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1307

법무부 추진 민영교도소 논란

민영교도소, 돈 더 들고 사람도 버린다

곰곰이 살펴보면 민간이 했어야 할 일들을 그동안 너무 오랫 동안 국가가 틀어쥐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불필요하게 정부가 쥐고 있던 일들을 대거 민간부문으로 이양하겠다는 현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에도 분명한 한계는 있다. 경제적 효율을 앞세워 반드시 국가가 해야할 일까지 민간으로 넘기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머지않아 우리에게 또 다른 시련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도 걱정해야 한다.

최근 법무부는 매우 주목할만한 발표를 하였다. 민영교도소의 설치를 추진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아마도 법무부의 추진속도로 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는 수년 내에 민간이 운영하는 교도소를 보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동안 국가운영체제의 교도소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적해온 사람들은 이 발표를 보고 현정권의 획기적인 인권프로그램이라고 반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행형제도에 지난 수년간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필자로서는 이러한 획기적 구상이 과연 우리사회의 행형제도를 개혁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지에 대해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의 우려는 법무부의 구상이 경제적 논리에 치중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민영교도소가 교정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최소한의 재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신화가 이 구상의 근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원래 행형제도라는 것은 형사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형벌의 집행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형벌의 집행은 1차적으로는 정의의 구체적 실현을 의미한다. ‘죄 지은 자는 벌을 받는다’는 원칙이 바로 이 행형절차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나아가 행형은 죄 지은 자를 새롭게 교육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최종의 목표는 교육을 통해 재소자를 새로운 사회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목표들은 반드시 경제적 논리로만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타산이 맞지 않는다해도 국가가 책임을 져야할 경우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정의의 논리, 교육의 논리 혹은 인권의 논리는 왕왕 경제적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현실적인 눈으로 민영교도소안을 들여다보면 더욱 우려는 깊어진다. 필자는 무엇보다 민영교도소가 우리의 인권상황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교도소의 인권은 바로 한 사회 인권의 현주소이다’라는 말은 인권침해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가 교도소를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행형제도 개혁의 첫단추는 교도소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의 반인권적 행태를 어떻게 불식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필자는 국가공권력이 간접적으로 미치게 되는 민영교도소는 인권보호라는 측면에서 많은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비근한 예로 양지마을이니 형제복지원과 같은 민간운영의 시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는지는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민간교도소가 그런 식으로 운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민간부문의 교정시설은 자칫 이익추구의 방향으로 가기 쉽다. 민간부문의 강점은 효율성이 있다는 것이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수지타산을 맞춘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출발하는 민간인 혹은 종교재단에 의한 민영교도소라 하더라도 타산 안 맞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민영교도소가 만들어지면 예산은 대부분 정부의 교부금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될텐데 이때 민영교도소 운영자의 주된 관심은 그 돈에 모아지기 쉽다. 이렇게 될 때 민간교도소의 운영은 재소자의 인권이나 교육보다도 필시 재소자의 머릿수에 관심을 갖게 된다.

민영교도소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운영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역시 현재의 교정공무원들이 직간접으로 간여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많은 민영교도소의 직원들은 경험 있는 전직 교도관들로 채워질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정부산하기관의 임직원이 낙하산식 인사에 의해 정부 공무원들로 채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실상 민영교도소는 어쩔 수 없이 법무부(그중에서도 교정국)의 감독을 받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전직 교도관이 민영교도소의 직원으로 채워지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마디로 민영교도소는 교정공무원의 퇴직후 자리보장의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한 교정당국과의 유착은 사실상 적절한 감독권한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종교계에서 민영교도소에 특히 관심이 많다고 한다. 종교의 가르침으로 재소자를 교육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길러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사회와 같이 다원적인 종교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적합치 않은 발상이다. 우리의 풍토상 개신교에서 교도소를 가지고 있다면 필시 천주교에서, 그리고 이것은 경쟁적으로 불교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경쟁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근본적으로 종교단체에 의한 교도소의 운영은 재소자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교도소에 불교신자가 입소하거나 혹은 반대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들의 종교의 자유가 침해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침해되지 말아야 할 종교의 자유에는 종교를 갖지 않을 자유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민영교도소에서 종교의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는 분명 헌법상의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교도소에서 만일 인권침해가 일어난다면 이것이 곧바로 국가의 책임이 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는 국가가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에 반하여 만일 민영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는 국가가 일차적인 책임이 없다면 그것은 이만저만한 불평등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공무원도 아닌 민간교도관들의 행위를 바로 국가의 행위로 의제해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이다(그럴 바에야 왜 민영교도소로 만들 것인가). 일례로 민간교도소에서 교도관들에 의해 권리침해를 받은 재소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국가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다. 법률상으로 보면 우선은 민간교도소가 일차적인 대상이 될 뿐 국가가 당연히 대상이 되긴 어렵다. 한마디로 민영교도소의 운영은 국가의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것은 어느모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

법철학적인 관점에서도 과연 국가의 형벌권을 국가가 아닌 민간부문이 담당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사실상 우리의 법제는 기본적으로 대륙법계를 취하고 있다. 대륙법적 관점에서의 형벌에 관한 마인드는 국가를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국가는 형벌을 집행하는 주관자라는 것은 우리 법제의 기본이었다. 형사사법의 정의는 국가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고 이것은 국가에 전속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상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 형사법의 원형을 제공해준 독일에서 아직 민영교도소가 없는 것은 그런 법철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형사철학에 대한 고민이 없다. 이 논의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미국을 비롯한 일부의 서구국가에서 민영교도소를 오래 전부터 제도화한 것을 금과옥조의 경험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민영교도소를 도입한 역사적 배경은 우리와 자못 다르다. 미국의 경우 민영교도소는 신천지인 미 대륙의 개발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건국과정을 보면 민간인이 먼저 대륙에 도착하였고, 이어 그들은 도시를 만들고 서부를 개척해 들어갔다. 국가의 공권력은 항상 뒤에 따라왔다. 이 과정에서 민간 개발자들에게는 저임금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것이고 국가가 가지고 있는 죄수들은 더할 나위없는 좋은 자원이었던 것이다. 국가 또한 없는 건국초기의 빈약한 재정에서 교도소를 짓기보다는 민간에게 이를 위탁관리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렇게 하여 1825년 처음으로 켄터키주가 민영교도소를 도입하였고 현재 약 3만 명 이상의 재소자가 민영의 방법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많은 고민이 있다. 위에서 열거한 필자의 우려는 따지고 보면 그들이 민영교도소에 관해 그동안 고민해온 것을 필자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서 간추린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상에서 민영교도소에 관한 몇가지 우려를 언급하였다. 사실 지금까지 열거한 것들은 예상되는 많은 문제점들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직 우리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충분한 연구가 없다. 아직 민영교도소에 관해 제대로 된 연구 논문 하나 발표된 적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제도를 추진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중지를 모아 진지한 연구와 토론으로 이 문제를 점검하길 기대한다.

박찬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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