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4월의 그 맑고 푸른 일요일, 서울대 노천극장의 잔디밭에는 계속된 파업과 농성으로 지친 지하철 노조원들이 잠들어 있었다. 지나던 일부 등산객들은 생각없이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들의 절박함을 이해한다면 차마 손가락질은 못할텐데…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향한 분별없는 비판과 손가락질….
한편, 잔디밭엔 여기저기서 가족간에 실랑이하는 모습이 간혹 눈에 띄었다. “큰일난다, 다 잘린단다, 다 잡혀간단다….” 평생토록 겪어온 권력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이제는 내 자식 잘 키워 지하철공사에 취직시켜놓고 잊고 지냈던 그 두려움이, 부모님들의 주름살 위에 짙게 깔려 있었다. “어머님, 언제 항복하면 살려준다고 해놓고 그런 적 있습니까? 경제를 망친 것이 어떤 놈들인데 왜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겁니까? 잘려도 같이 잘려서 싸우는 것이 도리고, 승리하는 길이니 어머님 돌아가세요.” “ 못간다 이 놈아, 내가 여기서 버티면 네 놈이 나를 집에 데려다 주겠지, 이 놈아.” 온국민이 보았어야 할 이 눈물겨운 장면은 서울대와 명동성당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겠지만 단 한번도 언론에 소개되지 않았다. 그 짧고 절박한 대화는 사회적 모순이 어떻게 한가족에게 아픔을 던져주는지 잘 말해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지난 4월 한국은 온통 ‘지하철’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집에서는 술렁거림을 넘어 큰 고통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것은 우리 형님께서 지하철 노조원으로 파업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유를 위해 서울시에서 집에 두 차례 다녀갔고 매일처럼 전화가 오다시피했다. 부모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비인간적인 사용자측의 전술이었다. 부모님은 멀리 서울대 파업현장에 가서 형님을 설득하였지만 그냥 돌아오실 수밖에 없었고 걱정이 태산만 같았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고통이 너무나 가슴아파 별 일 없을 거라고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햇볕이 무심해서 슬프던 그날, 어머님은 집에서 서울대로 찾아갔고 나는 안국동에서 서울대를 찾아갔다. 놀랍게도 형을 찾아 헤매던 내 앞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어머님과 형이 나타났다. 학생운동 전력으로 감옥에 갔다온 적이 있는 형은 이제는 생존을 위해 또 감옥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었다. 옥바라지에 가슴이 무너져본 경험이 있는 어머님은 자식을 그 위험스러운 곳에서 빼내와야겠다는 일념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계셨다. 그 자리에서 시민인 어머니와 노동자인 형님,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동생사이에 삼자회담이 이루어졌다. 결국 어머님은 형님의 완강한 태도와 모든 문제를 동료들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나의 중재(?)에 마지못해 집으로 발길을 돌리셔야했다.
그날 밤 어머님은 공권력 투입소식에 잠을 못 이루셨다. 비단 우리집만 그랬을까? 왜 역사는 가족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는가? 왜 달라진 것이 없는가. 한숨이 나오고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착잡한 마음으로 형과 통화를 했다.
“너무 세게 부딪치다간 그나마 개혁도 깨지고 노동형제들도 다 죽는 것 아닙니까?” “안다, 알지만 어떻게 하겠느냐? 그런 고민이 들어설 틈이 없는 벼랑 끝에 우리 노동자들이 서있는 걸.” “그래도 형님, 조금만 더 유연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다, 일단은 사람만 무조건 자르고 보자는,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을 전담시키는 신자유주의 정권과 끝장을 볼 수밖에 없다.” “형님, 아무튼 힘내세요” 이게 파업중 형과 나눈 전화통화 내용이다.
왜 이리 4월은 잔인한가? 지하철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 언론의 폭격, 밖에서는 유고에 대한 반인도적 폭격이 계속되었고, 이 두 가지 폭격의 공통점은 인도주의와 ‘시민을 위한다’는 탈을 쓰고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참상이 악화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코소보를 폭격한 미국과 안전을 위한 깊은 고려도 없이 사람부터 자르고 보자던 사람들이 갑자기 시민의 안전을 앞세워 생존의 벼랑 앞에 있는 지하철 노동자들을 폭격한 것은 그 본질이 똑같은 게 아닌가. 안국동에서 나는 생각한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존중과 관용, 연민과 연대가 넘치는 그런 사회를. 지하철의 그 모순된 상황을 보며 한 시민이 이야기했다. “시민도 노동자고, 노동자들도 시민인데,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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