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분마다 대화를 중단해야 할 정도로 소음 피해에 시달리던 김포공항 주변 주거 지역의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생활권 침해를 묻는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엄청난 소음으로 인해 가족관계마저 무너지고 있다고 고발하는 한 피해 시민의 사연을 들어본다.
상상을 한다. ‘달아오른 얼굴, 목에는 굵고 시퍼런 핏줄이 요동을 치고, 양손은 연신 상대방을 향한 삿대질로 바쁘고, 입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화염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양 당사자의 간격은 점점 좁아져 가고…육탄전을 앞둔 일촉즉발의 초긴장 상황이다. 한데 눈길을 끄는 것은 모든 상황이 3분 간격으로 순간 정지와 동작 상태를 반복하는 모습. 욕을 하다 멈추고, 삿대질을 하다 멈추고, 이런 상황은 끝없이 이어진다.’
일면 재미있는 상상으로 비칠 지 모르겠지만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2~3분마다 대화를 중단해야 하는, 아니 중단할 수밖에 없는 ‘귀막힌’ 지역이 있다. 바쁜 일상 탓에 잠시 잊고 지냈던 고향의 부모님과 전화로나마 살가운 정을 나눌 때도, 연인과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순간에도, 심지어 위에서 상상한 것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3분 간격의 침입자’를 막을 수는 없다. 김포공항 인근 주거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상황을 연출하는 침입자는 고막을 찢고 귀청을 날릴 듯한 비행기의 굉음이다.
항공기 소음피해에 대한 공익소송
지난 7월 7일 오전 10시 30분. 참여연대 강당에서는 또 하나의 공익소송을 위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세 단체가 지난 3월부터 서울 강서구, 양천구, 부천시, 김포 등 김포공항 인근 지역의 소음피해 현황, 소음방지대책사업 진척상황 등 항공기 소음피해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81년 오사카공항에 대한 최고재판소 판결 등 외국 사례 조사를 바탕으로 생활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국가를 상대로 제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김포공항 인근 일부 지역의 경우 소음측정치가 최고 95WECPNL에 이르러 옆사람과의 대화도 불가능한 비정상적인 생활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 이들 단체는 피해의 정도에 비해 정부 차원의 대책과 규제는 미미한 수준이라 지적하고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침해한데 대한 배상과 함께 현행 항공법의 소음기준 등 소음과 관련한 환경정책 전반을 개선하는 시범적 계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편 기자회견장 뒤쪽에는 이를 진지하게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10년 가까이 항공기 소음과 싸워 온 부천시 고강동 항공기소음대책위원회 변종태 위원장(63)이 그이다. 300여 년 전, 16대 조상 때부터 태를 묻어 온 부천 토박이 변 위원장이 증언하는 비행기에 대한 공포는 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8올림픽을 계기로 공항 규모가 확대되면서 제2활주로가 건설된 즈음의 일이다.
“세계 속의 한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개발논리와 거창한 명분을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소음피해의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도 사실 인식하지 못했구요. 헌데 별안간 주위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임산부가 낙태를 하고, 가축들이 새끼를 못 낳고, 심장병 환자가 속출하는 거예요. 주민들이 청각장애, 불안증세, 경기 등으로 병원을 밥먹듯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임산부 낙태, 심장병 환자가 줄을 잇고
피해는 더해갔다. 중간중간 끊기는 바람에 늘어나는 전화요금 등 생활의 불편은 차라리 소소했다. 소음 정도에 따라 이주 대상인 1종, 신축 규제지역인 2종, 조건부 건축지역인 3종 지역으로 구분되면서 주민들의 재산권은 급속도로 평가절하되었다. 실제로 변 위원장이 살고 있는 20평형 고강아파트의 경우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서울 목동아파트가 2억 원대를 호가하는데 비해 지금도 85년 수준인 4~5,000만 원대에 머물고 있다.
반면 항공기 운항횟수는 나날이 증가했다. 92년부터는 하루 400회를 넘어서기 시작하더니 94년에는 500회에 육박했다.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 93년을 전후로 주민들은 조직적 대응방안을 모색해 나가기 시작했다. 항공기소음대책위원회를 구성, 소음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교통부와 김포공항 환경관리공단 등 관계기관에 진정서를 내기 시작했다. 항의시위에는 분노에 가득찬 주민 3~4,000여 명이 참여했다.
“의무는 강요하면서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무시하는데 대한 분노였습니다. 저희도 공항의 공익성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소음피해, 재산권 피해를 감수하는데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공항 규모가 확대되면서 얻어진 개발이익금 중 일부라도 지역발전으로 환원되어야 하는데 우는 아이 달래는 격으로 마지못해 양보한 것이 방음창이었습니다.”
소송, 기각, 그리고 하늘에 주먹질하기
94년 대책위는 공항환경관리공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뚜렷한 이유없이 재판은 연기되기 일쑤였고, 우려했던 대로 소송은 기각됐다. 이유는 공공성을 앞세운 수인한도에 따른 것. 하지만 대책위측은 지금도 결과가 유사 지역에 미칠 파급효과를 걱정했던 정치적 판결이었다고 생각한다.
“비용까지 갹출하며 추진한 소송이었는데, 하늘에 대고 주먹질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시위할 때 사용하는 확성기 소음이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처벌하겠다면서 비행기소음에 대해서는 방치하는 논리를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나중에는 차라리 나를 좀 잡아가라, 그러면 비행기 소리는 안 들을 것 아니냐, 이렇게 법을 안 지키는 정부는 인정할 수 없다며 항의를 해도 할 말이 없었는지 잡아가지 않습디다.”
조금씩 변화가 뒤따르긴 했다. 공단에 소음대책위가 구성돼 민원을 듣고, 소음이 80WECPNL 이상인 지역을 소음피해지역 및 피해예상지역으로 지정, 고시하여 98년까지 소음도가 큰 지역부터 이주대책으로 3,000여억 원, TV수신 장애대책, 학교냉방시설 설치 지원, 노인정 등 공공이용시설 내 냉방장치 설치 지원 등으로 270억 원을 투자하였다.
하지만 생활환경은 회복되기는커녕 더 빠르게 악화되었다. 운항횟수가 650회에 이르러 2, 3분 간격으로 좁혀졌고 주민은 늘었는데 건축규제는 여전했다. 더욱이 목포 아시아나항공 사고 이후 위험을 줄인다는 이유로 고도가 낮아져 옥상에 올라서면 비행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언젠가는 비행기가 고도를 잘못 잡았는지 급선회를 했어요. 순간 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베란다 창문이 다 깨지는 사고가 발생했어요.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 즈음에 아내가 몸져 누웠는데 그 충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언제부턴가 한숨 비슷하게 소음 때문에 가족관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도 오고가요. 안 들리니까 며느리가 시아버지한테 소리를 지르게 되고, 자연 짜증이 늘면서 서로에게 거칠어지는 거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에는 더욱 고역이다. 창문을 열지 못하는데다 예산부족 탓에 냉방시설 설치는 아직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공단측에서는 인천 신공항이 완공되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비행기 이용을 고려하면 분산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변 위원장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공익소송은 그동안 낙담했던 소음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위로, 희망이 될 것이다
김포공항 소음피해 공익소송 문의 : 723-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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