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줄에 교수가 되었을 때 나는 뛸듯이 기뻤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 켕기는 바가 컸다. 나보다 훨씬 성실하고 공부 잘했던 친구와 선후배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기쁨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만난 이들보다는 나라를 걱정하다 ‘신세를 망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학생시절에 나라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하지 못한 죄책감, 감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는 미안함, 게다가 이제는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교수까지 되었다는 당혹감에 한동안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래도 교수로서도 할 일이 있다고 위안을 삼았다. 오히려 외상(外傷) 없이 살아 남았기에 더욱 할 일이 많다고 자위까지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나름대로 나라와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소리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살아남은 자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신분이 보장된 교수니까, 그래도 세상사람들이 무언가 말해 줄 것을 기대하는 교수니까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소리를 해도 전혀 신변의 위협이 없었다. 다소의 불편함과 껄끄러움이야 없을 리 없지만 그게 오히려 생활의 양념이 되었다. 지극히 느슨한 대학의 풍토 속에 적당하게 긴장해서 사는 각성제가 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고 그 시절의 용감했던 젊은이들이 차례차례 역사의 전면에 서게 되었다. 이젠 감옥살이를 했던 친구들까지도 교수가 되었다. 나의 죄의식도 조금씩 엷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교수는 ‘교수답게’ 쓰고 행동해야 한다는, 암울하던 시절 교수에게 강요되던 수칙을 들먹이는 ‘회색분자’가 되었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보직교수의 경력 때문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한동안 눌려 지내던 가위를 벗어난 해방감 때문인가.
내게도 할 말이 있다. 이젠 나라 전체에서 노골적인 폭력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과연 교수가 거리에 나서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도 있는가? 학생이 거리에 나설 일도 별로 없는데 하물며 교수가 붉은 띠를 매고 거리에 나설 일이 어디 있으랴. 교수들은 걸핏하면 4·19 교수데모의 신화를 들먹인다. 교수야말로 “학생의 피에 보답”하여 지성과 양심으로 나라를 구한 혁혁한 공로를 세운 구국의 공신이라고. 그렇게 선배의 업적에 무임승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한번 반문해보자.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학생이 총에 맞아 죽는데 그 정도 시위라도 하지 않은 교수라면 지성인은 고사하고 그게 어디 사람이냐고.
교수, 그들만의 카니발
한여름에 많은 교수들이 선언문을 내고 항의시위에 나섰다. 그리고는 농성에 들어갔다. 시위를 주도한 교수단체는 4·19 이래 이렇게 많은 교수가 거리에 나선 일이 없었다며 상황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저렇게 많은 교수들이 악을 쓰는 것을 보니 무언가 중대한 불의가 자행되고 있나 보다. 그 불의의 정체가 무엇인가 의아해 하는 시민이 많다. 일부 시민단체들도 성명을 발표하고 동조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최근에 와서 비로소 인정받기 시작한 시민단체들까지 목소리를 거드는 것을 보니 정말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닌가 보다, 그렇게 믿는 순진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이 교수들을 분노하게 했는가? 세칭 ‘BK21’사업이란다. 어떤 내용인가? 핵심은 대학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21세기에 ‘두뇌한국’(Brain Korea21)을 양성하기 위해 국제경쟁력을 제고시키겠다는 것이다. 외환파동이 몰고 온 엄청난 경제난국 속에서도 어렵사리 마련한 재원으로 국제수준의 연구인력을 키우는데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흉년일수록 씨나락을 잘 간수해야 장래가 견실해지듯이, 경제난국일수록 교육에 투자해야 나라가 산다는, 앞을 내다보는 경세철학의 발로요, 쉽지 않은 결단의 정책이다. 경쟁이 도입되면 학교와 학교, 교수와 교수, 학문의 분야와 분야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것이 지성과 학문의 본질적 속성이다.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어야 할 곳이 복지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우리 대학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오면서도 감히 개선할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이 대학 내에 팽배하는 극단적 평등복지의 생리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국제경쟁력은 실로 비참한 수준이라는 것은 누구나 절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일부 분야라도 집중적으로 인재를 키우겠다는 정책은 지극히 당연한 윈칙인 동시에,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거리에 나선 교수들은 주로 이 정책의 수혜자에서 제외되거나 상대적으로 순위가 뒤질 처지에 선 사람들이다. 비록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직접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이 되어 거리에 나서면 교수도 여느 직종이나 마찬가지로 이익집단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동안 신물나게, 눈살 찌푸리면서 보아온 각종 이익집단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새 천년을 맞아 무언가 중대한 의식의 전환을 보여야 할 시점에 ‘BK21’ 사업이 마치 악성 ‘Y2K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시카고 뒷골목의 마피아 사업”, “무뇌(無腦)한국” 등 결코 지성의 냄새가 배지 않은 구호와 수사를 동원하는 교수들의 단체행동을 과연 4·19 교수시위에 비길 수 있을까? 그것은 밥그릇이 더없이 견고한 교수들의 반찬투정, 내 밥에 고기반찬을 더 놓아야 되겠다는 배부른 자들의 타령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에서 교수의 지위는 높다. 그런 상류층의 반찬투정에 왜 시민단체가 지원에 나서야 하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 교수가 재단으로부터 부당하게 쫓겨났다면 그것은 유린당한 민권의 문제로 시민단체가 나설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다. ‘민주’ 교수들의 데모는 우리 사회 민주화의 허구와 허구의 민주성을 폭로하는 실로 서글픈 에피소드이다. 어느 원로학자는 선언했다. ‘광주’ 이후에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서울대 캠퍼스에는 살아남은 자의 환호성이 하늘을 찌르고, 이긴 자들의 무도회가 흥청거린다고. ‘BK21’ 항의시위는 서울대 교수들만의 무도회가 아니다. 전국의 교수들이 살아남은 자, 이긴 자들이다. 그 무도회에서 벌어지는 음식과 파트너 쟁탈전은 ‘시민’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카니발이다.
‘BK21’에 대한 어느 대학원생의 소회
더더구나 기막힌 것은 이 사업의 핵심이 학문후속세대인 대학원생의 양성에 있다는 사실을 교수들은 망각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교수들이 반대하는지도 모른다는 의혹조차 든다. 실질적인 수혜자는 학생인데 연구에 대한 책임은 교수의 몫이라는, 차마 내놓고는 말할 수 없는 교수들의 불만이 이 정책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를 제기한 숨은 동기일지 모른다는 불평을 해온 학생이 더러 있다. 설마 그럴리야 하면서도 교수들이 그런 입장을 단체행동으로 보이기에 앞서 적어도 대학원생들과 상의는 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라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교수들만큼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집단도 드물다. 이미 기억조차 흐릿한 4·19를 팔기 전에 80년에, 87년에, 몇 사람의 교수가 거리에 나서기는커녕 강의실에서나마 학생을 지켜주었던가 냉정하게 반문해보자? 정작 교수가 목소리 높여 자유의 수호와 민주의 쟁취에 동참해야 했을 시절에 교수의 침묵과 굴종을 뒤로 하고 고초 끝에 옥살이를 했던 한 젊은이가 교수들의 집단난동을 지켜본 후에 서글픈 소회의 글을 실었다(‘교수님들의 시위’ 맥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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