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5월 1999-05-01   2034

코소보 그후, 한반도는 안전할까?

코소보 그후, 한반도는 안전할까?

지금 유럽은 열전중이다. 코소보의 한 주민은 말했다. 지옥이 땅 위로 올라왔다고. 코소보주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한반도에서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기만 한다면, 과거 연해주지역에서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를 경험해야만 했던 카레이스키(고려족)들의 참상을 되새겨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 연변의 조선족들이 보다 많은 정치적 독립을 요구하게 되고 중국정부와 갈등을 빚게 된다면, 코소보의 사례가 그 국제적 전례가 될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는 코소보의 장면들을 좀더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빚어내고 있는 그림자 속에 숨겨진 그림들을 포착해내야 한다.

코소보사태의 배후에 숨겨진 그림은 교차하는 문명들간의 복잡한 모자이크이다. 코소보지역은 과거 로마 가톨릭을 신봉하는 서로마제국의 변경지대였던 동시에 그리스정교를 따랐던 동로마제국의 변경지대이기도 했다. 코소보내전이 있기 앞서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와 마찬가지로 유고슬라브(유고는 남쪽이라는 뜻)족이면서도 로마 가톨릭을 신봉함으로써 그리스정교의 순수성을 표방한 세르비아인들과 갈등을 빚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2차대전 당시 빨치산투쟁을 유고슬라비아건국으로까지 이끌었던 티토가 크로아티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의 정통성을 인정하면서 세르비아 중심의 저항과 건국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문명은 사바강(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경계를 이루는 강)에서 끝난다”고 주장하는 크로아티아인들은 과거 나치에 협력하여 공산주의를 뒤집어 쓴 “야만슬라브족”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고, 공산주의자였던 티토는 세르비아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동족 크로아티아를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코소보지역은 십자군전쟁 이후 이슬람세계의 신흥제국으로 부상했던 오스만 투르크(1922년까지 지속되다가 터키공화국이 됨)와 전체 기독교문명권간의 격전장이기도 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을 함락시켜 동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져오기에 앞서 오스만 투르크는 콘스탄티노플을 우회하여 발칸반도를 석권하기 시작했다. 이때 세르비아왕국의 10만 대군은 기독교문명권의 결사대로서 오스만 투르크의 서진에 대항하다 마르코왕 이하 대부분의 병사들이 장렬하게 전사하고 만다. 이 역사의 무대가 바로 1398년의 코소보였다. 당시 발칸반도에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일리리아족이 있었는데, 이들이 오늘날의 알바니아인들이다. 알바니아인들은 세르비아인들의 대량몰살과 이슬람의 사민정책에 힘입어 세르비아지역으로 대거 이주하였고 오늘날 알바니아계 코소보주민의 선조가 되었다. 한편 유고슬라브족들 중에서도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세르비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세르보-크로아트어를 사용하면서도 알라신을 신봉하는 보스니아-헤르제고비나(사라예보)의 이슬람교도들이다. 이들은 세르비아인의 관점에서 보면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혼을 팔아먹은” 사람들로 간주된다.

크로아티아내전이 가톨릭계 슬라브족과 정교계 슬라브족간의 전투였다면, 보스니아내전은 이슬람계 슬라브족과 정교계 슬라브족간의 대결이었으며, 오늘날 코소보내전은 종교는 물론 인종과 언어까지도 다른 사람들간의 전쟁인 셈이다.

고삐풀린 세계화와 충돌한 대항운동

코소보사태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그림은 냉전 이후 미국중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고삐풀린 세계화와 그에 대한 반작용간의 대결구도이다. 미국중심적 세계화의 논리에 있어서 군산복합체의 지배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냉전체제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방예산이 유의미한 감축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주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이 냉전 이후의 세계에 있어 두 개의 지역적 분쟁(이라크와 북한이 상정되고 있음)에 개입할 수 있는 역량과 더불어 사실은 두 개의 열강(러시아와 중국)을 서유럽의 도움없이도 제압할 수 있는 역량(2+2)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합의에 의한 탈냉전질서를 얘기하면서도 압도적인 군사적 헤게모니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이고 목표지향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파월독트린보다도 그때그때 미국의 군사력을 시위하고자 하는 울브라이트독트린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는 이와 같은 군사적 헤게모니에 대한 집착의 표현이다. 주권보다는 인권을 앞세우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미국적 삶의 양식(American Way of Life)의 확산을 추구해왔던 외교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20세기 현대사는 이러한 미국의 의도가 비록 많은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조금씩 실현되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울브라이트독트린이 근거하고 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코소보사태는 향후 미국중심적 세계화의 속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유럽열전이 아시아에 미칠 영향

코소보사태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그림은 범유럽주의 대 대서양주의간의 대결구도이다. 유럽은 냉전기간 중에도 유럽방위공동체(EDC), 서유럽동맹(WEU) 등을 통해 유럽통합노력에 부응하는 독자적 방위체제의 수립을 지향해왔다. 이와 같은 유럽의 독자방위기구는 영-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대신, 러시아와 그 주변국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소보내전에서 서방국가들이 나토를 중심으로 개입하게 됨으로써 유럽독자방위체제 구상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고, 역으로 미국은 계속해서 유럽에 대한 정치, 군사적 지렛대로서 나토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코소보사태와 관련해서 유럽은 결국 나토에 끌려가는 양상을 보였지만, 이것이 오히려 유럽독자방위체제 구상에 새로운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은 앵글로색슨주의 대 슬라브주의 간의 대결구도이기도 하다. 19세기부터 대서양세계의 패권국가였던 영국은 슬라브족의 팽창을 영국중심질서의 위협요소로 간주하고, 크리미아반도로부터 티벳,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조선의 거문도에 이르기까지 견제의 손길을 뻗쳤다. 일본의 조선합병을 도왔던 세 차례에 걸친 영일동맹은 바로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앵글로색슨적 세계전략의 일환이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을 받고 있는 세르비아는 흔히 ‘작은 러시아’라고 불릴 정도로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최근 밀로셰비치가 옐친에게 러시아와의 합병을 요청했다는 외신보도는 과거의 대결구도가 결코 사멸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러시아가 이런 밀접한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를 막지 못함으로써 그 무력함을 드러냈고, 이것은 코소보사태가 걸프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중심(앵글로색슨)적 탈냉전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틀린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신유고연방에 대해 무기금수조치를 취하는 등 국제적 대의를 위해 충분한 협력의 자세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인들은 나토를 통한 앵글로색슨적 질서의 확대(나토는 가톨릭국가들인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였다)가 밀로셰비치를 자극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진정으로 코소보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면, 러시아에 보다 큰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향후 정권의 추이와 상관없이 강력한 슬라브주의적 움직임에 경도될 것이다. 한국과 같은 인근국가들은 이러한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비해야 한다(러시아는 북한을 홀대했던 과오를 반성하고, 북한과의 유대를 새로이 하는 동시에, 러시아를 홀대했던 남한에 대한 길들이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대한 남한의 장기적 정책은 부재하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지역과 관련해서 코소보사태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냉전시기 아시아는 열전을 거듭했다. 특히, 한국전쟁은 국제사회가 유엔의 이름으로 군대를 파견했던 최초의 사례이며, 유럽에 있어서 나토가 군사력을 갖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반대로 지금 유럽은 열전 중이며 대신 아시아는 냉전 중이다. 남북한간의 냉전은 끝나지 않았으며, 중국과 미국간의 신냉전구도라는 말도 들려오고 있다. 중국은 국내 인권문제, 소수민족문제, 그리고 북한문제 등과 관련해서 코소보사태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조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입장은 일면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과거 중화주의적 지역질서의 재판을 꿈꾸는 방식으로 전개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유럽에서의 냉전이 아시아에서의 열전을 담보로 진행됐듯이, 오늘날 유럽의 열전이 아시아의 냉전구도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해봐야 할 것이다.

김명섭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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