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4년 07월 2004-07-01   1075

자연의 영혼을 가진 아이를 기다리며

이번호부터 생활글을 기고하는 원지영 씨는 전 한겨레신문 편집기자로 현재는 건강한 출산을 위해 휴직중인 회원입니다. 새롭게 단장한 회원생활글 <삶의 길목에서>는 지금까지 회원에세이를 맡아준 이왕재 회원과 함께 원지영 회원, 그리고 30대 초반의 여성직장인의 생생한 세상보기를 전해줄 회계사 정문영 회원이 번갈아 기고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8월이 되면 나는 첫아이를 품에 안게 될 것이다. 삶에서 이런 축복이 있을까. 태어날 아기에 대한 축복, 그리고 8개월 여 동안 변화된 내 삶의 건강함에 대한 축복.

아기가 생기면서 올 1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쉬고 싶었다.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태교에 좋겠지만, 적어도 아이와 내가 한 몸인 동안엔, 한 감정을 느끼는 길지 않은 동안엔 지금껏 몰랐던 조용하고 때론 심심하기도 한 생활을 누려보고 싶었다.

집에서 쉬는 최초의 며칠 동안 나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집 앞에 작지만 근사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는 것! ‘전엔 왜 이 나무들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출퇴근 시간에 쫓겨다닐 때 내가 아는 우리 동네의 특정 장소라곤 몇몇 가게들이 전부였다. 어두울 대로 어두워진 거리에서 아파트 불빛을 찾아 들어오면 하루 일과는 그걸로 마감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 이 공원은 내겐 유명 수목원보다 훨씬 훌륭한 산책로가 되어준다. 겨울에도 소나무향이 그리 짙게 난다는 걸 알았고, 종잇장처럼 야들야들한 봄꽃잎에 햇빛이 투명하게 스며드는 모습도 눈부셔하며 바라보았다. 요즘은 부쩍부쩍 하늘로 키를 키우는 나무들이 참 기특하다.

회사 다닐 땐 집이 그저 기능적인 의미일 뿐이라서, 어서 이 교통 불편한 동네를 떠나 시내 한복판으로 이사갔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우연처럼 살게 된 이곳이 자연을 알게 해주는 장소가 되었으니 무척 고마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 언제든 나무와 풀 사이로 들어가 누울 수 있는 이 작은 숲에서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생활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읽는 책들도 주로 자연과 환경에 대한 것들로 바뀌었는데, 며칠 전 읽은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기억해둬야 할 부분들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생태학자, 자연주의자로, 아이들을 데리고 야생의 자연 속으로 많은 여행을 해온 사람들인데, 여행을 통해 어른과 아이가 자연을 보는 시각을 깨닫게 되었다. 참 단순하면서도 금방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큰 차이. 어른들이 커다란 폭포, 절벽 등 극적인 경관과 전형적인 장소 앞에서 ‘멋지다’를 연발하며 자연을 구경할 때, 아이들은 자기 눈앞에 보이는 자연의 작은 모습들을 사랑하고 그 일부가 된다. 솔방울, 빛나는 돌멩이, 깃털, 야생화, 개울에서 물 속 동물들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에 몰두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이란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는 아주 구체적인 무엇이며, 이미 거기엔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이 구별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이젠 하늘과 바다와 바람에 대해 아이에게 최소한의 사실적 느낌도 제대로 이야기해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일까, 걱정스럽다. 그래, 인정하자. 아이들처럼 자연이 내 속에 세밀화로 살아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겠지.

허나, 내가 도시 속에서도 자연인으로 살아갈 희망은 있다. 왜냐면 얼마 후면 자연의 영혼을 그대로 간직한 채 한 아이가 내 곁에 올 것이므로. 깨끗한 눈 속에 와 닿는 자연은 어떤 모습인지, 나도 어릴 때는 지니고 있었음이 분명한 그 눈망울이 어떤 빛이었는지 알려줄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므로….

원지영 전 한겨레신문 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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