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3년 02월 2013-02-14   3310

[역사]기억의 안과 밖, 두 얼굴의 정치 지도자

역사

 

기억의 안과 밖, 두 얼굴의 정치 지도자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그들은 평화주의자였나?
어릴 적부터 위인은 늘 우리 곁을 맴돈다. 위대한 족적을 남긴 그들은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완벽한 영웅들이다. 그렇게 기억 속엔 남는 건 위인의 이름과 업적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처럼. 세종대왕의 온전한 삶은 기억 밖으로 밀려난다. 영웅의 업적만 기억되고 그의 온전한 삶은 사라지면서 위인이 탄생된다.
여기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 법한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 두 사람이 있다. 그들도 당당히 위인 반열에 올라 있다. 당혹스럽게도 두 사람의 기억 속 이미지와 기억 밖의 삶이 너무 다르다. 인도 독립 투쟁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기억되고 있는 마하트마 간디. 한국사 교과서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민족자결주의의 주창자 우드로 윌슨. 그들은 20세기 전반 식민과 전쟁의 고난을 평화로 극복하고자 했던 위대한 정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두 위인의 기억 밖의 삶은 참으로 반反시대적이다.

 

201302_참여사회2월호

 

노동자와 천민의 반대편에서 이룬 평화
마하트마 간디.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이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란 뜻으로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붙여 준 별칭이다. 간디는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인도의 독립을 얻어 낸 위대한 평화주의자로 기억되고 있다.
기억 밖에서 만난 간디는 다르다. 자본가의 편에서 노동운동에 관여했고 신분 해방 운동을 막아섰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도의 섬유산업은 부흥기를 맞았다. 간디가 공동체를 건설하고 독립운동을 펼치던 아흐메다바드도 면방직업이 발달한 곳으로 호황을 누렸으나 1917년에 오히려 임금이 삭감되자 노동자들이 이에 맞섰다. 자본가들은 간디에게 도움을 청했다. 간디는 자본가들에게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라고 독려했다. 간디가 구상한 노동조합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협력과 조정을 위한 조직으로 파업 행위는 원천적으로 금지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간디의 뜻을 따랐다. 결국 노동자의 지위는 추락했고 노동운동은 침체의 길을 걸었다.
간디는 신분 해방 운동에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인도에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개 신분 아래에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하는 않는 불가촉천민이 있다. 간디는 그들을 신의 자녀라는 의미의 ‘하리잔’으로 불렀다. 하지만 불가촉천민들은 그러한 동정적인 용어에 반발하며 스스로를 핍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트’라고 불렀다. 달리트는 1920년대부터 노동 조건의 개선과 의회 진출을 위한 투쟁을 펼쳤다. 간디는 달리트 운동이 독립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킨다고 비판했다. 1932년에는 단식투쟁을 불사하며 달리트 운동에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달리트에 대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한 것은 간디가 죽은 후인 1955년의 일이다.

 

평화의 사도이자 반공과 인종차별의 원조
우드로 윌슨. 1912년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여 3·1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정치 지도자다. 1919년에는 세계 평화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미국 역사 교과서 대부분도 윌슨을 평화의 사도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기억 밖의 윌슨은 끔찍하다.
먼저 그는 1910년대 내내 멕시코, 아이티, 도미니카, 쿠바, 파나마, 니카라과 등 남아메리카 나라들에 군대를 파병하여 내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침략 행위를 자행했다.
또 윌슨은 반공주의의 원조였다. 그는 러시아 혁명에 반발하며 내전을 일으킨 러시아 백군파를 지원했다. 소련의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레닌의 사도들이 우리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레닌의 사도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밤, 혼돈, 무질서의 사도를 가리킵니다”라며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는 전통을 세웠다.
윌슨은 노골적인 백인 우월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의회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인종차별정책을 밀어 붙였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조차 흑인을 백악관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공직에 등용했건만, 윌슨은 그런 관행을 모두 없앴다. 흑인계 언론사와 노동조합 간부들은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감시하고 탄압했다. 자신이 주도하여 창시한 국제연맹의 규약 중 인종평등 조항에는 개인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재임 기간 동안 백악관에서 흑인 지도자들을 딱 한 번 접견했는데, 그때도 그들을 사무실에서 쫓아내는 소동으로 마무리했다. 윌슨이 남긴 못된 유산은 오래갔다. 이후 20년 동안 민주당은 흑인을 배척했고 미국 정부는 1950년대까지도 인종 차별 정책을 고수했다.

다시 묻는다. 간디와 윌슨, 그들은 평화주의자였나? 인류가 그들을 그렇게 기억할 뿐이다. 기억 밖의 그들의 삶은 기억 안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그들은 두 얼굴을 갖고 있었다. 돌이켜보자. 우리 사회는 지금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단편적인 이미지만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경향이 짙다. 낙인효과가 이처럼 강렬한 사회가 또 있을까 싶다. 공功을 기억한다면 과過를, 과를 기억한다면 공을 헤아려보자. 기억의 편식증을 이겨 내는 일, 사회 통합의 첫 걸음이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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