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하여간 춥다. 미국 미네소타에서 영하 30도에도 견디고 온 난데 이까짓 서울 추위쯤이야 하고 코웃음치면서 시작한 겨울이 생각보다 영 만만치가 않다. 최장집 교수를 만나러 고려대학교로 향한 날도 며칠 풀어졌다가 다시 바짝 추워진 날이었다.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 30분이나 지각을 했는데 이런 경우가 인터뷰어(Interviewer)에게는 최악의 날이다. 초장부터 주눅이 들어 있으니까…. 우선 후문 쪽으로 나가 설렁탕 한 그릇…. 그 참, 날도 추우니 아주 맛있다. 최 교수가 미국 코넬대에서 돌아 온지 얼마 안됐으므로 거기 가 있는 임수경 씨 얘기부터 꺼냈더니 아주 반가운 표정이다.
“아, 임수경 씨 알아요? 나 거기 있을 때 그 친구가 많이 도와줬지요. 여기 텔레비전 팀들이 그 친구 취재하러 많이 가서 거기서도 아주 유명해요.”
정자세를 하지 않으면 질문이 잘 나오지 않는 체질이라 설렁탕 집에서는 그냥 임수경 씨 얘기와 그 집 설렁탕이 굉장히 맛있다는 얘기만 한 것 같다(미안하다, 임수경).
장소를 다시 최 교수의 연구실로 옮겨서 정자세를 잡으니 이제야 그가 제대로 보인다. 설렁탕집이야 그냥 모두가 풀어져서 김 내뿜느라 정신 없는 곳이 아닌가. 이제 그를 다시 보자.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 이 나라의 대표적 진보 학자, 전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한 때 ‘분홍색’이라는 누명을 쓰고 이념논쟁의 중심에 놓여져 이 나라가 얼마나 이념적 후진국인가를 반증해 준 바로 그 인물이다. 우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총선연대 운동의 방법적 측면에서의 문제부터 시작해 보았다. 그는 얼마 전에 한국 정치학회를 통해 발표한 논문에서 우리 시민운동의 역사성과 성격 등을 고찰한 다음, 민주화세대와 인터넷 혁명, 그리고 문화이동에 의한 신시민운동의 출현을 강조한 바 있다. 논문에서 그는 총선연대의 운동을 신시민운동의 시발로 보고 있었다.
“저는 총선연대의 운동방법이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건 제가 한국적 정치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치 엘리트들이 그동안 정치의 민주화를 책임지지 못해왔기 때문에 시민운동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위법적인 운동을 용인할 수 있다는 말씀이죠?
“민주주의를 한다고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나온 운동의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잘못된 법의 경계를 민주적인 것으로 확장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동반하게 되지요.”
가만…. 이건 어디서 들어본 얘기다. 독자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바로 김 대통령이 총선연대의 위법성 논란이 한창 불거졌을 때 했던 말과 맥락이 같은 것이다. 최 교수가 대통령의 말을 따라 할 리는 없어 보이고, 혹시 대통령이 그 말도 최 교수에게 자문을 구한 것도 아닐 테고…. 이건 그냥 상상의 영역 속에 남겨두자.
그런데 음모론이라든가, 또 다른 흠집내기 때문에 자민련이나 한나라당은 오히려 지역색을 강화하면서 득을 볼 거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사실 정치개혁은 지역당 구도부터 없애 버리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맞습니다. 총선연대가 낙천낙선운동을 함에 있어서 매우 객관적 기준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색에 따른 연계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우리의 지역당 구조는 그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개혁을 통해 극복할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민주적이고 보편적인 절차와 규범을 가지고 정치체제를 개편해 나가면 지역당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음모론 등으로 인해 이 운동이 오히려 지역 구도를 강화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구조를 너무 고정적으로 보는 탓입니다. 각 정당들이 어느 정도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개혁적 인물들이 정치권에 들어갈 수 있다면 변화는 가능해지리라고 봅니다.”
최 교수는 일단 사람부터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몇 번 뒤집기를 시도해 봤으나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난공불락이었다.
사람들만 바뀐다고 되는 걸까요? 어찌 보면 왜곡된 시스템이나 후진적 문화가 더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겁니다. 잘못된 시스템이나 문화 속에 사람만 바꿔 넣어봐야 그 사람만 버리는 게 아니냐는 거죠.
“지금의 상황이 한 번의 운동으로 바뀔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람이 바뀌는 게 해결책은 물론 아니지요. 제도와 가치관, 행태 등이 함께 바뀌어야 가능합니다. 유권자의 행태도 물론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꺼번에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가능한 부분부터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밀실공천이라는 관행도 그렇습니다. 민주적 정당구조와 행태라면 공천은 밑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총선연대가 낙천운동을 벌인 것은 밀실공천의 관행을 인정하고 들어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비민주적 관행부터 타파하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
“시민운동은 한 가지 이슈에 집중할 때 효과적이지요. 여러 가지 이슈를 한꺼번에 내세우는 것은 운동의 효율성으로 볼 때 부적합합니다. 가령 정당구조나 공천과정의 민주화는 지금의 상황에선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니까 일단 사람을 바꾸는 문제로 집중하게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를 인터뷰한 날은 총선연대가 낙선운동을 가능한 한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하겠다고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소식에 좀 맥이 빠져 있는 상태였는데 사실 그건 좀 염치없는 일이긴 하다. 내가 나서서 하지도 못하고 구경이나 하는 주제에 법을 어기라고 박박 우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시민들의 성원을 입어 시작한 일을 다시 여론을 내세워 한 발 빼는 것은 자가당착 아니냐고 끝까지 감정을 내세웠건만 최 교수는 역시 학자적 시각의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사실 초기의 고조된 분위기에 비하면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예를 들면 음모론이라든가 보수언론의 공격 등으로 좀 분위기가 가라앉은 건 사실이에요. 시민운동은 이른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적 접근과 맥시멀리스트(Maximalist)적 접근이 있을 수 있는데 이번 총선연대의 경우는 미니멀리스트적 운동의 측면이 강합니다. 여러 가지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객관적 기준을 세워 놓고 낙천낙선운동에만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사회적 상황이나 운동의 역량 등에 의해 접근 방법이 정해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의 상황을 보면, 지난 87년의 시민항쟁 이후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위로부터 이뤄진 측면이 강하고, 따라서 운동의 사회적 한계나 제약은 오히려 커진 셈이 됐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총선연대도 자원의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에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겠지요.”
자원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요?
“인적 자원이라든가, 여론을 끌어들이는 이슈의 지속적인 개발, 참여 열기 같은 것들이겠지요. 또한 연대감이 문제인데 참여 단체가 많을수록 이 연대감은 밀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총선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가 400여 개가 훨씬 넘습니다. 아무래도 적은 숫자의 연대보다는 많은 숫자의 연대가 강도 면에서는 더 불리할 수 있을 겁니다.”
동의를 구하기 위해 옆에 있던 『참여사회』의 장윤선 씨를 슬쩍 보았더니 끄덕끄덕하고 있다. 이쯤에서 혹시 지리해 하실 지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말머리를 잠시 돌려 보았다.
예상하긴 어려운 문젭니다만 이번 선거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가령 충청지역이 모두 자민련만 지지할 것이냐, 또는 수도권에서 꼭 야당이 유리할 것이냐 등의 문제는 깊이 따져봐야 할 문제지요. 중요한 건 어느 당이 의석을 어느 정도 차지할 것이냐 보다 어떤 정책으로 국민의 평가를 받고자 하느냐 하는 내용적인 측면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차원에서 여당이 선거에서 실패한다면 개혁은 참으로 어렵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재벌개혁이 어려워질 테고 정치 자체가 매우 불안정해질 수 있지요. 서구 선진국처럼 정치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면 몰라도 우리의 경우는 정치가 생사를 건 게임처럼 돼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우리 정치는 정말 자생력이 없는 것일까…. 그렇게 혼돈 상태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아마 상당한 혼란이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 기반은 매우 강합니다. 언론도 그 보수세력 기반에 들지요. 따라서 시민운동이 정치개혁에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낙천낙선운동도 수없이 공격받고 있는 게 현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시민사회가 지체된 정치사회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변화의 와중에 있기 때문에 어려움은 따르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의지만 있었다면 개혁은 당연히…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얼마나 개혁을 했길래 여당이 선거에서 지면 모든 게 힘들어진다는 말인가.
이 정부가 했다는 개혁이 주로 경제개혁인 것 같은데 좀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그게 캉드쉬가 한 것이지 이 정부가 한 거냐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웃음).
“경제개혁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글로벌경제에 몸을 맞추는 구조조정(Adjustment)과 경제질서와 체질을 바꾸는 개혁(Reform)이 있는데 앞의 것은 IMF의 요구에 따라 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뒤의 것은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 노사관계의 민주화, 금융구조 개편 등 IMF의 영향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 북한정책은 다른 정부라면 불가능했던 것들입니다. 물론 문제는 정치개혁인데 이 부분은 할 말이 없지요.”
어떤 이들은 김 대통령이 집권초기 6개월을 이리 저리 눈치보다가 놓쳤다는 말도 합니다만….
“그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됐는가를 짚어봐야 하지요. 첫째, 국정운영의 주체들이 개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고 봅니다. 우선 인적 제약이 컸습니다. 오랜 야당생활로 전문가 집단이 내적으로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구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요. 둘째로는 경제위기가 집권초기에 개혁 이슈를 모두 경제적인 면에 집중시켰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안일함에 빠진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 개혁할만한 상황이 됐을 때는 이미 여러 가지 조건이 시간적으로 늦어져 버렸다는 것이지요. 공동정권의 한계를 얘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자민련의 제약 때문에 개혁이 안됐다는 것은 일종의 알리바이일 뿐이라고 봐요. 내부의 개혁 역량과 의지가 확고하고 대통령이 할 의지만 있다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가만 있자…. 그렇다면 거기에 최 교수의 책임은 없을까. 그는 집권 초기에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은 사람이 아닌가?
“정책기획위원회는 관료체제와 시민사회의 경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책결정구조는 그런 위원회가 영향력을 가질만한 조건이 아닙니다. 일본만 해도 오부치 총리에게 비슷한 자문위원회가 있지요. 지난 번에 이 위원회가 영어를 제2공용어로 하자고 해서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지게 됐는데 그들은 정책결정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 이제 얘기를 옮길 때가 되었다. 무슨 얘기로 옮길지는 독자 여러분이 눈치 채신 그대로다.
물러나실 때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군요. 그때 ‘분홍색’이라고 몰리셨는데 (웃음) 일의 과정이야 다시 돌이킬 필요가 없을 것 같구요. 많은 지식인들이 최 교수님이 너무 쉽게 물러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 나름대로는 싸울 만큼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그런데 꼬박 석달 동안 연일 이념공격이 제 개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힘이 좀 부쳤던 것도 사실입니다. 시민단체와 국내외 지식인들이 지지하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격려하여 그 만큼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도 간접적으로 지원한 게 아니었습니까? 제가 신문에서 보았던 바로는 그랬던 것 같은데요.
“글쎄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론 그 문제로 청와대의 지원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론이긴 합니다만, 그때 밀어 부쳤다고 해서 과연 이념적 공간이 넓어졌을까 하는 것도 신중히 생각할 문젭니다. 저는 그 정도가 우리사회가 이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좀더 많은 논란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특히 전북대 강준만 교수라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접는다. 우선은 내가 이 부분에 대한 논쟁에 별로 자신이 없어서이고 이 지면의 분위기와도 조금은 벗어나는 것 같아서다. 이제 마무리할 단계다. 우리 정치판에 대한 처방을 주문해 보았다.
지식인의 현실정치참여는 논쟁중
“이번 공천반대운동은 정부의 정치개혁 실패와 정치사회의 개혁거부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치사회는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조직화가 약합니다. 민주당은 자유주의적 개혁정당의 모습을 띠어야 합니다. 이럴 경우 수구적인 세력들의 설 자리가 줄어듭니다. 그러기 위해선 신진세대의 진출이 많아야 합니다. 개별적 참여가 아닌 집단적 정치세력화가 필요하고 이념적 방향도 뚜렷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386세대에 저는 아주 호의적입니다. 그들에 대해 일부 비아냥이 있는 걸로 알지만 그들이야말로 민주화 운동을 몸으로 겪은 세대들이니까 보다 보편적이고 합리적 가치를 추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물론 일부는 구시대 정치행태를 흡수하는 과정을 겪을지 모르지만 일단 신진세대의 수를 늘리고 그들로 인해 정치문화가 일정부분 바뀌면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얘기가 다시 초반의 인적 청산 문제로 돌아간 셈이다. 그 만큼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는 뜻이려니….
요즘은 어떤 일에 관심을 쏟고 계십니까?
“미국에서 한 학기를 보내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제가 정보화 사회에는 좀 관심이 떨어졌던 편인데 이번에 많이 바뀌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세계화가 가져오는 사회적 충격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실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 사회가 어떤 개혁의 모델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정책분야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각 분야 교수와 전문가 30여 분이 참여하여 활발한 발표와 토론을 하고 있지요.”
시간이 정확히 두 시간이 흘렀을 때 그가 시계를 쳐다봤다. 설렁탕 먹은 시간까지 합하면 세 시간도 넘은 것이니까 이제 돌아갈 때도 되었다. 앞으로 혹시 다시 정부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하시겠느냐는 질문을 후렴처럼 던져보았더니, 실제로 정책을 바꾸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모르지만, 지금 같은 구조에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모두가 알다시피 지식인의 현실참여에 누구보다도 긍정적인 사람이다. 요즘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역사의 가정을 세우고 담론을 진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김구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뭐 이런 식이다. 만일 최장집 교수가 정책기획위원장으로 남아 있었고, 그가 실제로 정책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면? 답은 독자 여러분께서 구하시길….
후기 : 인터뷰 도중에 한 의원이 불쑥 들어왔었다. 최 교수와는 대학 동기 사이. 날 보더니 묻는다. “손형은 그래 안 나가는 거요?” “네, 안나가기로 했습니다.” “잘 했어. 이 아사리판에 뭐 하러 와요?” 촌각에 이뤄진 대화라 좀 얼떨떨했는데, 글쎄…, 최 교수라면 내게 뭐라고 했을까. 헷갈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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