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탈락된 사람들 가운데 실제는 가족으로부터 어떤 도움이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많이 있다. 참여연대는 이들의 딱한 사정을 접하며 그들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고, 이를 방치하는 기초법의 부양의무자기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36년 전 가족버리고 떠나간 아버지의 부양을 요구받는다면
얼마전 참여연대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구로동에 산다는 안순옥씨(가명)는 36년 전 본인을 포함해 어린 자녀와 부인을 버리고 떠나갔던 아버지가 수급신청을 하면서 본인이 아버지에 대한 부양의무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동사무소로부터 연락받았다며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하였다. 안씨는 참여연대로 연락하기 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부당함을 제기하며 법률적인 합법성 여부를 문의하던 중 여성단체연합의 소개로 참여연대와 연락을 하게된 경우이다. 우리는 청각장애인인 아버지 안노인(76세)의 생활상을 알기 위해 안노인이 현재 살고있는 봉천동의 담당공무원 및 관련된 장애인단체와의 몇 차례의 전화통화를 시도하였다. 안노인은 청각장애인으로 첫 번째 결혼에서 안순옥씨와 그녀의 형제들을 얻고, 이후 이혼을 한 후 친분이 있는 여성과 사실혼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사실혼관계의 여성은 이미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어머니와 안노인과의 결합을 반대하였다. 현재의 상황은 안노인과 사실혼관계에 있던 여성과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드러나게 되었다. 자녀들은 일천만 원짜리 집을 구해주고 안노인을 부양하지 않겠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던 중 장애인이면서 76세 고령의 독거노인 처지가 되버린 안노인의 사정을 안 한 장애인단체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신청과정 등을 도와주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호적에 올라있던 안순옥씨가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이므로 안노인이 수급자가 되면 안순옥씨에게 생계비를 청구하게 될 것이라는 연락이 오게 된 것이다.
과연 안노인의 생계는 누가 책임져야 되는 것인가? 안순옥씨가 36년 전 가족을 버리고 연락한번 없던 아버지를 부양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실혼관계에 있던 자녀들이 부양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무도 부양의 의무와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홀로 관련단체 등의 부정기적인 도움으로 남은 여생을 쓸쓸히 보내야 되는 것인가?
최저생활 이하의 모든 국민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관계가 단절된 가족, 부양과 책임을 질 사람이 없는 이런 안노인과 같은 처지의 많은 저소득층에게 부양의무자기준은 그들의 삶을 옭죄는 너무 높은 벽이다.
자녀가 다섯. 그러나 박스주워야 생계유지
노원구 하계동에 사는 81세 정순이(가명) 할머니는 자녀가 다섯명이다. 자녀가 다섯이나 있다면 그 나이엔 손주 재롱을 보며 남은 여생 편안히 보낼 법도 하지만 정순이 할머니는 하루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동네를 누비며 박스를 주워야 한다. 그것도 지금은 얼마 전부터 심해진 관절염 때문에 할 수 없고 의자에 앉아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처지이다. 같은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이웃이 근처 종교기관에 연락해 지금은 후원금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시는 정순이 할머니가 수급자로서의 혜택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이다. 정순이 할머니는 61세 된 아들과 둘이 살아가고 있다. 동거하는 아들 천씨는 아내가 가출하고 무직으로 전혀 소득이 없으며 다리골절로 통원치료중이다. 나머지 자녀로는 세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지만 다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순이 할머니를 부양하지 못하는 처지이다.
정순이 할머니에게는 동거하는 아들 천씨의 자식인 손자가 하나있는데 이 손자가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탈락되었다. 이 손자는 얼마전 제대 후 직장을 얻었지만 회사숙소에서 생활하며 할머니와 아버지가 사시는 영구임대아파트의 관리비를 내주는 이상은 부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순이 할머니는 관절염으로 이제는 박스를 주워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다.
정순이 할머니 같이 자녀는 많지만 실제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에서 수급자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의 어려운 노인들은 많다. 근처 상계동에 사시는 한영희(가명) 할머니는 76세의 독거노인이다. 자녀가 8명이나 있어도 자녀들로부터는 경제적지원을 받지 못하면서도 자녀들이 부양하면 살 수 있다는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기초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다.
참여연대, 부양의무기준 공익소송 진행계획 밝혀
관계가 단절된 가족, 부양능력이 있는 자녀라고 하지만 실제 그들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벅차 부양을 하지 못하는 가족들. 최소한의 삶도 유지하기 어려운 서민들에게 현행법은 과연 모든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참여연대는 앞으로 이들과 함께 부양의무자기준의 부당성과 불합리함을 공익소송을 통해 제기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함께 할 계획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2년 04월호(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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