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싸움은 지난했다. 지난해 6월17일, 금창태 사장이 삼성 관련 기사를 편집국장 몰래 인쇄소에서 삭제했다는 사실을 <시사저널> 기자들이 알았을 때만 해도 이 싸움이 1년여 넘어 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기자들이, 파업 기간 내내 ‘짝퉁 시사저널’을 만들었던 기자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사표를 제출하는 것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짐작할 수 없었다.
자본 권력에 지배당한 언론
싸움의 발단이 비상식적이었던 것만큼이나 전개 과정도 비상식적이었다. 이윤삼 편집국장은 기사 삭제에 항의하며 사표를 냈다. 편집국장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회사는 그 사표를 단 하루만에 수리했다. 기자들은 항의했다. 회사는 여태까지 하지 않았던, 금창태 사장이 주재하는 편집회의를 소집했다. 편집국 간부들이 회의 참석을 거부하자 줄징계가 이어졌다. 두 사람이 무기 정직을 당했다. 6층 사장실에 있던 의자를 5층 편집국장석으로 옮겨 놓았던 기자 두 명에게는 ‘절취’라는 징계 사유로 정직 3개월이 떨어졌다. 기자 24명 가운데 17명이 징계를 당했다. 급기야 회사측은 이 사태를 보도한 기자, 시민단체 대표 23명을 고소·고발했다. 회사가 독자 6명을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고발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자들은 황망했다. 이들은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 운영위원이었다. <시사저널>이 정상화되면 바로 정기구독을 하겠다는 ‘진품 시사저널 예약운동’을 벌인 것이 업무방해이고, 회사를 적대시하는 세력이라는 것이다. 할 말이 없었다(이들은 검찰 조사를 받았고, 나중에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을 감내하며 1년을 싸웠다. 노조를 만들고 6개월 동안 끈기있게 단체 협상을 진행했고, 올해 1월에 파업에 돌입했다. 협상을 하자던 회사는 몇몇 선배 기자들의 명예 퇴직서를 요구했다. 단식 농성을 했던 정희상 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의 마지막 안간힘도 무위로 돌아갔다. 단식 8일째 되던 날. <시사저널> 기자들은 결별을 선택했다. 섭섭했고, 안타까웠고, 억울했고, 후련했다. 결별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시사저널> 기자들은 울었다. 우리는 패배했다.
참언론을 위한 시민사회의 바람
싸움이 끝난 자리에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새로운 매체 창간이다. 독자들의 힘을 믿고, 양심의 힘으로 취재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가진 것은 몸뚱아리뿐인 우리 기자들이 창간에 필요한 돈을 모을 수 있을까.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라는 이름을 달자, 통장 계좌로 독자들의 성원이 이어졌다. 1만 원, 2만 원. 소액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통장을 확인하던 유옥경 기자는 통장 정리를 하면서 또 울었다. 이제는 안 울기로 했는데, 하면서 통장을 확인하면서 운다. 놀랍고, 고마워서 운다.
7월25일 현재 시사기자단 계좌에는 소액 성금만 4억5천만원이 쌓였다. 군대에서 날아온 편지에서 뚝 떨어진 1만5천 원에 기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뱃 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돈을 보낸다는 독자가 있다. 시사저널 사태 내내 기자들을 지켜주었던 한 유아복 노점상 사장은, 투자금 1천만 원을 쏘았다. 어찌 그 돈을 받겠느냐며 손사래를 쳤건만 “내 마눌님이 투자하겠다고 한다.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고 허허 웃는다. 그는 시사저널 기자들이 싸우는 동안 “노점상인 나도 짝퉁은 안판다”며 금사장을 비웃으며 기자들이 힘겨워할 때마다 어깨를 두들겨주고, 밥과 술을 먹여주었다.
정기 구독 약정을 시작하자마자 첫 날 새벽같이 통장에 7년 치 구독료 1백만 원을 입금하고는, 내친 김에 개인 명의, 법인 명의 투자금까지 줄줄이 쏜 사나이도 있다. 그는 소액 투자 최저선이 1백만 원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월급쟁이들을 위해 문턱을 낮추라고 간곡히 제안해 하루만에 50만원으로 최저선을 낮춰버린 인물이기도 한다. 이렇게 지금 쏟아지는 돈들은, 정성과 지혜를 거느리고 온다.
온갖 현물도 넘쳐난다. 요즘 민어가 제철이라며 민어회 15킬로를 들고 와 상을 차려주는 독자가 있다. 중고차 상인이 취재차로 쓰라며 차를 주겠다고 하고, 충남 당진의 한 주부는 “반찬을 부쳐줄테니, 밥은 꼭 해 먹으라”고 전화를 걸어온다. 기자가 생활고에 못이겨 에어컨을 떼어다 팔았다는 얘기를 들은 한 독자는, 선풍기 6대를 사무실로 배달시켜 주었다. 어디선가 와인 박스가 날아오고, 취재 수첩이 날아온다. 시사기자단 사이트(www.sisaj.com)에는 보름동안 제호 5백 개가 쏟아져 들어왔다.
또한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자원 봉사에 팔을 걷어부쳤다. 한 졸업반 남학생은 졸지에 텔레마케터로 변신했다. 후원 전화를 받고, 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느라 방학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그 학생은 첫날 “파업 기자? 걔들 빨갱이 아니냐”는 아버지의 다그침에 “그래요. 나도 빨갱이예요”하고 출근했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시사저널 사태를 알아보셨는지 아버지가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라”고 하시더란다.
‘다시’ 기자로 산다는 것
지난 7월18일 개막된 ‘굿바이, 시사저널’ 展은 첫날에만 3천만 원의 매상을 올렸다. 이 전시회는 출발부터 눈물겨웠다. 서명숙 전 편집장이 전 시사저널 기자들을 돕자며 ‘뭐든 한가지씩 내놓읍시다’라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는데, 이 글을 보고 미국에서 장사를 하며 사는 소설가 이충렬씨가 자신의 애장품 다섯 점을 기증한 것이다. 그는 민정기 화백의 판화부터 이만익의 <삶> 등 이민자의 위안이 되어주던 피같은 작품을 떼어내 기획전의 불을 댕겼다. 여기에 민족미술인협회와 소설가 윤정모 선생이 팔을 걷어붙여 제대로 된 잔치판이 만들어졌다. 갤러리 ‘눈’의 박이찬국 관장도 작품을 여러 점 기증하고, 멋진 전시장까지 대여해주었다.
전시회에서 한명숙 총리는 기백만 원 하는 화가 손장섭의 그림을 찜해 갔다. 정치인들은, 전 <시사저널> 미술부장이 제작한 자신의 캐리돌(캐릭터+돌)에 박장대소하며 지갑을 열었다. 그날 밤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등 ‘아름다운 그룹’은, ‘웃어야, 정의夜’ 라는 이름으로 후원의 밤을 열어주었다. 이날 서울 안국동 ‘아름다운 가게’ 건물 옥상에서 기자들이 만든 동영상을 옆 건물 벽에 쏘아 보던 ‘씨네마 천국’의 밤을 잊을 수 없다.
슬픔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우리를 다독여 주는 분들이 너무 많다. 어질어질하다. 두려운 마음은 그 뒤에 스민다. 이렇게 기성 언론에 대한 염증이 심했던가, 기자 사회에 대한 불신이 컸던가, 그리고 과연 우리가 그로 인한 반사 이익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지금 모여드는 이 마음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현재 이 땅의 언론이 못난 탓이라는 것을 잘 안다. 우리가 준비하는 새로운 매체가 어떤 매체여야 할까 고민한다. 우리가 싸움을 통해 성숙해진만큼, 우리가 이 사회의 양심에 빚진 만큼 사회 구석에 깊이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살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예비 독자들의 마음을 우리는 이렇게 해석한다. ‘언론을 씹고 말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괜찮은 언론 하나 만들어 보자. 얘들은 그깟 세 페이지짜리 기사 빠진 것 때문에 단체로 제 밥그릇을 내덜질 정도이니 기자치고는 좀 덜떨어졌지만, 까짓 거 좀 밀어줘보자.’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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