목적 경쟁 논리를 앞세워 이윤과 경제성장을 좇는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요? 기후위기 시대, 모든 이들의 ‘좋은 삶’을 보장하는 새로운 헌법이 필요한 때입니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 부단히 질문하며 싸우는 시민들의 힘으로만 새로운 헌법은 가능합니다.

위평량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경제학박사

대한민국 헌법은 인간존엄과 평등, 주권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민주주의, 법치주의 등의 가치와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구체적 실행 수단이나 국가 책무 명시가 미흡해 선언에 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헌법정신과 가치는 극히 일부가 반영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절대다수 국민이 원하고 요구해 온 헌법 가치의 달성이 매우 미흡합니다. 따라서 정의로운(Justice) 제도 정착으로 국민이 바라는 윤리적·도덕적 사회경제 삶의 수준을 제고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절대다수 국민들 간에 소득과 자산 격차, 노동자들의 영역별 임금 및 복지 격차, 교육구조의 격차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부(富)와 권력의 계층구조 심각화와 세대 및 성별 갈등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우선 두 가지의 변경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헌법의 제119조 제2항을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합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과 자산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집중과 세습 및 남용을 방지하며, 공정한 구조와 소비자, 근로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경제에 관한 모든 관련법령 규제와 조정을 해야 한다.

헌법 제10조와 제11조, 특히 제119조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경제민주화와 경제정의 및 분배 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 실천 수단이 미흡해 헌법정신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와 같은 내용을 추가하여 헌법정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사회적 양극화와 삶의 불안 최소화의 실질적 근거 마련을 위해 토지공개념을 제122조 제2항에 별도로 명시해야 합니다. 국가는 국민의 삶의 기반인 토지와 주거의 보유와 이용 실태를 공공성으로 규제하고 지역간 계층간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시켜야 한다.(신규)

현재 토지공개념은 제122조와 제23조, 제37조 2항에서 추정 및 반영할 수 있으나 과거 헌법재판소의 부동의로 대한민국 사회경제 현실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주거권도 제35조 3항과 제16조에 제시되어 있으나 마찬가지로 선언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위 내용을 국가 책무로서 명시해야 합다.

오민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2018년 개헌 논의 당시, 한 언론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헌법에 담아야 할 기본권 중 ‘생명권’, ‘안전권’의 응답 순위가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을 물을 때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 탄핵심판에서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을 때 이들이 국가기관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할 포괄적 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은 인정됐지만, 기본권을 침해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구체적 의무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명권, 안전권이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된다고 해서, 이러한 판단의 한계가 곧바로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생명과 안전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담을 것인지 모두 정책결정자의 의지에 맡겨져왔습니다. 하지만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문화된 이후에는 이에 관한 국가의 의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해온 보호의무의 기준이 유효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논의해서 실제 헌법과 법령에 필요한 내용을 담을 수 있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지금 무엇을 중시하고 지키려고 하고 있는지 분명히 하는 계기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장선미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헌법상 정보인권 관련 논의는 기술발전에 대한 대응 문제를 넘어 인간이 기술에 의해 통제되는 시대에 헌법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정보인권 문제는 기술 사회에서 인권 전체의 재구성을 요구하며,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개헌 담론이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관련 헌법개정 논의가 몇몇 정보기본권을 신설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다른 기본권과 어떻게 결합되는지 등을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일부 기본권은 정보권과 연계된 내용을 명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인간 노동을 기술로 대체하거나 인간 노동을 감시하는 데 정보통신기술이 활용되는 상황에서 정보인권이 다른 인권과 어떻게 작용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토대로 노동권에 관련 권리를 함께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의 활용과 관련해서도 개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정보인권을 별도로 규정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것은 정보인권이 실효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보주체인 기본권주체의 정보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거대 플랫폼 등 사적 주체의 기본권 구속력에 대한 사회 전체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기존 헌법이 예상하지 못한 헌법현실이자 사회적 맥락이기 때문에, 공론장에서 진지한 담론과 숙고가 필요합니다.

김태훈 민주노총 정책국장

노동조합은 윤석열의 위헌적 계엄에 총파업으로 맞섰습니다. 한낱 포고령으로 파업을 금지하자 노조는 헌법상의 단체행동권으로 헌법을 지켰습니다. ʻ비상’시 기본권의 행사는 ʻ평상’시 기본권 수준과 실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제 노동기본권을 확대하기 위한 개헌과제의 해결을 사회대개혁의 이름으로 요구할 때입니다.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노동3권의 헌법상 제한(공무원·방위산업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제한·불인정)을 개정해야 합니다. ILO(국제노동기구)는 이러한 제한이 노동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며 매년 권고해왔습니다. 또한 노동3권을 헌법에 명시한 목적을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에서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으로 개정하여 경제적 투쟁으로 축소 해석된 노동3권을 사회 전체의 이익에 복무토록 해야 합니다.

또한 헌행 헌법 제32조의 개별 노동권에 대한 규정도 개정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권리로 되어 있는 노동권을 ‘모든 사람’의 노동권으로 개정하여 보편적 인권인 노동권의 원래 이름을 되찾아야 합니다. 87년 이후 확산된 ▲비정규·비임금 노동에 대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직접고용 원칙 ▲적정임금 및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해고로부터의 보호 등을 헌법에 담아야 합니다. 물론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꾸는 것은 기본입니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마지막 헌법의 개정은 1987년에 이루어졌습니다. 1987년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창립된 해이기도 합니다. 창립 이후 여성연합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법제도 제·개정운동을 하였습니다. 성폭력, 가정폭력 방지법 제정, 양성평등기본법의 전신인 여성발전기본법 등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운동, 여성의 정치 대표성 확대를 위한 법제도 개선 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평등 실현을 위한 내용들은 헌법에 담기지 못했습니다. 1987년 이후 헌법이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현실에 부합하도록 헌법 역시 새롭게 개정되어야 합니다.

지난 윤석열 탄핵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바란 사회는 ‘차별 금지와 인권 보장’이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성별, 연령, 장애, 성적 지향, 인종, 사회적 신분 등에 따른 차별이 없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보장 받는 사회에 대한 열망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이를 담아내는 헌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헌법 전문에 ‘실질적 성평등 실현’이라는 국가의 목표를 명시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해소하는 내용을 담은 헌법 조문을 신설해야 합니다. 또한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헌법이 살아있는 규범력을 발휘하고, 여성과 소수자의 삶의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합니다.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활동가

누군가에게는 이미 익숙한, 누군가는 언젠가 겪을지 모를 돌봄의 고민. 저출산·초고령사회, 달라진 인구 구조와 다양해진 가족 형태, 질병, 사고, 재난 등으로 언제 생길지 모르는 돌봄의 공백, 그 책임은 온전히 개인과 가족이 져야만 할까요? 우리의 돌봄은 정의로운가요? 그동안의 돌봄이 개인과 가족의 몫, 특히 여성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왔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적절한 양과 질의 돌봄을 받고, 또 돌봄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헌법이 말하는 인간다운 생활의 필수 조건으로 가시화되어야 합니다. 국가가 돌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돌봄에 대한 권리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돌봄 노동이 성별 등에 따라 편중되지 않고 사회적 공동 책임 원칙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헌법에 신설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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