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6월 1999-06-01   1148

죄인아닌 죄인취급, 검찰이 무서워~

죄인아닌 죄인취급, 검찰이 무서워~

사람이 살다보면 법이란 그물망에 빠져들기도 한다. 97년은 ‘법과 검찰’이 그렇게 나하고 인연이 많을 수밖에 없는 해였다. 한 번은 고발인의 위치에서, 두 번은 피고소인의 위치가 될 뻔한 경우가 있었다.

97년 대통령선거를 4개월 남겨둔 8월.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는 모방송에 출연하여 특정 종교를 우대하는 발언을 했다. 물론, 이 총재야 종교의 환심을 사서 표를 많이 얻으려고 그랬겠지만,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

선거시기에 후보들은 종교계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실수인지, 의도된 발언인지 모르나 이회창 총재는 분명 실수를 하였고 이는 불교계의 큰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도 전불련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직후 이회창 총재의 발언을 규탄하는 연대 서명을 돌리고 이를 발표하였다.

발표된 내용은 즉시 방송에 보도되었고, 방송 직후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 OOO인데 당신은 허락도 없이 우리 단체의 명의를 도용했다. 당신을 고발할 수밖에 없다’라는 요지였다. 아뿔사! 무언가 전개과정에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다. 그분은 불교계의 신망을 받고 있는 분이라 함부로 처신할 상황도 아니었다. 전화를 끊고 이리저리 사정을 수소문해보니, 그 단체의 실무 간사가 대표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서명에 동참토록 한 것이다. 선거를 앞둔 시기에 이런 사안은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고발’이라는 단어까지 나오니 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횡령사건을 담당하면서 세 명을 고발해 놓고 4~5개월동안 검찰에 왔다갔다 하고 있었기에 검찰에 드나드는 일이 심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체험하던 시기였다. 사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검사들의 고압적 태도가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법에 관하여 상식적 지식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검찰에 나간다는 것이 그렇게 긴장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명예훼손에 관한 고발이 들어오면, 개인적인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우리 단체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 단체 담당자의 실수도 있었지만, 민감한 시기에 관행적으로 연대서명을 받은 책임도 있었다. 시간을 다투는 연대 서명은 보통 구두로 확인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섭외를 의뢰한 단체 역시 내부의 정식 회의를 통한 의견수렴절차를 갖기가 힘든 사안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는 사안이었으나, 시기가 시기인 만큼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고발이라는 최악의 경우는 모면해야 했다. 먼저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부탁했고, 대표에게는 사과공문을 보냈다.

이제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운명을 맡기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초조한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없었던 일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에게는 피가 마르는 3~4일이었다.

이 사건이 있기 직전에는 모든 일간지에 당시 ‘북녘동포돕기운동’을 비판하는 내용의 5단 광고를 낸 모불교단체 책임자에게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었고, 이 역시 개인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여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때도 어김없이 고발을 한다는 둥 한바탕 법석이 있었다.

사실 일상적으로 법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보통 사람들이 법과 검찰을 가까이 하기란 쉽지 않다. 별로 반가운 일도 아닌 것 같고. 어쩔 수 없이 일이 벌어지더라도 법원이나 검찰청의 문턱을 편한 마음으로 넘지는 못한다.

97년은 그런 점에서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법적인 분쟁이 세 번이나 벌어질 뻔했으니 법에 관한한 삼재를 모면한 것으로 봐야 할까?

김남수 전북불교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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