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름이 왔다. 땡볕이 내리쬐는 바깥보다도 더욱 푹푹 찌는 사무실 안에서 대부분을 보내는 뜨거운 선풍기 바람에 밤늦도록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인권단체 실무자에겐 너무도 지긋지긋한 여름이다. 휴가라는 것은 이처럼 근무조건이 열악한 인권단체 사람들에게 잠시 일터와 일감으로부터 떠나 쉬도록 하는 크나큰 배려다. 그러니 여름이 오면 휴가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휴가에 대한 매우 특별한 기억을 말하라고 하지만, 결혼 전이나 뒤나 휴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어 큰 일이다.
산더미같이 쌓인 일, 밤까지 이어지는 약속과 회의 등등. 그 속에서 매일처럼 바쁘게 돌아쳐도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밤 12시를 넘기기가 다반사다. 아침에도 일어나기 바쁘게 가방을 챙겨 나온다. 아침은 차려준다고 해도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 이런 내가 법적으로는 우리 집의 가장이다. 가장이 가족들 얼굴 보기도 힘들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적고, 처와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다. 이러니 가족들에게는 미안하기만 할 뿐이다.
이태 전 여름 휴가 때는 집에만 처박혀 있는 것도 무료해서 하루는 인천 송도에 가서 해수욕을 즐겼다. 수영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튜브 하나씩 사주었더니 그렇게 신나게 놀 수 없는 것이다. 처도 수영복을 빌려 입고 어린아이처럼 물 속에서 첨벙댔다. 그렇게 한번 갔다 왔더니 다섯 살 수빈이가 봄부터 해수욕하러 가잔다. 지난해 여름에는 양지마을 사건 때문에 휴가를 둘로 나눠서 썼다. 7월부터 이어진 양지마을 사건이 가을까지 이어지는 판이었다. 3일 ‘쪽 휴가’ 때문에 어디 나갈 생각은커녕 파김치가 된 몸으로 자고 또 자고 밀려오는 잠과 둘도 없는 친구하며 지내 버렸다. 아이들과 뒷산 가는 일도 못했다. 불쌍한 우리 가족이다. 돈도 못 벌고, 그렇다고 시간 내서 가족과 함께 해주지도 않는 쫓겨나기 십상인 가장인데 아직도 받아주고, 따라주는 가족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어제는 집에 늦게 들어갔는데, 아내가 잠도 안 자고 기다렸다가 올해는 어디 가서 하룻밤 자고 오잔다. 신문에 난 그럴싸한 휴가 장소를 열거하면서 기차 타고 갈까, 바다로 갈까, 계곡으로 갈까 열심히 저울질한다. 도대체 차나 있고, 놀러가 본 일이 있어야 어디가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 좋은지도 모르는 난 건성 대답으로 사람들에 치일 텐데 하는 소리만 반복했다.
올해도 무슨일이 있어도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겠다고 다짐해 본다. 하지만, 벌써 머릿속에서는 어디로 나간다는 것은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돈도 안 들고 속 편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어쨌건 고민이다. 올해 여름 휴가는 그래도 아빠 노릇 한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누가 어디 하룻밤 식구들과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휴가에 대한 노하우가 있으면 조언해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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