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울지 마세요”
– 죽음을 마주한 아이가 어머니에게 보낸 음악
글. 이채훈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공저) 등.
페르골레지 <슬픔의 성모>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랑을 설파하는 아들 예수가 늘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다. 아들은 기득권 세력과 충돌했고, 민중에게 버림받아 결국 십자가로 끌려 나왔다. 어머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십자가에 매달린 아들을 보며 울부짖을 수도 없었다. 극한의 슬픔, 현실에서 체념할 수밖에 없지만 영원 속에 새겨져 빛나는 모성, 바로 성모 마리아의 마음이다.
페르골레지(1710~1736)
탄식하는 어머니의 마음, 날카로운 칼이 뚫고 지나갔네.
존귀한 어머니 애통해 하실 때 함께 울지 않을 사람 누구 있으리?
이토록 깊은 어머니의 고통에 함께 통곡하지 않을 사람 누구 있으리?
사랑의 원천이신 성모여, 내 영혼을 어루만져 당신과 함께 슬퍼하게 하소서.
<슬픔의 성모>는 라틴어 제목이 ‘스타바트 마터Stabat Mater’로 ‘어머니는 서 계시고’라는 뜻이다.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을 보며 비탄에 잠긴 채 서 있는 성모 마리아를 노래한 성가곡이다.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야코포네 다 토디가 가사를 썼고 여러 작곡가가 음악을 붙였는데, 특히 지오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1710 ~1736)의 작품이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다. ‘내 육신이 죽을 때Quando Corpus Morietur’에 이어서, 끝 부분의 ‘아멘’이 듣는 이의 눈물을 조용히 닦아준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삽입된 곡 중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작품이 아닌 것은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터>뿐이다. 35살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보다 더 꽃다운 나이에 죽은 천재에 대한 오마주homage였을까? 영화에서는 살리에리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에 나오는데, 18세기 성당에서 장례미사 때 널리 연주됐다고 한다. \
페르골레지 <슬픔의 성모> 중 ‘내 육신이 죽을 때’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Pergolesi Amadeus를 검색하세요.
https://youtu.be/9BRtuYcOuOo
페르골레지는 26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 작곡가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10대부터 천재로 이름을 날렸고, 바이올린 즉흥연주 솜씨가 사람들을 경탄하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수도승>, <콧대 높은 죄수>, <마님이 된 하녀> 등의 오페라가 성공하여 ‘오페라 부파’의 선구자로 역사에 기록됐고, 바이올린 소나타와 협주곡 등 기악곡,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등 종교음악도 많이 남겼다.
페르골레지는 한때 귀부인 마리아 스파넬리와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폐결핵이 점점 악화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나폴리 근교 포추올리의 수도원에 들어갔다. 적막한 수도원에서 죽음을 예감하며 써 내려간 곡이 바로 <슬픔의 성모>다. 젊은 나이에 외롭게 세상을 떠난 천재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곡을 쓸 때 페르골레지는 예수의 죽음 앞에서 말을 잊은 성모 마리아를 떠올리며,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내는 자신의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했을 것만 같다.
고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인류 역사에서 젊은 넋들의 죽음은 왜 끊이지 않는 걸까. 동서고금, 어머니의 눈물은 왜 마르지 않는 걸까. 폴란드의 작곡가 헨릭 고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1977년 초연되어 현대음악으로는 드물게 100만 장 넘게 음반이 팔렸다. 그만큼 슬픔이 이 지구별을 뒤덮고 있기 때문일까.
이 교향곡에는 탄식과 같은 소프라노의 노래가 들어 있다. 1악장은 중세 수도원에서 전승된 <슬픔의 성모>다. 잃어버린 아들의 고통을 나누고 싶다고, 목소리라도 들려 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세상을 떠났음을 인정할 수 없다. 3악장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으로 아들을 잃은 폴란드 어머니들의 아픔을 노래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은 어디로 갔는가? 아들을 빼앗아 간 자들을 원망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울고 울어 늙은 어미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강을 이루어도, 아들을 살릴 수는 없다. 차디찬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아들을 찾을 길 없어 어머니는 갈 곳을 잃었다.
고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중 2악장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Gorecki Sorrowful Songs Lento를 검색하세요.
https://youtu.be/miLV0o4AhE4
대답 없는 세월호의 4월이 가고, 광주의 젊은 영령들이 부활하는 5월이다. 슬픔은 왜 이렇게 되풀이되는 걸까. 고레츠키의 <슬픔의 노래> 2악장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어간 한 소녀가 수용소 벽에 써 놓은 말을 가사로 사용했다.
“엄마, 울지 마세요. 비록 제가 먼저 떠나지만 고결하신 성처녀 마리아가 저를 지켜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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