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2년 01-02월 2022-01-01   1056

[읽자] 실제로는 "읽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읽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코너의 이름은 ‘읽자’입니다. 그리고 이번이 제가 쓰는 마지막 글입니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저는 현실에서 누구에게도 어떤 책을 읽자고 권하거나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매일 쌓이는 책을 읽어낼 재간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에게도 그런 말을 건네거나 다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읽자’고 말을 건넨 까닭을 전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할까 합니다.

 

우연인 듯 운명인 듯

 

이번에 나누는 세 권의 책은 모두 우연입니다. 책상에 앉아 고개를 돌려 최근에 쌓인 책을 살피다 앞서 읽고 싶은 세 권을 골랐습니다. 그간 어떤 주제나 상황에 맞춰 세 권의 신간을 엮어 소개했는데, 그러다 보니 저에게는 읽는 일보다 고르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려면 읽고 싶은 책을 골라야 하니 순서가 어색한 건 아니겠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은 경험을 떠올려 보면 어느 책이든 기대와 똑같지는 않았을 겁니다.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르는 일이 결정적인 게 아니라, 읽는 게 핵심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르는 데에 어떤 이유도 의미도 두지 않고 읽고 싶은 마음을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눈에 들어온, 그래서 이번에 옮겨 적으며 소개하는 세 개의 대목은 운명처럼 연결됩니다. 어쩌면 읽는 것보다 읽는 마음을 앞에 두어야 마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남희 작가가 전한 아름다운 장면을 기약하기는 어렵겠지만, ‘읽자’에서 시작된 숱한 이야기가 이미 그러했으리라 믿습니다.

 

2022년 1-2월 합본호 (통권 292호)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 글 김남희 | 문학동네

❝ 오래전 어느 청명한 봄날이었다. 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지상으로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한강의 푸른 물결이 출렁이며 따라오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봄날의 햇살이 지하철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비발디의 사계가 들려왔다. 옆자리에 앉은 여성의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였다. 아, 지금 이 순간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음악이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음악이 너무 좋아요.” 그 순간 그녀가 이어폰 한쪽을 내밀며 물었다. “같이 들으실래요?” 나는 망설임 없이 이어폰을 받아 한쪽 귀에 꽂았다. 이름도 모르는 그녀와 함께 사계의 선율에 몸을 맡겼다. 다정한 친구라도 되는 듯이, 내가 내려야 할 역에 이를 때까지. 

 

 

 

처음의 상쾌함, 최초의 뿌듯함

 

글이든 말이든 원고든 방송이든, 책을 전할 때 늘 새로 나온 책에 집중합니다. 누군가의 독해가 아니라 나만의 감상을 만나고 싶고, 정답이든 오답이든 그 마음을 바탕으로 ‘그 책’뿐 아니라 ‘내가 만난 책’을 함께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평생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수메르를 연구한 김산해는 인류에게 남겨진 최초의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를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에서 직접 옮겨 우리에게 전했는데, 이번에는 지금까지 전해진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으로 수메르의 시작부터 멸망까지 약 4500년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생의 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대체로 그가 옮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앞세웁니다. 내용과 의미에 매료된 까닭도 있지만, 처음의 상쾌함과 최초의 뿌듯함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기록을 남긴 이유는 달랐겠지만, 제가 책 이야기를 전하는 즐거움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읽자’ 보다 ‘읽었다’가 맞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022년 1-2월 합본호 (통권 292호)

최초의 역사 수메르 | 글 김산해 | 휴머니스트

❝ 라가쉬의 필경사들은 ‘최초의 역사가’였다. 그들의 ‘에덴전쟁사’가 없었다면 ‘최초의 역사시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가쉬 역사가들의 기록을 제쳐두면 ‘최초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우르크(Uruk)와 우르(Ur)의 필경사들은 대부분 회계장부나 다름없는 경제 문서를 남겼기 때문에 그들이 기록으로는 최초의 역사시대를 조명할 수 없다. 지구별 역사에서 B.C.E. 2600년에서 B.C.E. 2334년의 ‘에덴전쟁사’보다 더 오래된 ‘실제 기록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덴전쟁사’는 에덴쟁탈전을 직접 겪은 ‘그 당시에 살았던 역사가들의 생생한 기록’이다. 

 

 

 

이제 무엇을 읽어나갈 것인가

 

무엇이든 읽어도 될 테고 어떻게든 읽어갈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읽자’의 마지막에 서니 새삼 무엇을 어떻게 읽어가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책을 읽을 때 무엇을 읽는 것인지, 어떻게 읽었을 때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읽었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가 생겨야 할 것인지. ‘읽자’에서 벗어나니 물음이 쏟아집니다. 

 

신해욱은 “읽음에 의해 비로소 이 책은 씌어진다.”고 말합니다. 저는 ‘읽자’라고 말한 덕분에 읽게 되었고 말하게 되었고 쓰게 되었습니다. 꼭 ‘읽자’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읽자’라고 한 번 외쳐보길 권합니다. 그간 굳이 “읽자”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읽자”라고 말해보려 합니다. 그래야만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정해두는 제안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품은 시작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제야 말을 건넵니다. “읽자.” 

 

2022년 1-2월 합본호 (통권 292호)창밖을 본다 | 글 신해욱 | 문학과지성사

❝ 읽어야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공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노트로서의 공책이 아닌. 책으로서의 빈 책인 듯이. 포화 상태의 백색소음을 해독하겠다는 듯이. 페이지는 희고 매끈하다. 바탕에 적힌 것은 없다. 눈으로 식별되는 글자도 없고 손끝에 만져지는 점자도 없다. 식초나 파라핀으로 적은 비밀 메시지가 담겨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읽어야 한다. 재옥의 사념이 깃들어서인가. 읽음에 의해 비로소 이 책은 씌어진다. 읽은 자리에 백색의 글자가 드러날 것이다. 읽기는 중단될 수도, 반복될 수도 없다. 읽기를 잠시 멈추고 읽음에 의해 드러난 것을 확인하려 앞 페이지로 돌아가는 순간 책은 빈 책이 되어버린다. 돌아보지 마라. 유구한 명령. 나는 무엇을 읽는지 또 읽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읽은 후에야 읽힐 것이 따라온다. 읽기가 읽힐 것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런 책이 있다. 空冊이다. 책으로서의 空冊이. 책상 위에 있다. 

 

 

※ 박태근의 〈읽자〉 마칩니다


글. 박태근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했습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 2022년 1-2월호 목차보기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