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4년 04월 2004-04-01   872

[기획] <파병 다시 바라보기> ‘파병철회’ 함성을 다시 울려라!

시민사회의 수 많은 의제들이 탄핵정국이라는 블랙홀 속에 빠져든 채 좀처럼 나올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 의제들 속에는 지난 1년 간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촛불집회 참석자 80만여 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던 지난 한 주,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 1년’과 ‘한국군의 주둔지 변경’이라는 중요한 두 가지 사건과 맞닥뜨렸다. 어느 것 하나 간과할 수 없다는 중요한 문제들인 동시에, 향후 파병반대 운동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당성은 더이상 존재할 수 없다

차분히 하나씩 살펴보자. 지난 3월 19일부로 미국-이라크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국제사회의 극심한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라크전을 강행했고, 그 명분으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와 ‘테러조직과의 연계성’을 제시했다. 전쟁 초기까지만 해도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완전 거짓’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해 지고 있다. 우선 대량살상무기 보유와 관련해서는 유엔 조사단 뿐 아니라 미국의 자체 조사단조차도 증거를 찾아 내지 못했다. 오히려 현재 부시.블레어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 존재여부에 대한 정보조작 의혹까지 받고 있고,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상당히 곤혹스런 상황에 처해 있다. 또 전쟁을 통해 테러를 근절하겠다는 것 역시 실패한 정책이라는 것이 명확해 지고 있다. 후세인 정권과 국제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 조직과의 연계성을 발견하지 못했음은 물론, 국제사회는 전쟁발발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테러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테러를 명분으로 일으킨 전쟁이 테러의 악순환을 불러 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국의 이라크 침략 1년이 지난 지금의 정세는 이 전쟁이 아무런 명분 없는 침략전쟁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를 훨씬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음을 그 자체로 웅변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 내에서조차 부시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에 동조했던 국가들도 차츰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미 스페인과 일부 남미국가들은 철군을 추진 중이고, 다른 유럽 국가들도 철군을 시사하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과 자국민들을 더 이상 테러의 공포 속에 노출시킬 수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옳은 판단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유독 한국만 대규모 전투병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전쟁을 주도했던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이제 한국은 어떤 변명으로도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동참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물론 침략전쟁에 파병을 금한다는 우리 헌법을 어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서 얻고자 하는 국익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더 큰 문제는 파병될 한국군 뿐 아니라 한국 땅에 남아 있는 국민 전체가 테러위협의 공포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 이양을 앞두고 이라크 현지 저항세력의 공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들은 주된 공격 대상이 미군과 미군에 동조하는 세력임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만약 스페인이 철군한 자리에 그의 3배나 되는 병력을 지닌 한국군이 주둔한다면, 한국이 주요공격 대상 국가로 지목되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파병철회, 이번이 마지막 기회

현재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이고, 총리가 임시로 그 역할을 위임받았다. 그런데 만에 하나 현재와 같은 국면에서 스페인 참사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는 극심한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통상 안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한다고 한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을 국방부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파병강행에만 몰두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발대 출발을 불과 2주 가량 남기고 한국군은 파병 예정지 변경을 두고 미국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키르쿠크 지역을 상정하고 준비하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국방부는 파병지 변경의 사유로 ‘키르쿠크 지역의 치안악화’와 아울러 ‘평화재건 임무’와 ‘독자적 지역담당’이라는 파병의 전제조건 충족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우선 키르쿠크의 위험 상황은 파병 예정지로 거론될 당시부터 시민사회와 언론이 거세게 지적해 왔던 것으로, 유독 국방부만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 왔던 부분이다. 정부와 국회조사단 보고서 어디에서도 키르쿠크 지역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대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최근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키르쿠크 지역은) 싸울 상대가 없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방부가 느닷없이 키르쿠크 지역의 치안이 악화됐다며 파병지를 바꾸려 하고 있다. 현지조사 당시 정부의 조사가 부실하게 이루어졌든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정보를 조작하지 않고서는 달리 설명한 방도가 없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파병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국방부는 한국 젊은이들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파병을 강행하려 했기 때문이다. 파병강행에 앞서 이에 대한 엄격한 조사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미군과의 합의 내용이라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정부는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군의 성격이 ‘평화재건지원부대’라는 것과, 특정 지역을 독자적으로 담당한다고 국민들에게 수 없이 말해 왔다. 그런데 선발대 출발을 불과 며칠 앞두고 이 두 가지는 ‘저항세력 소탕작전 동참’과 ‘미군과의 공동주둔’으로 바꿔질 수 있고, 이를 두고 미국과 다시 협의한다고 했다. 미국과 협의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국민여론만 호도 했다는 의혹이 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경우인데, 이렇게 제멋대로 합의를 어기는 동맹국을 위해서 사지에 뛰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국민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지는 더 의문이다.

이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아무런 명분도 없고, 우리 국민을 테러위협으로까지 몰고 있는 파병결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그 시작이다. 전범국 부역국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이다. 탄핵정국 속에서도 이 문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 파병결정은 탄핵결정과 마찬가지로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졸속적으로 이뤄졌다. 전 국민이 일어서지 않고는 정부의 파병정책을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민주의 촛불이 평화의 촛불로 발전하는 날을 위해 지금,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권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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