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7년 01월 2007-01-01   1240

우리의 역사,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광범위하고도 모호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질문의 방향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 “역사학이 왜 독립학문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는 정치권력이 존재한 이래 가장 오래된 전문가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조상들이 사관(史官)이었던 것은 역사가의 오랜 유래를 설명해준다. 그런데 학문 분야가 분화하면서 역사학은 그 존재의의를 상실해야 마땅했다. 정치에 관한 부분은 정치학이, 경제에 관한 부분은 경제학이, 과학에 관한 부분은 과학이 정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 분야가 분화할수록 역사학의 효용성과 필요성은 역설적으로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역사학이 갖고 있는 독특한 위상 때문이다. 역사학은 어떤 현상에 대해 다른 학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미경처럼 미세하게 분석한다. 그러나 또한 망원경처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현미경같은 분석과 망원경같은 조망을 할 수 있는 학문은 역사학밖에 없다. 정치학자가 분석한 어떤 현상은 다른 경제학자에 의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는 현상 분석의 특수성은 성공했지만 보편성 획득에는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역사학은 현상을 지극히 미세하게 분석하지만 그 판단에는 종합성을 추구한다. 이것이 역사학이 분열의 시대에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다.

또한 역사학은 항상 현실의 정치권력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분야들은 어용(御用)으로 사용되는 것이 자랑이지만 사관에게 어용이란 꼬리표가 붙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국가의 관료였던 사관 사마천은 한(漢) 무제(武帝)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가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당했으며, 조선의 사관 김일손(金馹孫), 권경유(權景裕)는 세조가 단종을 찬시(簒弑:왕위를 빼앗고 시해함)했다고 적은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록에 실으려다가 연산군에게 능지처참을 당했다. 사관은 비록 국가의 녹을 먹어도 그 추구하는 바는 정권의 진실이 아니라 천하의 진실이었다. 이런 사관 정신 때문에 역사학은 독립학문으로, 그것도 존경을 받으며 존재할 수 있었다.

바른 역사의식의 필요성

역사 지식은 상대의 의식을 지배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처럼 현재의 의식을 지배하는데 유효한 도구가 없다. 그래서 역사는 자주 공격과 왜곡(歪曲)의 대상이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사이다. 한 세기 전에는 일제 식민사학이, 현재는 동북공정이란 이름의 중화 패권주의 사학이 한국사를 공격하고 있다. 두 사관의 한국사 공격의 핵심이 한국 고대사라는 사실은 한국고대사는 곧 현대사임을 입증한다. 즉 역사전쟁의 최전선은 한국 고대사이다. 일제 식민사학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근거로 과거 한반도 남부를 고대 일본이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다른 문헌과 고고학 발굴결과와 위배되기에 일본의 일부 우익들 외에는 사실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중화 패권주의 사학은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중국에서 온 기자를 고조선의 건국 시조라고 주장한다. 기자가 도읍했던 곳이 평양이므로 북한지역은 곧 중국사의 영역이라는 논리가 여기에서 나온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것이 한사군인데, 그 중심인 낙랑군의 위치는 현재도 치열한 논쟁 중에 있다. 문제는 중국은 물론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의 주류사학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의 고대 사료는 전혀 다른 사실을 전해준다. 『사기』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는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따라서 수성현과 갈석산의 위치를 찾으면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갈석산은 현재 하북성 창려현(昌黎縣) 북쪽에 있는데 9명의 황제가 올랐다 해서 유명하다. 또한 『수서(隋書)』 지리지 상곡군(上谷郡)조는 현재의 창려현이 옛 수성현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중국의 고대 사서는 낙랑군이 평양이 아니라 현재의 중국 하북성 지역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북한지역을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논리는 틀렸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뿐만 아니라 현재의 한국 주류사학계도 ‘낙랑은 평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학계의 논쟁,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현재 한국사에 관한 학계의 논쟁은 크게 두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 방향은 고대사에 관한 논쟁으로 주로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 사이에서 전개된다. 한국고대사의 시간과 강역을 확대하려고 하는 재야사학계는 강단 사학계가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아 한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했다고 비난한다. 재야사학계의 일부 주장이 엄밀한 사료적 검증없이 주장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지만 강단사학계 역시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스승들의 학설을 성역(聖域)처럼 여긴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한 방향은 근현대사 부분이다. 주로 경제사를 전공한 경제사학자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것이 논쟁의 발단이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핵심인데,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론을 부인한다는 역사학계의 반론을 받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경제적인 부분을 종합적인 분야로 확대해석했다는 점,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주체적으로 이룩한 경제발전의 성과를 식민지배의 영향에서 근거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조선말 삼정(三政)의 문란에 시달리던 일반 백성들의 처지에서 일제시대가 조선말기보다 못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어서 이 이론이 모두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민감한 것은 해방 후 한국현대사에 대한 평가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사에 친일잔재 청산의 미진, 군사독재 등의 여러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국민 대다수의 공통된 인식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현대사가 경제적 근대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자력으로 달성한 성공한 역사라는 것 역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사실이다. 상호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현상 중 한 부분만을 과도하게 해석하는데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평가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런 모순은 정부 여당의 주도로 일부 역사학자들이 참여해 진행하고 있는 과거사 정리작업에도 반영된다. 한국현대사의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것에는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지만 이것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에는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중적 현상이 발생하면서 또 다른 국민갈등의 요소가 되고 있다. 이는 역사평가에 대한 내용과 형식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잘못된 과거사 시정이라는 내용에는 동의하지만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형식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많은 국민들이 역사 문제는 순수한 동기로 진행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부분은 정부의 과거사 정리작업에 참여하는 역사학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정부의 과거사 정리작업 참여가 해당 역사학자의 역사관에 의한 것일지라도 정부의 직접 예산지원과 정부의 행정조직 내에서 진행하기 보다는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이 발견된 역사적 실체를 일반 국민들이 사실로 인식하게 하는데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중과 함께하는 역사논쟁이 필요한 때

한국사 논쟁의 문제점 중 하나는 동일한 사료와 사실을 달리 해석하며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중국의 고대 사서에는 한국사와 관련된 막대한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번역된 「삼국지 위지 동이전」등 몇 종류의 번역서만 반복해 논리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근현대사도 마찬가지다. 멀게는 조부(祖父), 가깝게는 부형(父兄) 세대의 일임에도 동시대에 대한 폭넓은 이해보다는 호불호의 관점에 따라 사료들을 취사선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자체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상대방의 해석을 가지고 논쟁하는 형국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해서는 이런 수준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평가가 일반 국민들 대부분의 상식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소수의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역사에 대해서는 그동안 신물나게 봐왔지 않은가? 일부 학자들만의 성에 갇힌 역사가 아니라 대중과 함께 하는 역사가 필요한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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