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3년 04월 2013-04-06   2790

[여는글] 명동, 그리고 기억

명동, 그리고 기억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60-70년대 명동의 다방 모습업무를 보는 사무실이 강남역 근처에 있지만, 종종 광화문이나 시청 근처에 갈 일이 생긴다. 회의를 하러, 또는 기자회견이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간다. 교통편으로는 보통 버스나 전철을 이용한다. 사무실 부근의 대중교통 사정은 꽤 좋은 편이어서, 버스나 전철로 광화문 일대로 가는 데에 큰 문제가 없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용의 편리함 면에서 전철과 버스는 별 차이가 없어 사정에 따라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버스를 이용할 때에는 사무실 앞에서 승차하여 옛 중앙극장 앞에서 내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 이유는 거기서 명동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려 명동 입구로 들어가 왼쪽으로 명동성당을, 오른쪽으로 로열호텔을 보며 걸어간다. 그렇게 해서 이윽고 롯데백화점 맞은편의 지하도에 이르면 그리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백화점을 우회하여 시청 언저리의 목적지로 향한다. 시간이 좀 남으면,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명동성당에 들어가 잠시 묵상에 잠겨 보기도 한다. 또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사람들로 번잡한 명동 안의 조밀한 거리로 들어가 중국 대사관 앞쪽으로 돌아 나오기도 한다.  

 

명동에 즐비한 옷 가게나 화장품 가게에 한눈팔지 않는 한, 늘 다니는 명동 길을 다 걷는 데에는 천천히 걸어도 채 10분이 걸리지 않고 이제는 다소 명동의 풍경에 무감각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처음 걷기 시작할 무렵에는 명동에서의 옛일에 대한 기억이 여러 생각과 뒤섞여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상념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그것은 딱히 슬픔이라든가 기쁨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간단히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명동은 7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의 메카이자 젊은이들의 놀이터였다. 그리 비싸지 않은 다방이나 술집이 있었고, 학교에서 멀지 않았던 까닭에 저녁에는 자주 그곳으로 갔다. 장발 단속에 걸려 머리를 잘린 것도 명동이고, 서양 고전 음악을 명동의 필하모니 음악 감상실에서 귀동냥했다. 대학신문 학생 기자 시절, 주중에는 학교에서 데모를 할망정 주말에는 명동으로 향했다. 명동 모퉁이에 있는 경향신문사 인쇄소에서 대학신문 조판을 마치고 예술극장 맞은편의 중국집에 가 자장면과 고량주를 시켜 놓고 곧 인쇄되어 나올 신문을 기다리곤 하던 생각이 난다.   

 

명동성당 앞 집회 모습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농성과 시위의 현장으로서 명동을 자주 찾았다. 여건상 집회 주변부에 머무르는 것이 고작이었으나, 노동자들과 농성장에 같이 있다가 새벽녘에 귀가한 날도 더러 있었다. 명동성당 앞길을 가득 메운 수많은 시위 행렬, 그 위에 쏟아지던 최루가스, 흩어지는 시위대를 쫓던 경찰들, 시민들의 행진 앞에서 이끌던 신부와 수녀들의 결의 섞인 표정도 잔상으로 남아 있다. 명동의 이런 모습들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그리고 세월의 변화 속에 점차 사라져 갔다. 

 

오늘날 새로 단장된 명동성당 앞 오르막길에 누군가 천막을 치고 거기서 밤을 새우며 자기주장을 펴는 예는 거의 보기 힘들다. 명동 거리도 이제는 완연히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만의 차지가 되었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때, 명동에서 있었던 그 역사의 흔적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명동에 가면 반가운 이들을 곧잘 마주치던 그 시절과 달리, 되풀이 걸어도 이제는 아는 이 한 사람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도 명동 길을 걷는 이유는? 이따금 되살아나는 과거의 기억들을 놓치지 않기 위함일까. 무의식에 남아 있던 그 조각들은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돌아보는 기회를 준다. 그래서 과오에 대하여도 적절히 용서와 연민을 부여한다. 봄의 명동에는 개나리와 진달래는 없으나, 그보다 더 화사하다 할 상점과 행인들이 있다. 이들을 감상하는 것 또한 명동 보행의 덤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주변을 구경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참여연대 식구들에게 늘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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