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4년 03월 2004-03-01   1254

[칼럼] “3류 정치는 3류 주권행사가 빚은 결과”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4.15 17대 총선거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정치권은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나 국민, 언론이 선거를 바라보는 관점은 하나같이 ‘어느 당이 승리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이것은 그릇된 관점이다. 선거는 후보들, 특히 당선자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선거는 좋은 공복을 뽑기 위한 ‘유권자의 잔치’가 되어야 한다. 선거는 누군가가 당선되는 절차인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리인을 뽑는 주권행사인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관점은 ‘좋은 대리인’, ‘좋은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 ‘유권자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정치 참여의 중요한 형태인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대의성을 확보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국민의 직접 참여로 대표를 선택하고 선거를 통해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이 확인된다. 또 선거는 통제와 감시의 기능을 갖고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은 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다양한 의사가 국정에 반영된다. 선거는 정치적 충원의 기능도 갖고 있다. 선거를 통해서 낡고 썩은 그리고 무능한 정치인들을 제외시키고 젊고 깨끗하며 유능한 정치 신인들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그리고 선거는 민주정치의 정통성의 근원이다.

선거 제도가 정말로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느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라이커(W. H. Riker)는 모든 투표가 절차적 공정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투표자의 선호와 관계없는 자의적인 결과를 나타낼 뿐이라고 주장한다. 선거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데 실패하고 제한적인 대의 민주주의만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콜맨(J. Coleman)과 피어존(J. Ferejohn)도 선거는 나쁜 독재자를 거부할 수 있는 기회만을 허용할 뿐이라고 말한다. 슘페터(J. Schumpeter)는 국민의 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피쪼르노(A. Pizzorno)는 개인들의 의사 결정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들어 선거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에 이의를 제기한다. 국민이 정치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 유권자를 좌지우지하게 되어 선거가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를 선출하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유권자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깐깐해져야 한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을 검증할 때 ‘공인이 될 자격’과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공인의 자격은 도덕성과 국민의 기초적 의무 이행 여부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자질이 있어도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면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 납세, 병역 사항 등 국민의 기초 의무 이행에 흠이 없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 조건이다. 도덕성과 청렴성, 그리고 국민의 기초적 의무 이행에 흠이 없다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들을 따져봐야 한다. 첫째, 국정수행 및 통합조정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둘째, 민주성과 개혁성을 갖고 있는가. 셋째, 일관성과 책임감을 지녀 신뢰할만한가. 넷째,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가.

국회의원은 다양한 국민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수렴해서 이를 국정운영에 반영시켜야 한다. 각종 갈등과 이해관계의 대립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도 국회의원의 주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지역갈등을 조장하거나 남녀 차별적 언행을 하는 정치인, 냉전적 사고를 바탕으로 남북문제를 접근하는 정치인, 민생안정과 복지확대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정치인은 국민의 대표로서 부적합하다.

민주화와 사회개혁은 오랜 반독재 과정에서 확인된 국민적 대전제이다. 따라서 모든 정치인들은 소속 정당과 정파를 초월하여 민주발전에 대한 명확한 소신과 이를 위한 개혁을 적극 추진하려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 또 정치인 뿐 아니라 고위공직자는 국민 앞에 한 발언과 약속을 정치생명을 걸고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고위직 인사들의 말 바꾸기와 약속 지키지 않기, 소신을 저버린 행동, 철새 행태에 대한 국민의 환멸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만큼 정치인들의 발언과 행동의 신뢰성과 책임성은 각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2004년 총선시민연대가 결성돼 낙천낙선운동을 벌이고 있다. 낙천낙선운동의 위력은 이미 2000년 4.13총선에서 확인된 바 있다.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한국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켰던 16대 총선에서의 승자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바로 시민이었다. 지역주의의 벽을 뚫지 못함으로써 절반의 승리에 그치고 말았지만 16대 총선을 뜨겁게 달구었던 낙천낙선운동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정치의 구경꾼으로 밀려나있던 시민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물론 낙천.낙선운동이 안겨준 과제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2004총선시민연대가 벌이는 낙천낙선 운동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월17~18일 이틀에 걸쳐 전국의 만20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 결과, 적극 찬성 35.7%, 다소 찬성 31.1%로 국민의 66.8%가 낙천낙선운동에 동의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낙선운동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27.2%(적극 반대 10.9%, 다소 반대 16.3%)였다.

헌법 제1장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국민주권의 원칙을 밝혀놓고 있다. 정치의 총체적 부실의 책임과 원인이 정치에 대해 항시적이고 지속적인 견제와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했던 유권자에게도 있다.

민주주의의 처음과 끝을 완성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유권자이다. 3류의 정치는 3류의 주권행사가 빚은 결과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책임도 권리도 의무도 없다는 방관자 의식을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이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올바르고 당당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손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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