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6년 05월 2016-04-29   2074

[역사]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글.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나의 서양사편력 1·2>, <번역은 반역인가>, <밀턴 평전> 등의 저서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서양사를 우리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는 데 힘쓰고 있다.

 

1910년대 영국 런던의 한 가정. 뱅크스 집안의 두 아이는 어찌나 장난이 심한지 보모가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린다. 어느 날, 보모를 구하는 광고를 보고 한 여인이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 포핀스. 한 손엔 가방을, 한 손엔 우산을 든 이 마술사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줄리 앤드루스 주연 영화 〈메리 포핀스〉(1964)에서 아이들의 엄마(뱅크스 부인)는 외출이 잦다.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가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1910년대 영국 사회의 익숙한 풍경이다. 

20세기 초 영국에서는 여성 참정권 운동이 고조되고 있었다. 1869년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이 출간된 이후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져, 1880년 여성에게 주의회 투표권이 부여되었다. 그 뒤 1883년과 1892년에 전국적 수준의 여성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으나 모두 부결되었다. 그러자 1897년 여태껏 서명과 청원 방식으로 활동하던 운동가들이 모여 ‘전국여성선거권운동단체연합NUWSS’을 결성했다.

 

“나는 애를 낳아달라고 당신과 결혼했소”
그러나 비폭력적 시민 불복종 방식으로 진행된 운동을 정부가 탄압하려 하자 운동은 과격한 방향으로 선회했다. 1903년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두 딸 크리스타벨(1880~1958), 실비아(1888~1960)와 함께 여성사회정치동맹WSPU을 결성했다. 1906년에 집권한 자유당 정부가 여성 참정권 요구를 수용할 것을 기대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운동은 전투적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들을 기존의 ‘온건한 참정권운동가suffragist’와 구분해 ‘전투적 참정권운동가suffragette’라고 부른다.

그들은 “여성에게 참정권을”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수상과 장관들의 회의 장소를 습격했다. 이런 사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캠페인이었다. 버킹엄 궁 난간에 몸을 묶는가 하면, 단순한 항의시위를 넘어 총리관저나 관청의 유리창을 박살내는 등 직접 행동에 나섰다. 

 

체포되거나 구금된 여성들은 정치범 대우를 요구하며 옥중 단식투쟁을 펼쳤다. 이에 맞서 정부는 처음에는 사지를 붙잡고 호스를 위에 넣어 강제로 음식을 주입했으나, 끔찍한 고통으로 반대 여론이 일어나자 1913년 이른바 ‘고양이와 쥐 법Cat and Mouse Act’을 제정해 단식투쟁하는 이를 일단 석방시켜 경찰을 붙여 감시하다가 언제든지 다시 잡아 가둘 수 있게 했다. 팽크허스트 자신은 이 법에 따라 석방 및 체포를 1년에 12차례나 되풀이해야 했다.

남성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여성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스웨덴 왕 카를 11세(재위 1660~1697)의 말을 인용하곤 했다. 카를 왕은 왕비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인, 나는 애를 낳아달라고 당신과 결혼했지 조언을 해달라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오.” 

 

참여사회 2016년 5월호 (통권 234호)

젊은이들의 적극적 투표 참여가 필요하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 정부는 마침내 여성의 정치 참여를 허용했다. 전쟁 기간에 노동력을 제공한 여성들의 공헌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주어진 불완전한 선거권이었다(남자는 21세 이상). 전쟁 중에 많은 남성들이 사망하여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참정권을 부여할 경우 남성의 수가 적어 정치적으로 불리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28년 7월 남녀 동일하게 21세부터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팽크허스트는 평생 해온 운동이 성공을 거두기 한 달 전인 1928년 6월 14일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주도한 과격 행위는 여성 참정권에 대한 관심을 높임으로써 목적 달성에 기여했다. 웨스트민스터 영국 의사당 옆에는 그녀의 동상이 서있다.

 

여성의 참정권은 1893년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인정되었고, 그 뒤를 이어 1920년에 미국, 1928년에 영국, 1944년에 프랑스에서 인정되었다. 이탈리아 여성은 1945년에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여성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희생의 산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48년이다. 영국보다 20년, 프랑스보다 4년, 이탈리아보다 겨우 3년 늦었다. 단 우리의 선거권 획득 과정은 서양과는 많이 다르다. 미군정이 끝나면서 1948년 총선에서 남녀가 함께 보통 선거권을 얻었다. 목숨을 건 투쟁이나 희생을 치르지 않은 채 하늘에서 굴러 떨어진 ‘선물’이었다. 

 

한동안 청년층의 낮은 투표율을 걱정하면서, 이것이 투표권을 ‘거저 얻은 선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4·13 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은 투표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링컨 말대로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민주주의의 꽃인 투표에 젊은이들의 적극적 참여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정치인들도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 수립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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