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사고 교훈,
저탄소 녹색사회 밑거름으로 삼자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황우석, 광우병, 천안함, 구제역… 이렇게 한국 사회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내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전개될수록 국민의 과학기술 ‘무장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나쁜 일은 아니다. 사회적 공론화가 합리적이고 사전 예방적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이뤄졌으면 불필요한 갈등과 손실을 줄일 수 있었겠지만, 사후 일지라도 교훈을 얻었다면 불행 중 다행일 테니 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비슷한 모양새다. 많은 국민들이 ‘가압 경수로’니 ‘시버트’니 쉽지 않은 전문 용어들을 습득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 안전하고 더 깨끗하고 더 경제적인 에너지 대안을 옆에 두고서도, 원자력 중독에서 아니 그 신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인지 제대로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금 논의되는 주요 담론이 또 다른 ‘원전 안전 신화’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좀 더 기술 개량하면, 좀 더 안전 관리하면, 우리 원전은 안전해진다는 ‘원전 근본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안전한 원전은 없는 데도 말이다.
장면 1.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
일본의 안전사고를 타산지석 삼아 국내에도 원전 안정성을 다시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정부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해 안전 점검에 착수했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시종일관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현재 31개국의 원전 국가에서 두 가지 바람이 불고 있다. 핵에서 벗어나려는 거대한 태풍이 있는 반면 핵에 안주하려는 미풍도 있다. 한국은 후자에 속하는데, 원전 업계, 관료, 학계, 언론의 카르텔인 소위 ‘원자력 마피아’가 주도하는 ‘원전 안정성’ 프레임에는 기존 정책을 진정 ‘재검토’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독일, 스위스, 중국, 대만 등 다수 원전 국가들에서 원전 수명 연장 유보, 노후 원전 교체 보류, 신규 원전 건설 재검토를 선택하는데 비해, 한국은 러시아, 인도, 프랑스와 함께 원전 ‘생명 연장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즉, 원자력 의존 에너지체계는 손대지 않고 단지 안전 체계만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이번 사고 전에 후자 그룹의 선두 주자였는데, 2007년 지진 안전지대라고 알려진 니가타현의 지진으로 그 지역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사건은 원전 선진국 일본의 핵 역사라 할만한 ‘히로시마에서 후쿠시마까지’의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전력 생산량의 35~40%대를 차지하는 원자력을 2030년까지 59%(약 40기 추가 건설)로 높일 계획을 세웠다. 현재 9기가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이다. 추가로 이뤄지고 있는 신규 부지 선정에 울진, 영덕, 삼척이 유치 의사를 밝혔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중 2개 지역을 건설부지로 확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원전 국면’에서 지역별 논란이 커져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장면 2. ‘평화적 핵 이용 동의, 후회하다’
1979년 쓰리마일과 1986년 체르노빌은 핵 발전 위험의 뼈아픈 상징으로 남아 있다. 망각의 힘 때문인지, 아니면 원전 사고가 자동차 사고율보다 낮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부산 기장, 경북 경주, 전남 영광, 경북 울진, 이렇게 네 곳에 위치한 21기의 원전이 본인 주거지와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판단한 탓인지 몰라도, 핵 발전의 필요성이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깨끗하고 안전하고 값싼 원자력’이라는 주입식 교육과 연간 홍보비 100억 원이 넘는 광고물에 익숙해진 까닭에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교과서에 기록된 대형 사고 말고도 원전 국가들에서 무려 400개가 넘는 위험천만한 사고들이 발생했다. 국내에서도 고리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한 1978년부터 2007년까지 398건의 고장정지 사고가 발생했다.
1996년, 어느 일본 원전 건설 현장감독의 고백 편지는 이번 사태로 다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는 평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쿠시마 원전을 포함한 일본 원전 정책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평화적 핵 이용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핵 ‘무기’의 파괴성은 반대하면서도,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유로 핵 ‘발전’의 파괴성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어느 평화운동가가 이런 태도를 반성하는 공개 선언이 변화의 전조이길 바란다.
‘죽음의 땅’, ‘사망자 10만 명’ 등 어떤 식으로 말하더라도, 신기술을 도입하면 그 위험성이 발생할 가능성을 전부 없애거나 용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걷잡을 수 없는 일본 사태를 보면서도 안전성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많이 지적된 것처럼, 원자로 형태의 차이가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한국 역시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핵 사고는 그 영향력이 시·공간적으로 광범위하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멀리는 미국과 유럽에까지 방사성 농도를 측정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장기 지속된다. 또한 한국, 일본, 중국(동부) 삼국은 원전 밀집도(약 90기)가 높아 새로운 ‘화약고’가 될 우려가 크다.
이제는 직접적인 피폭 위험뿐만 아니라 토양, 물, 먹거리를 통해 이차적으로 인체 그리고 미래세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뉴스도 증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체르노빌처럼 그 지역이 언제 옛 모습으로 복구될 수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핵에너지의 역사는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은폐하고 봉합하는 기술 발전사라 할 수 있다. 또한 핵폐기물을 일만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은 없다. 핵 위험은 관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장면3. ‘원자력은 그린 에너지다’
탈핵도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피를 먹고 자라는지 모른다. 생태경제학자 프란츠 알트는 대형 원자력 사고가 또 일어나야 원전 정책이 바뀔 것인가 경고했다. 그럼에도 단지 안전점검 강화로 때우려는 전문가들은 안전에 대한 기술주의와 관리주의라는 확고한 신념에 더해 ‘원자력=그린 에너지’라는 공식을 새롭게 쓰고 있다.
모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그래도 원자력은 그린 에너지라고 주장하는 섬뜩한 주장을 한다. 일본 상황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올까 싶을 정도다. 사람 죽이는 ‘녹색’이 가능한가? 길어야 80년 남은 고갈 자원인 우라늄이 지속가능한가?
이는 무엇보다도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허구적 신화에 기반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원자력 확대가 해법이라는 담론이다. 국제 원자력 마피아가 몇 년전부터 유포하고 있는데, 사양 산업에 접어든 원전 산업을 육성할 의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1990년대 이후, 아시아와 동유럽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다수 국가에서 원전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최근 다수 선진국에서는 노후 원전 수명 연장만이 논쟁이 될 정도로, 원전 업계는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폐쇄비용 지출을 지연해보고자 할 뿐, 다수는 신규 투자를 포기하고 있다.
우선 그 주장은 온실가스 저감효과를 과장하는 데 문제가 있다. 발전 과정만 보면 화석연료 발전에 비해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라늄 채굴·제련·운송, 원전 건설, 핵폐기물 처분 등 전 과정을 포함해 실증적으로 분석하면, 핵에너지의 기후 안정화 효과는 알려진 것처럼 크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핵에너지의 온실효과 감축 기여도를 2030년까지 10%, 2050년까지 6%로 예측한다. 반면 70~80% 감축은 에너지 효율과 재생가능에너지라는 진정한 녹색 에너지 시스템이 담당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전력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로 높이는 소극적인 목표를 정해 놓고 있다.
실제 원자력 르네상스 담론은 ‘원자력 경로의존성’ 심화를 노리는 꼼수에 불과하다. 원전의 대안이 되는 저탄소 발전소와 재생에너지가 원전보다 빠른 추세로 보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또한 경제성과 기술력 측면에서도 허위와 과장이 심하다. 이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원전의 안정성은 다른 에너지원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취약한 객관적 상황에서, 혹자는 핵에너지의 경제성과 기술력 우위를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국가별 맥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 또한 핵 발전이 절대적인 우위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 역시 ‘핵연료 주기’를 종합적으로 계산하면 원전 경제성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2008년에 OECD 산하 원자력에너지기구(NEA) 역시 원전 정책이 직면할 문제점에 대해 안전문제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1950년대 원전 상업화 당시 해외 업계들이 공언했듯, 초기 정부 지원만 있으면 곧바로 원전 시장은 독립할 수 있다는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직·간접적인 보조금이 없다면 생존이 불투명한 전력시장인 셈이다. 따라서 세금이나 민간 투자가 대안적 에너지 기술 분야에 투입된다면, 이미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저탄소 에너지 시장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원전 확대는 에너지 과소비를 초래한다. 원전의 특성상 한번 가동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정지하거나 조절하기 힘들다. 따라서 원전 증설은 대표적인 공급 위주의 에너지 정책인데, 전력 과잉생산으로 남아도는 전력을 싼 값에 소비하게 만들어 전력 소비를 부추긴다. 그 결과 근래 발생하는 겨울철 전력 피크와 같은 기현상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전력 부족현상을 원전 증설 근거로 제시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10년 정도 걸리는 원전 건설 기간 동안, 수요 예측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어 발전 설비 과잉과 부족 사태는 반복되고 있다.
장면4. ‘해외자원개발에 나서야한다’
마지막 장면은 역설적이다. 국내 원전에 불똥이 튀자 석유·가스 등 ‘해외자원개발’ 쪽의 반응이 새롭다. 에너지기업들의 이익집단인 해외자원개발협회의 한 인사가 토론회에 나왔다. 원자력 발전에 위기가 왔으니 해외 화석연료 개발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 그러니 정부의 지원(사실상 특혜)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것도 기업의 비밀주의와 투명성을 다루는 자리에서 말이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이 97%에 이르는데, 최근 (실제 국내에 수입되는 것과 무관하게) ‘자주개발률’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공·사를 불문하고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에너지 개발을 하거나 관련 기업의 인수·합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존 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에너지 자립’은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을 늘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로 쓴 석유’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과연 우리에게 핵에너지 아니면 화석에너지 말고는 현실적 대안이 없는 것일까.
물론 있다. 앞서 핵에너지의 안전성, 청정성, 경제성을 다루면서, 그 대안으로 언급했던 탈핵과 에너지 전환이다. 물론 당장 원전의 전력기능을 정지시킬 필요까지는 없다. 당장 필요한 것은 해외 사례와 같이 탈핵과 전환 비전이다.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을 연장시키지 않고 2030년이든 2050년이든 단계적 폐쇄를 선언하고, 에너지 수요정책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계획을 총동원하여 저탄소 녹색사회로 향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를 위해 2004년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주도한 ‘시민합의회의’의 경험을 확대하고 도입할 필요가 있다. 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정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했던 시민패널들은 원전 신규 건설 중단과 재생에너지 개발이라는 검토의견을 제출했다. 새로운 실험으로 그쳤지만, 유럽의 원전 단계적 폐쇄 결정 과정을 연상시킬 정도로 의미 있는 모델이었다.
각종 대형 사고와 정치·사회적 변화로 촉발된 탈핵 흐름을 타고 원전 경험 국가 중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이렇게 7개국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 반면 이런 국제적 추세와 무관하게 ‘원전 공화국’을 추구하던, 세계 원자력 소비 기준으로 현재 3위 일본은 이번 재앙 와중에도 5위 한국의 롤 모델이다. 심지어 2030년까지 원전 80기를 수출할 계획이다.
핵에너지의 안전기준은 불확실성 속에서 자의적으로 결정된다. 후쿠시마 사고는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해와 안전관리 부실을 포함한 원전 의존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인재가 결합되어 발생했다. 이제 원자력에 집착할수록 잠재력이 풍부한 대안과는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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