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1465

삼성이 변하지 않는 한 싸움은 계속된다

시민운동에 덜미잡힌 ‘삼성권력 ‘

이제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삼성권력 세습작전은 알려질 대로 알려진 얘기다. 그러나 참여연대가 97년 6월 삼성전자 전환사채발행무효청구소송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소송을 제기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많이 인구에 회자되지는 않았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삼성 세습작전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이재용은 95년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 원을 증여받았다. 증여세 16억 원을 납부한 후 비상장 계열사인 삼성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사들이고, 이들 두 회사는 96년∼97년초에 상장되어 자그마치 527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겨주었다. 이재용은 또한 제일기획과 중앙개발의 사모전환사채를 인수하여 각각 29.7%, 31.9%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이어 97년 3월 삼성전자 사모전환사채를 매입, 0.78%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98년 제일기획이 상장되자 지분을 매각, 또 다시 130억 원의 시세차익을 거두었다.

삼성의 3세 승계작전의 최종 기착지가 어디인가를 둘러싸고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최근에는 삼성물산이 발행한 해외전환사채와 삼성SDS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인수자가 이재용이라는 설이 무성하다. 또한 이재용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에버랜드가 삼성그룹의 중핵기업 삼성생명의 주식 20.7%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렇듯 비상장 계열사의 주식 사전매입을 통한 시세차익과 특정인을 지정해서 발행해줄 수 있는 사모방식을 십분 활용하는 삼성 세습작전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면서 돈 안 들이고 지분 늘리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참여연대가 이의를 달고 나섰던 바, 삼성전자 전환사채발행무효소송이 그것이며, 참여연대와 삼성간의 싸움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힘겨운 싸움, 전환사채발행무효소송

97년 6월 24일 수원지방법원에 접수된 이래로 전환사채발행무효소송은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삼성전자가 이재용에게 450억 원 어치의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해준 것과 관련, 경영권과 재산세습을 목적으로 다른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전환사채발행무효소송과 처분 및 주식전환금지가처분을 제기하였다.

사모전환사채의 주식전환기일은 9월 25일. 그러나 가처분재판부는 이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고 삼성은 재판부의 결정이 내려지기 하루 전 기습적으로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버렸다. 이 주식이 상장되어 일반인에게 매각되면 소송 자체가 무위로 돌아갈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뒤통수를 때리는 삼성측의 태도에 대해서는 참여연대뿐만 아니라 담당재판부까지도 유감을 표시할 정도였다. 참여연대는 증권거래소에 이재용이 취득한 신주를 상장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한편 서둘러 이 주식에 대한 처분금지 가처분을 제기하였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긴박한 상황이어서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증권거래소는 이재용이 취득한 주식의 상장을 허가하지 않았고 덕분에 소송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마침내 97년 12월 17일, 본안 소송과 가처분사건 판결이 동시에 내려졌다. 본안 소송과 가처분 사건의 담당재판부가 달랐는데, 이날 수원지방법원의 두 재판부가 서로 상이한 판결을 내리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먼저 가처분 재판부는 “이재용에 대한 이 사건 전환사채의 발행은, 자금 조달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고 오로지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행해진 것이어서 무효”라고 원고측 주장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린 반면, 본안 소송 재판부는 “적법하게 발행된 것”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가처분 결정에 대해서는 이재용이, 본안 판결에 대해서는 참여연대가 각각 이의를 제기,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중이다.

기네스북에 오른 13시간의 주주총회

98년 3월 27일 참여연대는 삼성전자 소액주주들을 규합, 제29기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했다. 이 날 주주총회는 회사의 경영 전반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퍼붓는 참여연대 주주들과 고문변호사까지 동원한 경영진과의 공방이 장장 13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참여연대는 특히 Pan-Pacific이라는 해외법인과 삼성자동차 투자계약을 체결한 것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97년 1월 삼성전자는 삼성전관, 삼성전기와 함께 아일랜드소재 Pan-Pacific Industrial Investments(이하 PP)사와 삼성자동차에 2,500억 원을 출자하는 내용의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에 따르면 PP사는 삼성자동차에 대해 투자한 주식을 되사줄 것을 요구할 권리(Put Option)를 갖고 있으며, 만일 삼성자동차가 이를 살 수 없을 경우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전관, 삼성전기가 대신 사주도록 되어 있다. 자금동원능력이 떨어지는 삼성자동차에 삼성전자가 일종의 지급보증을 해준 것이며, 우량 계열사를 동원하여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재벌체제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주주총회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주주대표소송을 준비하던 중에 의미있는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이사회 의사록 열람을 거부한 삼성전자에 법원이 과태료를 부과한 것이다. 주주총회 전 참여연대는 주주명부와 이사회의사록 열람을 요청하였으나 회사측은 차일피일 미루며 해주지 않았다. 몇차례에 걸친 실랑이 끝에 주주명부는 증권예탁원을 통해 받았으나 이사회의사록은 끝내 거부하였다. 참여연대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이 문제를 가져갔고, 법원은 삼성전자에 300만 원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정당한 권리 보장을 요구한 소액주주의 승리였다.

삼성전자는 또한 증권감독원으로부터도 징계를 받았다. 참여연대는 주주총회에 제출된 재무제표가 기업회계기준에 위배된 점을 발견, 증권감독원에 특별감리를 요청하였고, 증권감독원은 삼성전자와 외부감사인이었던 삼일회계법인에 대해 부실회계처리와 부실감사를 이유로 ‘주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위 두 사건은 소액주주운동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고 소모전에 지쳐 있던 참여연대에 큰 힘이 되었다.

이건희 회장 상대 3,000억 손배소

98년 10월 마침내 참여연대는 삼성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총 11명의 전·현직 이사들에게 총 3,043억 원을 회사에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송이었다. 3,043억 원은 피고이사들이 불법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유출하거나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금액으로, 여기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준 뇌물, 터무니없이 비싸게 중앙일보에 지급한 광고료, 퇴출 직전인 계열사 이천전기에 출자한 금액,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결과 밝혀진 삼성물산 및 삼성중공업 지원 금액 등이 포함되어 있다.

99년 삼성전자 제30기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참여연대는 부당 내부거래 방지와 소액주주 권리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정관 개정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회사측은 참여연대의 정관개정안 일부를 수용하는 정관개정안을 내놓아 주주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참여연대와 삼성전자는 주주총회 직전까지 합의점을 찾기 위해 협상을 계속하였으나 막판에 회사측이 태도를 돌변, 결국 표대결로 가게 됐다. 참여연대 삼성전자팀은 거의 매일 밤을 새우며 국내외 주주들의 의결권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과는 회사측의 승리. 참여연대는 국내외 주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최근에는 삼성자동차 처리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자동차의 부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건희 회장이 소유한 삼성생명의 주식을 채권은행들에게 나눠줄테니 대신 삼성생명을 상장시켜달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이러한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참여연대는 반대성명을 내어 이건희 회장일가에게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겨주는 삼성생명 상장은 문제있다고 꼬집었고, 삼성생명 상장을 둘러싼 논쟁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결국 삼성생명의 상장은 유보되었고 채권단과 삼성간의 부채처리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참여연대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생명 위장지분 소유와 탈세혐의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했고 이에 대한 공정위와 국세청의 조사가 진행중이다. 참여연대는 삼성자동차의 부채를 계열사들이 분담하는 것에 반대하며 특히 삼성전자가 자동차의 부채를 떠안을 경우 법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대응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 소액주주운동이 시작된 지 햇수로 3년째, 750여 일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많이 변하기도 했고 또 전혀 안 변하기도 했다. 재벌의 부당행위가 계속되는 한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은 계속되며 삼성이 변하지 않는 한 삼성전자 소액주주운동도 계속된다.

이승희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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