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1년 04월 2011-04-01   1376

김재명의 평화이야기-국내 억압과 외세 개입에 시달리는 리비아

국내 억압과 외세 개입에 시달리는 리비아

김재명
<프레시안>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민주화를 요구하는 아랍시민혁명은 중동지역에 들불처럼 번졌다. “죽어야 권좌에서 물러난다.”는 소릴 들어온 중동의 독재자들은 이즈음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상황이다. 민주화의 외침은 21세기의 중동 정치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튀니지와 이집트를 비롯한 독재정권들이 잇달아 무너지고, 리비아는 내전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독재왕정들도 민주화 조치를 약속하며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중동정치를 이해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인 ‘왕의 딜레마’(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들어주면 요구가 끝이 없고, 억누르면 정치적 긴장이 생겨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움)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매조-새디스트라는 비판 받는 카다피

이 글을 쓰는 3월말 시점에서 국제사회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끄는 지역은 리비아이다. 지금 리비아는 불바다나 다름없다. 1969년 군사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42년 동안 철권을 휘둘러온 무아마르 카다피(1942년생)가 위기를 맞이했다. 친카다피-반카다피 세력이 맞서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1천 명을 훌쩍 넘어섰다. 여러 전쟁연구자들이 규정하는 전쟁개념이 ‘1년에 1천 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는 유혈투쟁’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리비아는 2011년에 지구촌에서 벌어진 첫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전쟁은 국제전과 내전으로 나뉜다. 1990년대 초 옛 소련이 작은 공화국들로 나누어지고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미국-이라크 전쟁(2003년)을 빼고 나머지 대부분의 전쟁은 내전양상을 보여왔다. 리비아의 경우는 국제전과 내전의 성격이 뒤섞인 특이한 경우다. 국내적으로는 친카다피-반카다피 세력이 교전을 벌이고, 국제적으로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3월17일)에 따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군이 리비아의 친카다피 무장세력을 상대로 공습을 벌였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카다피를 어찌 평가할 것인가와 둘째, 나토의 공습으로 나타난 국제사회의 개입이 과연 올바른가이다. 첫째 카다피에 대한 평가는 2003년 전의 카다피와 그 뒤의 카다피로 나뉜다. 2003년 이전의 카다피는 전 세계 반미-반서구 전선의 지도자로서 쿠바의 카스트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을 죽이자, 카다피는 꼬리를 내렸다. 후세인의 몰락을 지켜본 뒤 카다피는 △그동안 그토록 거부해오던 팬암기 추락사고(1988년) 책임을 인정하고 사망승객과 승무원 2백70명의 유가족에게 27억 달러 보상금 지급을 약속했고, △은밀히 추진해오던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한다고 선언했고 △미국의 조지 부시가 벌이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하면서 이슬람 저항세력에 관한 정보를 건네주었다. 그를 받쳐준 힘은 리비아 석유였다(전 세계 석유매장량의 3.3% 보유).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카다피로부터 안정적 석유공급을 약속 받았다.

  꼬리를 내리고 고분고분해진 카다피에 대한 보상은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2006년)로 나타났다(미국과 리비아는 1982년 반미 리비아인들의 미국대사관 난입사건 뒤부터 외교관계가 끊어졌고 카다피 관저가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2003년 뒤부터 카다피는 더 이상 전 세계 진보진영으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는 거물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국내적으로는 독재로 민초들을 억누르고 대외적으론 비굴할 정도로 유화정책을 펴는 이중인격자, 심리학에서 말하는 매조-새디스트(윗사람에겐 굽실굽실, 아랫사람에겐 엄한 인간형)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했다. 한국의 일부 진보진영에서 카다피를 동정하는 것은 2003년 이전의 카다피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를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인가?

둘째,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국제사회의 군사적 개입이 과연 올바른가. 미국이나 서유럽 지도자들은 나토 공습이 독재자 카다피의 폭압에 저항하는 리비아 사람들이 더 이상 죽고 다치는 일이 없도록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의 성격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중동 팔레스타인에서는 인권탄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있다. 미국은 1982년부터 지금껏 32번이나 유엔안보리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표결에서 거부권을 휘둘렀다. 여기서 인도주의적 개입의 이중잣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인도주의는 모든 인류에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미국은 왜 예멘과 바레인의 독재정권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반정부 민주화세력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까? 미국으로선 그 나라가 독재냐 민주냐보다는 친미냐 반미냐의 잣대가 더 중요하다.

  또한 인도주의적 개입이라 할 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인가’를 따져 물어볼 필요가 생겨난다. 안정적인 석유공급선 확보를 노린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이 대표적인 보기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신음하는 이라크 국민들을 구해내겠다”는 그럴듯한 인도주의로 포장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속셈은 석유에 있었다. 지금 리비아에서 그런 타산적인 개입이 인도주의 깃발 아래 행해지고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카다피 체제 전복에 가장 앞장서는 것도 프랑스의 국가적 문제(리비아 석유수급 불안)와 사르코지의 개인적 속셈(리비아 적극개입으로 지지율을 높여 2012년 재선을 노리려는 전략)이 얽혀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그 나름의 셈법(중동의 높은 반미정서, 미 중동석유이권 보호, 이스라엘 안보 챙기기, 천문학적인 이라크-아프간 전쟁비용 고려)으로 리비아 상황을 재고 있다.

  이처럼 이해관계를 저울질한 강대국들의 개입 명분으로 허울뿐인 인도주의가 이용된다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리비아 사람들의 인간안보를 뒤쪽으로 제쳐둔 모험적 군사개입주의라는 비판을 받기 마련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촌 사람들은 카다피 독재를 비판하면서도 아울러 서방국가들의 군사개입의 속내를 마땅찮은 눈길로 바라보는 양비론적 태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리비아 사람들이 국내적 억압과 외세의 개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민주시민적 권리를 누릴 날은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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