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5년 10월 2005-10-01   586

사회적 편견이 만들어낸 미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

얼마 전 모 티브이에서 어린 나이에 홀로 아일 키우는 십대 미혼부들에 관한 내용이 방송됐다. 어린 나이에 혼자서 아일 키우는 미혼‘모’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그게 미혼‘부’라는 이유로 기특함과 대견함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는 것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선정적인 시각대신 용감한 선택을 한 아이들을 도와주자는 시각으로 그려내서 참 진보적인 방송이라는 생각을 하며 봤드랬다. 아닌 게 아니라 미혼모 낙태율 30%가 넘는 부끄러운 현실 속에서 아이엄마 마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떠나고 온갖 따가운 시선과 현실적인 부대낌을 견뎌내면서도 자기 아일 위해 애쓰는 그 ‘어린’녀석들을 보면서 애틋하고 고마운 마음을 느꼈드랬다. 동생뻘 되는 제 새끼를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먹이고 입히면서 이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평범한(?) 부성애를 보이고 아이의 분유 값을 벌기 위해 새벽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보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는 감동을 느끼기까지 했다.

아이 안 낳는다고 국민을 닦달하는,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현실 속에서 우린 살고 있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여전히 남자여서 그런지 여자들이 아일 왜 안 낳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아일 낳으면 돈 몇 푼 주겠다는 어이없는 소리만 해대고 있다. 그러면서 미혼부부 사이에서, 그것도 십대들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은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쉬쉬하며 키워주기는 커녕 여전히 외국으로 ‘수출’해버리고 있는 모순이 계속 되고 있다. 어른들이 안 낳는 거 아이들이라도 낳아줬으니 고마워 하며 국가에서 키워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열 여덟이면 옛날엔 아일 둘도 낳았을 나인데 아이는 커녕 일도 못하게 하고 그저 죽어라고 공부만 하라고 하니 이 사회가 이렇게 기형적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아직은 공부를 해야 더 어울릴 나이에 아일 낳은 것이 자랑이 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그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가르치는 것 역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춘향전> 원전은 포르노에 가까울 정도로 별별 체위가 다 나온다. 춘향이와 이도령은 열여섯 열일곱이고 혼전이었다. 그런 작품을 ‘명작’이라고 하며 가르친다. 그러면서 춘향이보다 몇 배로 이차성징을 빨리 겪는 요즘 아이들에겐 섹스는 ‘절대 악’이라고 가르친다. 19세기 학교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그런지 성교육도 답답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제발 아이들의 성을 인정하자. 부추기자는 게 아니다. 말려도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원하는 임신을 하지 않도록 제대로 콘돔 사용법을 알려주자는 거다. 그래도 임신을 하게 되는 아이들에겐 편안한 출산을 하도록 도와주자. 친권을 포기하지 않고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주자. 그러면 왜 안되는 건지 내게 설명해 달라. 애 버리고 도망가도 욕하고 애를 키우겠다 해도 혀를 끌끌 찬다면 피임이라도 제대로 가르쳐 주란 말이다.

오지혜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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