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1183

공무원과 시민운동가는 선의의 경쟁자

고위공무원들의 시민운동체험

정부기관과 시민단체.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구도다. 그런데 공무원과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이 만난다. 공무원들은 ‘학생’이고,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교사’가 되는 묘한 관계 속에서 그들은 이제 막 공존과 경쟁의 신호탄을 쏘았다.

지난 7월 8일. 각 시민단체에 사이렌이 울렸다. 참여연대, 경실련, 서울 YMCA, 한국소비자연맹에 80여 명의 공무원들이 들이닥친 것. 그것도 수십년간 공직생활에 나이도 ‘지긋한’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은 왜 시민단체를 찾아온 것일까? 언뜻 생각컨대 공무원과 시민단체는 그다지 매끈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정답은 전혀 의외다. 공무원들이 시민단체에 ‘한 수 배우러’ 온 것이란다.

그 배움이란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열성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NGO 종사자’들의 모습을 체험하는 공무원 재교육 과정이었다. 단 하루의 체험이지만, 접수창구에 앉아 민원인들을 직접 상담하면서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온몸으로 체득하겠다는 것. 사실, 국민의 권익보호와 민원상담은 공무원의 몫이 아니던가. 공무원들이 시민단체를 찾은 이유는 바로 그들의 ‘몫’을 시민단체에 ‘뺏기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한 곳은 행정자치부 산하 중앙공무원교육원이다. 일년에 한 차례, 여기서 실시하는 ‘민원행정 및 권익보호과정’이 있다. 작년까지 ‘민원행정’만으로 14년 간 진행돼온 과정이 대폭 손질돼 ‘권익보호’가 덧붙여지면서 올해 새로이 1기 수료생을 배출한 것. 이번 과정에는 사무관급 이상 공무원 80여 명이 참여했다. 대검찰청, 국립미술관, 국립대학교 사무관들과 정보사 소령, 구치소 분류관, 2급 공무원까지. ‘시민단체 체험’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인데, 이들은 ‘웃으며’ 시민단체에 들어왔다가 ‘심각하게’ 시민단체를 나선다. 시민단체가 더 이상 ‘공직의 반대집단’이나 ‘재야’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시민단체는 우리의 경쟁자다”

공무원과 시민단체를 맺은 매파는 중앙공무원교육원의 신문주 서기관(45세·교육1팀)과 양광석 사무관(51세·교육3팀)이다. 신문주 서기관은 지난 95년부터 2년간 영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그는 영국 버밍험 대학에서 ‘행정마케팅’이란 생소한 분야를 공부하면서 영국의 ‘고객 지향적인 행정서비스’를 단단히 배워왔단다. 양광석 사무관은 지난 20년간 공직생활을 하며 총무처 업무를 두루 섭렵하다시피 한 베테랑. 그는 지난 96년부터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전문교육과정을 맡으며 실무를 담당해왔다. 이론과 실무를 갖춘 “찰떡콤비”가 ‘공무원과 시민운동의 결합’이라는,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을 이룬 것.

이 프로그램을 만든 취지에 대해 신 서기관은 “공무원과 시민단체는 경쟁자”라는 다소 야릇한(?) 정의부터 내렸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민단체도 “공무원들과 유사하게 공공정책에 관심을 보이는 단체”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공무원은 더 이상 정책입안과 행정서비스의 독점자가 아닙니다. 공권력을 위임받지도 않은 시민단체가 우리를 공격하며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행정서비스를 전자제품 A/S하듯 해야 됩니다. 국민은 고객이고, 공무원은 ‘팔지 못하면 퇴출된다’는 생각을 갖고 경쟁자인 NGO 종사자들보다 더 질좋은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그 말은 곧 적자생존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와 맞닿아 있는 것 아닌가. 어찌보면 이는 국민들이 정부조직이나 공공기관보다 시민단체를 더욱 신뢰하고 있다는 공무원 사회의 긴장으로 읽힌다. 한편, 경실련으로 현장체험을 나간 공무원들은 이 사실을 실감했다. 실무자들이 ‘부정공무원 고발센터’로 그들을 안내했기 때문이다. 그곳을 둘러본 공무원들은 충격을 받은 듯 “시민단체의 주장과 활동을 공무원 사회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단다. 그것은 공직사회가 자체 정화능력을 분발해야 한다는 자각이었다.

양광석 사무관은 시민단체를 둘러본 공무원들이 “NGO가 일이 많은데도 너무나 열성적으로 일해서 공무원이 부끄럽다, NGO의 공신력을 의심했는데 신뢰성이 확인되더라고 했다”며 이 프로그램의 성과를 설명했다.

시민단체는 관료성을 극복해야

걱정스러운 점은 ‘공존’이 생략된 ‘경쟁’ 일변도의 논리와 철학이 없는 서비스 정신이다. ‘NGO방문 프로그램 편성 취지’를 살펴보면, 일단 공무원들에게 시민단체를 ‘명실상부한’ 공공정책결정의 참여집단임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이는 공무원 사회와 시민단체의 ‘공존’의 손길을 공무원 사회가 먼저 내밀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신문주 서기관은 프로그램을 제안할 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작년 2월 새로 취임한 박용환 원장이 ‘고객서비스는 공직자들의 생존전략’이라며 이른바 ‘NEW-COTI 운동(NEW-Central Officials Training Institute, 중앙공무원교육원이 채택한 고객제일주의)’을 제안하자 그는 ‘이때다’ 하고 일을 추진했다.

“영국에서 보니, 후진국인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들도 자기들끼리 NGO에 관한 토론을 하는데, 한국은 너무 정보에 어둡다는 생각을 했어요. NGO 활동은 전세계적인 흐름이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애정을 표시했다. “한달에 30만 원에서 40만 원을 받고 국민의 권익보호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서비스 정신’에 거듭 감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근 경실련의 내홍과 개혁움직임을 예로 들며 시민단체의 문제점을 조심스레 지적했다.

“어떤 조직이든 거대해지다 보면 관료화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시민단체도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보이는 관료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시민단체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곧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고, 시민단체들은 언제든 ‘책임없는 횡포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중앙공무원을 교육시키는 ‘공무원’들은 시민단체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객’을 확보하려는 마케팅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공생의 가능성만은 놓지 않고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연수생들이 들어가면 사무실이 꽉 차고, 강의실이 없는 곳도 있고…. 공무원들이 시민단체에 가서 좀더 많은 민원인들을 만나 많은 활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공존과 공생이 불가능한 듯 보이던 공무원과 시민단체의 만남. 그 만남의 자리가 단 하루에 머물지 않고 시민단체의 활동이 곧바로 공공정책으로 연결될 때, 공무원들과 시민단체의 진정한 악수는 가능해질 것이다. 시민단체를 ‘체험’한 공무원들의 활동에 귀추가 주목된다.

시민운동가의 눈에 비친 공무원 NGO교육

입장은 달랐지만 공감대 넓혔다

초지일관 무관심형, 전형적 공무원형, 충성형, 공무원도 시민이다형, 박수부대형

박영선 참여연대 문화사업국장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참여연대를 비롯 4개 시민단체에 민원행정교육과정을 위탁한 것은 두번째다. 지난해 11월과 올 봄. 이번 2차 교육 때는 단순히 공무원들이 시민단체를 방문한다는 형식에만 그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미 시민단체는 정부의 비판, 감시 기능을 넘어 정부내 상당 분야에서 정책대안을 제시하며 실질적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지만 정부와 시민단체의 파트너십을 높이기 위해 비교적 빡빡한 일정을 제시했다. NGO의 기본개념, 활동원칙, 참여연대의 활동내용 등.

교육에 참가한 공무원들의 반응은 “별 기대없이 참석했지만, 막상 교육받고 보니 시민단체 활동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됐고 기존에 가졌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들을 나름대로 유형화 해보면 첫째 초지일관 무관심형, 둘째 전형적 공무원형-공무원들이 무슨 죄냐, 우리도 피해자다, 셋째 충성형-시민단체는 뭘 모르고 대중들에 영합해 떠들기만 한다. 그런 활동들은 너무 위험하다, 넷째 공무원도 시민이다형-시민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의지를 갖고 있으며 주변에 어려운 경우에 처한 사람들을 소개한다, 다섯째 박수부대형-시민운동을 지지하지만, 잘 해라! 그것으로 끝.

이번 교육에서 공무원들과 만나면서 사실상 공무원들에게 많은 자극을 제공하려고 했다. 실제로 개개의 토론을 통해 서로간의 입장차이에 대한 이해를 구하며 파트너십 형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역으로 공무원들의 피해의식 등 수세적 자세와 시민단체의 권위적이고 저돌적인 자세가 은연중에 긍정적 협력관계 구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정부가 앞으로 보다 친시민적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 참관교육이 고급 공무원뿐 아니라 일반공무원까지 확대해 실시해야 하며 교육시간도 더 많이 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육은 상호적으로 수행되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 앞으로는 시민단체의 정부 방문프로그램이 추진될 수 있어야 한다.

이유진 전 『월간 사회평론 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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