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5월 1999-05-01   898

대표와의 술자리, 그 아찔한 기억

대표와의 술자리, 그 아찔한 기억

1995년 11월의 어느날, 스물일곱 초보 간사시절의 일이 다. 그날난 참여연대의 어른중의 어른이셨던 공동대표 한 분을 수행하여 한 지역단체의 총회에 참석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밤 9시를 조금 지난 시각 지하철이 막 종로3가역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께서 넌즈시 물으셨다.

“사무실 들어가 뭐 할 일 있나?”

사실 난 다음날 예정된 시의원들과의 간담회 자료를 준비할 예정이었다. 허나 물으신 뜻을 모른 체 할 수도 없어 얼버무리고 있는 순간 “그럼 내려서 식사나 해”. 심상치 않은 이 밤의 사태는 그렇게 발단되었다.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옆 먹자 골목. 꽃게탕을 사이에 놓고 벌어진 격의없는 이야기판은 30년 이상의 연령차와 직분의 차이로 인한 긴장을 순식간에 녹이고 말았다. 시대와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평가와 직관에 동감하고 감탄하는 동안 술잔도 거침없이 돌았다. 두꺼비가 4마리쯤 바닥났을 때, 누구의 제의랄 것도 없이 자리는 2차로 이어졌다. 맥주거품처럼 넘쳐 흐르는 이야기를 영업 마감시간도 방해할 순 없었다. 청진동을 향해 자리를 옮기는 도중 선생님의 선창으로 시작된 노래. ‘도-옹지는 간데 어-없고 기-잇발만 나부껴’ 종로3가에서 청진동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른다. 하지만 ‘도-옹지는’ 탓이었는지 당시 기억에 청진동은 길 건너편처럼 가까웠다. 선생님은 청진동을 즐겨 찾으신다. 그것도 ‘청진옥’이라는 해장국집만을 고집하시는 편인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청진동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계신 사연은 젊은 시절 현역으로 활동하실 때 기사를 마감하고 들러 마시던 보람과 성취의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아무튼 다시 시작된 술자리에 이번에는 새로운 손님들이 끼어들었다. 아까 ‘도-옹지는’ 할 때 눈여겨 보다가 선생님을 알아보고 합석을 요청한 지하철 노조원들이었다. 새로운 활력을 얻어 다시 시작된 이야기판은 그 소재를 확장하여 노동조합운동의 현황과 문제를 진단하고, 노동조합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술은 오를만큼 올랐고 이성적 토론을 감성의 발산으로 대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어지는 노래와 노래, 주인의 몇번의 경고 끝에 급기야 우리는 퇴장명령을 받았다.

선생님 댁에 연락을 드려 모셔가고, 합석했던 손님들도 다 떠난 뒤 나는 그제서야 까맣게 잊고 있던 회의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정신줄을 수습하여 사무실 근처에 가까스로 도착은 했건만 때는 이미 환경미화원들의 청소가 끝나고 사람들이 출근길에 나서는 시각이었다. 자료는 이미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회의시간에 술냄새나 풍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그리고는 암전(暗電).

깨어난 시간은 오전 11시. 회의가 끝나도 두번은 끝났을 시간이었다. 사무실에 얼굴을 내밀 엄두도 해명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 사는 게 이런 게 아닌데’라는 자괴감 뿐. 그리고 출근한 월요일 아침. 싸늘한 침묵을 뚫고 해명할 기회를 찾던 차에 지금은 영국에서 유학중인 이모 처장이 불러 하는 말 “갈 때부터 불안했어”. 다행히 선배들이 회의자리를 수습했던 것이다. 이 일은 내게 지금도 따라다니는 ‘처장급 간사’라는 별명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술은 미디어’라는 선생님의 지론때문일까? 이 사건 이후로 난 선생님과 심리적 거리감이 없어졌고 몇차례 더 술자리에서 즐겁게 뵐 수 있었다. 이 봄, 꽃들이 다 지기 전에 ‘습한 이야기판’에서 선생님을 다시 한번 뵙고 싶다.

박원석 참여연대 연대사업국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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