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히 100장은 넘음직한 두툼한 서류뭉치를 꺼내는 이산해 씨(52세)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폭염이 머리끝까지 뻗쳐오르는 날씨에, 더위를 피해 안국동 철학카페 느티나무에서 만난 이씨는 아직 겨울 양복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고소와 진정을 냈으나 그때마다 불기소처분이 내려지고 오히려 가해자로 조사되기까지 한 지루한 6년의 세월.
지난 93년 4월 시작된 이씨의 사건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아내의 방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졸지에 집을 잃은 이씨는 한 동네에서 오랜 친구로 지낸 통장 황모씨에게서 건축업자 김모씨를 소개받게 된다. 이미 건축업자 김모씨는 건축에 필요한 허가가 났다는 말로 이씨를 안심시키고 자연스럽게 불에 탄 이씨의 집을 다가구주택으로 개, 증축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준공이 되어도 준공허가가 나지 않는 점을 수상히 여긴 이씨가 직접 감리사무소로 찾아가 준공허가를 요구하자 감리사무소에서는 집을 이상이 없이 잘 지었다는 각서(확인서)를 써 줘야만 준공허가서를 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속은 것을 알게된 이씨가 격분하여 사실을 따져 묻게 되고 이 와중에 이씨는 황씨와 김씨에게 폭행까지 당하자 결국 이들을 공갈, 협박, 사기와 사문서 위조 등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네 번에 걸친 그의 고소는 번번이 불기소처분이 내려졌고 그때마다 그와 그의 가정이 겪는 고통은 끔찍한 것이었다.
준공허가 없이 부실하게 지은 식구들의 거처에는 비가 들고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아내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고 작은딸은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가 하면, 결국 묵묵히 집안을 추스르던 큰딸까지 집을 나가고 말았다. 6년의 세월 동안 그의 가정은 곳곳에서 물이 새고 벽이 갈라져 있었다. 기소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사건 때문에 한 집안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이씨는 그의 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고소에 고소를 거듭했던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고소행적(?)을 살펴보면서 주목했던 사실은 이씨의 피고소인이 6년 동안 3명에서 17명으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사건에 피고소인이 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그는 애초에 고소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고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이씨의 사건을 이끌고 간 다른 무엇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답은 처음 그가 내민 두툼한 서류뭉치를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이씨의 사건을 처음 수사한 윤모 검사 이후 지금까지 사건을 이첩 받고 재수사한 검사만 해도 네 명이 넘는다. 이 네 명이 넘는 검사들에게 사건이 떠도는 동안 어느 검사는 자료를 넘겨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느 검사는 사건의 핵심 쟁점을 잘못 짚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쌓였을 이씨의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건을 조사했던 담당 형사들도 마찬가지. 수사과정에서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씨의 억울함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고소인조사 등에서 밝혀진 구청직원들의 미심쩍은 업무처리와 이와 관련한 비리의혹, 건설업체와 감리업체의 직원들, 폭행문제와 관련해 진단서를 끊어주었던 의사들까지 어찌된 영문인지 사건은 시간을 끌수록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의혹과 의심스런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씨의 사건은 계속된 진정 때문인지 새롭게 밝혀진 진실 때문인지 다시 재수사에 들어간 상태이고 이씨는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17명에 대한 추가고소까지 끝마친 후 조사 중에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무도 그의 사건이 이렇게 지루하게 계속될 지는 몰랐을 것이고 이씨처럼 지리한 싸움을 하는 사람이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한 사건을 이 검사 저 검사가 돌려가며 맡고, 구청직원이 건축업자를 두둔하고 경찰은 구청직원을 두둔하는 한, 그의 말대로 “높은 곳에 탄원을 하면 아래로 내려보내고 아래에선 다시 대충 얼버무려 종결짓는 행태”가 계속되는 한 그의 사건은 6년이 아니라 6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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