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라지는 세계·노동·목소리를 채굴하다 – 이라영 《쇳돌》 저자

이라영 작가는 〈참여사회〉 ‘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필자면서 사회 비평을 하는 문화평론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라영 작가는 지난 2월 600쪽이 넘는 책 《쇳돌》을 냈다. 작가는 본인을 비롯해 그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길게는 한 세기 동안 추적해 책에 담았다. 그는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강릉, 서울, 부천 등 여러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는 국내 유일의 자철광 광산인 양양광업소의 첫 민주노조 위원장이자 1995년 광업소가 폐광할 때 마지막 노조위원장이었던 아버지 이선권1947년생의 노동과 연결된다. 아버지가 양양에 ‘주저앉게’ 된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연좌제, 남로당, 만주 등의 근현대사를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 고모의 생과 죽음도 다르게 다가온다.
작가는 2021년부터 《쇳돌》을 준비했다. ‘노동자의 입과 노동자의 발을 따라’ 가느라 400m 깊이의 갱도에 들어가고, 건설기사 자격증을 따면서 우리 기억 속 남성노동자의 공간으로 재현된 광산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도 채굴했다. ‘지상의 막장’이라 불린 선광(돌 분류) 작업은 여성 노동자의 몫이었지만, ‘막장’에서마저도 여성들이 지워졌다는 탄식을 끌어낸다. 책의 부제처럼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했다. 한 산업이 쇠퇴한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며, 그 안의 노동과 사람이 사라지는 일은 더더욱 아니란 증거다.
‘막장’은 현재, 어디에나 있다. 이제는 관광지로 거듭난 광명동굴구 가학동굴과 같이 수도권에도 금광이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1995년 문을 닫았던 양양광업소가 2011년 재개광을 시도했던 것처럼 지금도 광업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AI(인공지능) 시대 희토류 확보가 절실해졌으니 광업의 필요성이 적지 않다는 의미도 있으며, 자본은 광업이 아닌 여러 분야에서 또 다른 ‘막장’을 만들어낸다는 비유이기도 하다. 흔히 인생 밑바닥의 대명사로서 ‘막장’을 들먹거린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막장’이란 단어 뜻을 전복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쇳돌》의 책 표지는 실제 ‘쇳돌’처럼 까끌까끌하고 ‘쇳돌’이란 단어도 참 낯설지만 내용은 사뭇 따뜻하다. 평소 저자의 글을 읽어온 독자라면 더더욱 그렇게 느낄 만하다. 수년간 전현직 광산노동자들과 만나며 느낀 물리적으로는 서울에 있지만 내용상 주류 담론에서 벗어나있던 작가의 불안, 즉 주변을 말하지만 주변화되기 싫은 저자의 인간적인 고백까지, 《쇳돌》은 ‘한 가족의 노동이동사’로만 요약할 수 없는 책이다.
비평을 언제부터 했나?
미술을 전공했는데 미술 이론을 배우면서 미술비평도 배웠다. 그게 되게 재밌었다. 글 쓰는 걸 좋아했고 미술비평 수업도 좋아했다. 난 남의 말에 대해 잘 수긍하지 않고 내 생각을 밝혀야 하는 성격이다. 일상에서는 말로 직접 얘기하면 분위기가 안 좋아질 수 있다. 그런데 참았다가 정돈된 글로 쓰면 설득도 잘 되고, 상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덤비는 상황을 벗어나는 게 재밌었다. 20대 후반부터 원고료 받는 글을 썼다.
〈참여사회〉에는 2021년 ‘여성’ 코너에 기고했고, 2022년부터 ‘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연재를 시작해 햇수로 6년째 글을 쓰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그 전에 손희정 평론가가 영화에 대한 글을 오래 쓴 걸로 안다. 당시 〈참여사회〉를 담당하던 이한나 전 간사가 연락을 했다. 그가 참여연대 입사 전 일했던 전자책 출판사에서 책을 낸 인연이 있다. 6년이면 오래 쓴 것 같지만 실제 많은 글을 쓴 건 아니다. 이 연재로 책을 내자는 제안이 오는데 두 달에 한 번씩 쓰다 최근 〈참여사회〉가 월간에서 격월간으로 전환하며 넉 달에 한 번씩 쓰니 원고를 다 모아도 책 한 권 분량이 안돼 출간을 못했다. 그리고 《쇳돌》에 본격적으로 몰두하면서 외부기고들을 끊었다. 10년 넘게 기고했던 한겨레도 2022년에 중단했고. 그런데 〈참여사회〉는 과거 여성미술가들을 소개하는 글이라 현안을 따라가는 칼럼보다는 부담이 적어 계속 쓸 수 있었다.

《쇳돌》 서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어떤 노동이 나를 키웠는가를 품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며 “내 질문이 너무 늦었지만, 이 노동을 기록하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썼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더 듣고 싶다.
2021년 1월 고모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생전에 몰랐던 고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장례를 치르면서 아버지한테 ‘그때 그 광산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라고 물으니 아버지는 ‘다 죽었지’라고 했다. 그게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언젠가는 이야기할 그 세계를 유예 시킬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서문에 썼지만 ‘먹는 치매’에 걸린 고모를 요양원에서 본 날이 마지막이 될지 몰랐고 코로나가 잦아들면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관계가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매달리기로 했다.
5년에 걸친 작업이었는데, 초반 취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초반에는 일단 언론보도를 찾았다. 폐광 당시 언론보도를 모으기 시작했고 내 머릿속 산발적 기억들도 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엄마의 하숙집 이야기는 평소에 많이 들어 쉽게 쓸 수 있었고, 1988년 아버지가 노조에 복귀하던 시점 얘기는 기억나는 걸 쫙 썼다. 쓰다 보면 궁금한 게 생긴다. 아버지는 원래 양양 출신이 아닌데 언제부터 양양 사람이 됐을까 싶어서 아버지한테 물어본다. ‘언제 양양에 왔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4·19 나던 해에 왔다’며 1960년 11월 11일을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더라. 처음엔 폐광 이후 노동자들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관심을 가졌다가 사람들이 양양에 광산이 있어서 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내 관심도 거슬러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3대의 이야기가 됐다.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가족사다.
소설 《토지》가 생각났다. 서희네 가족이 다 만주로 가지 않나. 일제 강점기 때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만주로 이동했을까. 우리 가족도 그 이동 흐름에 있었다는 것을 파악했다. 가족사의 개별성이 있지만 보편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많은 사람이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의식적으로 안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그냥 이야기되지 않는 역사가 있다. 양양에서는 수복지역6.25 전쟁 전 북한에 속했다가 전쟁 후 남한에 편입된 접경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흔하지만, 그 지역 밖에서는 ‘양양이 수복지역인 걸 처음 알았다’고 한다. 지도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당사자들은 겪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쉽게 얘기하지 않는다. 《쇳돌》을 읽고 적지 않은 독자들이 ‘저도 할아버지가 보도연맹으로 희생됐다’, ‘우리 가족도 연좌제를 당했다’는 말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게 익숙하지 않고, 특히 여성들은 눈치 보는 경험이 많다. 가족끼리나 말을 하지 50년대 생 여성이 공적 자리에서 발화는 하는 경우는 없으니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는 게 의아할 수 있다.
‘쇳돌’도 타 지역에선 낯설다.
그 지역에서는 익숙한 말이다. 네이버에 ‘쇳돌’을 검색해 보니 ‘숫돌로 검색하시겠습니까’라고 뜨더라.(책 출간 덕분일까, 이제 네이버에서 ‘쇳돌’을 검색하면 AI 브리핑을 통해 ‘쇠붙이의 성분이 들어있는 돌이며 철광석과 같은 뜻으로 풀이된다’는 설명이 나온다.) ‘쇳돌’은 순우리말로 철광석이다. 광산, 광업할 때 광(鑛)이 쇳돌‘광’자다. 철광석을 뜻하기도 하지만 광물을 다 포괄하는 말이기도 하다. 제목이 ‘쇳돌’이라고 하니 양양 지역 분들은 우리에게 너무 흔해 별거 아닌 게 제목이라 놀랐다고 하더라. 양양에서도 장승리 밖 사람들은 장승리 사는 사람들을 ‘쇳돌’이라고 불렀고, 아버지도 광산 동료들과 계모임 이름을 ‘쇳돌’이라 지었다. 반면 외부에서는 ‘쇳돌’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쇳돌’이란 책 제목에 놀라더라.
독자들 반응은?
이전 책 《말을 부수는 말》(2022)이나 《타락한 저항》(2019)처럼 사회비평서를 주로 읽은 분들은 ‘왜 이렇게 글이 따스해졌어, 인간적이다’라는 반응이었다. 사회 비평은 누군가의 인생을 다루지 않는다. 특정 행동이나 상황을 다루니 인생 전체를 판단할 일이 없다. 《쇳돌》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듣고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 그들의 인생을 펼쳐놓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 조심스러웠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판단이나 비판하려는 의지를 많이 죽이는, 덜 판단하는 글쓰기였다.
광업은 사라진 게 아니라 보이지 않게 된 것에 가깝다고 썼다. 노동 없이는 무엇도 영위할 수 없는데 막상 노동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비하와 비난의 은유로 사용하는 일이 많다. 또한 지금 우리가 접하는 광업은 폐광된 곳을 관광지로 만든 곳, 얼굴에 까만 게 묻은 남성 노동자들이 곡괭이를 들고 있는 이미지 정도가 전부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닿기 바라는지 듣고 싶다.
사람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현장과 역사를 재현된 이미지로 습득한 뒤 안다고 인식한다. 재현된 이미지의 모사본의 모사본의 모사본이 증식되는 건 잘못된 재현이다. 나도 당사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 다른 뻔한 이야기만 나오더라. 《쇳돌》을 작업하면서 기존 예술작품과 대중문화가 재현한 방식을 보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 정리했다. 남성중심적이면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됐다. 광산이 활황이던 60~70년대는 소위 지식인들도 돈 벌러 광산에 갔지만 80년대를 지나면서 하향 산업이 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진 채 공포영화의 배경이 됐다. 화소가 낮아지는 모사본이 증식하듯 문학 속에선 은유로 남아 2020년대에도 시 속에 광부의 곡괭이가 등장하는데 실제 현장은 그렇지 않다. 노동 현장과 너무 멀어진 언어로 광업을 게으르게 묘사한다. 이렇게 게을러도 되나. 초음파 탐지기로 가스 누출을 탐지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왜 어떤 노동의 세계에 대해 이토록 무지하면서도 아는 척을 하는가.
처음엔 구술 작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듣다 보니 《쇳돌》도 비평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으른 재현에 대한 못마땅함이 컸다. 지식인 사회의 오만함이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건 중요하다. 어떤 계층, 어떤 노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모르고 있다. 지금도 300개 이상의 광산이 있고 그중 100개 이상이 석회석 광산이다. 텅스텐 광산은 다시 개광하고 있다. AI시대는 수많은 광물을 필요로 한다. 전 세계가 희토류 경쟁을 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내 모든 작업 가장 바닥에는 주류 시각에 대한 반박이 깔려있다. 미술사에서 누락된 여성 작가들을 끌어내듯 누락되는 목소리들을 끌어내고 싶다.

요새 관심 갖는 ‘누락된 목소리’는 무엇인가? 준비하고 있는 글이 있나?
관심 갖는 사안은 늘 있지만 내가 구현해 내는 건 별개의 노동이지 않나. 《쇳돌》을 쓰고 나니 지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끌어내는 게 힘들고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아직 착수를 못하고 있다. 어설프게 준비해서 누군가에게 다가가 얘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건 폭력적이다. 《쇳돌》 작업할 때도 가족 외에 분들은 나중에 만났다. 어떤 분과는 2년 정도 띄엄띄엄 연락하며 만나다가 그분이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면서 (인터뷰가)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아버지와 관계를 유지하던 분이라 내가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올림픽공원의 시위를 보면 전작 《타락한 저항》이 떠오른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여기는 반지성주의자, 저항으로 둔갑한 혐오, 스스로를 보편·중립적인 위치에 놓는 ‘지배하는 피해자’를 다뤘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나?
내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말로 꺼내놓기가 어렵다. 답답하다. 한국 사회 곳곳에 많은 문제가 있는데 각자의 억울함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억울한 피해자다. 내가 제일 억울한데 어떻게 연대가 되겠나. 그 억울함은 내 잘못된 행동을 쉽게 합리화하고 자기 연민을 부풀리는 반면 자기 객관화를 막는다. 그런 사람이 너무 곳곳에 퍼져있다. 한국 사회가 진짜 위험한데 권력의 크기와 억울함의 크기가 비례한다. 권력이 클수록 책임감이 커져야 하는데 억울함이 커진다.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정말 모르겠다. 요즘 ‘보상이 없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보상이란 말이 화두가 되는 현상은 좋지 않다. ‘분배의 정의’를 말하면 굉장히 고루해지는 시점이다. 인생이 자판기 같아야 하나. 천 원짜리 지폐를 넣었으면 천 원짜리 물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와 문제라는 얘기만 하고 있다. 물 한 잔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보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어떤 언어로 소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이 좀 잘살게 되고 코스피가 얼마인지 지겨울 정도로 떠들고, 반도체로 우리가 먹고 사는 것 같지만 결국 1차 산업, 광업 노동이 없으면 안 되지 않나. 보이지 않는 세계의 노동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차별과 혐오을 걷어내고 소수자의 언어가 지워지지 않는 세상을 기록하고 싶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사진 정인욱 작가
와락 다가오는 세상을 안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려깊은 호기심을 갖고 카메라 너머의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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