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1년 10월 2021-10-01   799

[역사] ‘선택이 형’의 1주기

‘선택이 형’의 1주기

 

 

지난 9월 18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선택이 형’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1991년 공권력의 살인에 항의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던 故김기설이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남은 모든 일을 일임했던 그 선배, 김선택이었다. 그는 필자가 다큐멘터리 영화 <1991, 봄>를 제작하면서 가장 먼저 인터뷰를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느닷없이 떠맡아야 했던 ‘남은 모든 일’은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함께 일하던 후배의 죽음을 조장하고 유서까지 대신 쓰게 만든 배후라는 당치도 않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책임져야 했고, 성당을 나와서도 2년 6개월이 넘도록 남루한 여관을 전전하며 수배 생활을 견뎌야 했다. 김선택은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아무리 먼 거리여도 숙소 비용을 훌쩍 넘는 택시비를 감당하며 집에 가서 잠드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 버릇은 바로 이때 힘든 기억들 탓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유서

1991년 김기설이 남긴 유서에는 故김선택에게 뒷일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제공 권경원

 

그를 치고 간 대한민국의 현대사

 

그의 대학 시절은 박정희 정권이 총 아홉 차례의 긴급조치를 발령했던 시대(1974~1979)와 겹친다. 그는 대학 간 연합 시위를 주도한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했다는 이유로 군사 법정에 넘길 수 있었던 긴급조치의 최고형은 사형이었고, 실제 법정에서 선고된 바로 그날 사형이 집행되던 시대였으니, 말 그대로 목숨 내놓고 데모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조금은 낯선 ‘긴조세대’는 이후 386세대와 비교되며 잃어버린 세대라고 불리곤 했는데, 영화 속 인터뷰에서 김선택은 자신의 삶을 가리키는 긴조세대니, 잃어버린 세대니 하는 말들을 마뜩찮아 했다. 당시 4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했던 대학생, 그중에서도 시위에 한 번이라도 나가본 사람의 비율이 열의 하나가 될까 말까 한데, 그 한 줌도 안 되는 이들이 세상을 죄다 덮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진실도 가리킬 수 없다 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짓밟고 들어선 신군부 정권이 시작되자 그가 택했던 일은 1980년 5월 30일 종로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광주 시민 학살을 고발한 뒤 투신한 학교 후배 김의기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었다. 남 알아주기 힘든 일을 하는 굳이 찾아 하는 이유는 특별히 없었다.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가 무도無道한 세상을 버티는 비결이기도 했다.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는 민주화운동의 한 복판에서, 80년대 중반에는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정책 위원으로, 87년 민주항쟁이 있은 직후에는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집행위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민주화의 길》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일이다. 당시 민주화를 갈망하는 대중들에게 해직 기자들이 만든 잡지 《말》과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민주화의 길》은 정세 분석과 이슈를 실어 사회과학 서점에 뿌려지며 활동가들에게 알려진 잡지였다. 그는 당시 어수선하게 마무리된 ‘사회구성체 논쟁’에 대해 생전에 한 번 정리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었다. 

 

월간 참여사회 2021년 10월호 (통권 289호)

영화 <1991,봄>의 첫 번째 인터뷰이 故김선택 사진제공 권경원

 

“유서대필 조작사건 재심은 

기훈이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다”

 

그는 20년 넘게 이어진 故김기설의 추모사업을 비롯해 유서대필자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의 무죄 소명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강기훈의 재심을 촉구하는 1인 시위와 기자회견마다 그가 맨 앞에 있었다. 필자에게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부탁했던 이도 그였고, 최종 무죄가 내려진 재판 직후 그 자리에 없던 강기훈을 대신해 사과 없는 검찰과 사법부를 질타한 사람도 그였다. 필자는 그와 세 번의 인터뷰 기회마다 그가 개인으로 느꼈을 외로움이나 허망함들에 대해 반복해서 물었지만, 돌려서라도 얘기할 법한 적당한 한 마디조차 토로한 적이 없었다. 

 

막걸리 한 잔 하자면 언제 어디에나 보살 미소로 있을 것 같던 ‘선택이 형’은 돌연 들이닥친 불운한 병마와 4년간 싸우다가 지난해 9월 영면에 들고 말았다. 유족들은 궂고 성가신 일로만 가득한 마름의 일을 자처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그가 매일 아침마다 외웠다던 <증도가>의 일부를 묘비에 새겼다.  

 

지도무난 至道無難 유혐간택 唯嫌揀擇 

단막증애 但莫憎愛 통연명백 洞然明白

 

지극한 도를 체득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직 갈라 치려 들고 골라내려는 일만 그치면 된다. 

애착하고 증오하려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난 뒤에야 

깨달음의 경지는 환하게 명백해질 것이다.

 

유족과 지인들이 작은 비석에 ‘맑은 영혼’이라 새겨 기억하는 김선택 씨는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지금은 이천 민주화기념공원으로 이장한 김기설과 김귀정의 묘가 자리했던 바로 그 터가 그가 영면을 취하고 있는 자리이다.

 


글. 권경원

다큐멘터리 영화 〈1991, 봄〉을 연출했다. 〈1991, 봄〉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한 11명의 청춘들과 유서대필, 자살방조라는 사법사상 유일무이의 죄명으로 낙인찍힌 스물일곱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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