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자가 무슨 소수자야?
정말 그렇다. 통계청에 따르면 98년 한 해만도 12만4,000건이 이혼했다. 이는 하루 329쌍이 이혼하는 걸로, 결혼한 세 커플 중 한 커플은 깨진다는 소리다. 이렇게 이혼자의 수는 급증하지만, 그들이 받는 사회적 대우는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에 불과하니, 이를 어쩌랴.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나마 최근엔 이혼자 공동체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래봐야 10개 미만이지만, 대부분의 온라인 이혼자 클럽은 비공개로 운영된다. 정작 신분을 밝히고 취재를 요청해도 거부하기 일쑤. 사진 찍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자와 만나 대화하는 것조차 꺼리는 현실이다. 이래도 이혼자가 소수가 아닐까?
“성질이 그러니까 이혼당했지…”
인터넷 다음 카페 이혼자 공동체 중 하나인 ‘홀로서기’. 이곳엔 400여 명이 넘는 남녀 회원들이 활동중이다. 운영자 허이규 씨(30세)와 회원 윤진수 씨(32세)를 만났다. 작년 6월 문을 연 ‘홀로서기’는 허이규 씨가 이혼 후 어느 곳에서도 도움 받을 수 없었던 현실을 절감하며, 이혼한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내민 손이다.
“3년 전에 이혼했어요. 이혼 후의 상실감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도움 받을 곳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이혼이란 낙인은 절 사회적 냉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이혼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은 데도 우리 사회는 관대하지 못했어요. 맘 붙이고 함께할 곳이 없었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봤다. 상처 입은 영혼을 위로해주진 못할 망정 빈정거리기도 했다.
“어머, 저 여자 이혼했대.”
“성질이 그러니까 이혼 당했지….”
400여 명이나 되는 회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묻는 질문은 “이혼사실을 알려도 사회적 불이익이 없을까요?”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스스로 가슴을 친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현실이 너무나 괴롭다는 것.
95년 선을 봐서 결혼했다는 허이규 씨. 그녀의 이혼은 주변에서 말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물일곱이란 나이에 이혼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엽기적 가정폭력 피해자인 ‘인천의 정씨’처럼 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경마에다 무능력, 가정폭력, 여자문제까지. 2년여 결혼생활은 한여름밤의 악몽처럼 끔찍하기만 하다.
“저는 위자료를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남편에게 위자료 200만 원을 주고 이혼했어요. 취중이라면 자존심이 덜 상했을 텐데…, 맨정신에 욕설을 섞어가며 때렸어요. 남편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전 고졸인데, 항상 ‘나는 너보다 많이 배웠다’고 말하면서 폭행을 일삼았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그들도 외아들의 폭력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어요.”
허허롭게 웃을 뿐이었다. 중차대한 결정 끝에 내린 선택이었지만 그녀에게 결혼생활은 행복은커녕 실망만 가득할 뿐이었다. 윤진수 씨는 “남아선호 사상만 없어지면 결혼제도도 개선될 거야” 하며 애써 허이규 씨를 위로한다.
99년 10월 이혼한 윤진수 씨는 올해 일곱 살인 아들을 데리고 부인과 이혼했다. 기업가로 성장하고 싶었던 그는, 98년 노동절에 출판사를 냈지만 경영난에 허덕이다 문을 닫고 말았다. 그후 무능력을 이유로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그는 그녀의 요구를 수락했다.
그가 이혼 후 겪고 있는 고통은 경제적인 문제일 뿐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는 것. 다만 일곱 살 난 아들이 가끔 “왜 아빠는 엄마랑 같이 안 살아?” 하고 물어볼 때 “학교 들어가면 얘기해줄게”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는 것.
윤진수 씨는 이혼이 자랑은 아니지만 이혼자를 죄인 취급하는 경향에 대해선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모든 이혼자여! 당당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혼 후 6개월간 길거리 노숙과 목욕탕, PC방을 전전하며 사람들을 피해 숨어다녔지만, 결국 그건 생활을 더 피폐하게 만들 뿐이었다고 고백했다. 이혼자의 특성은 때로는 위로도 상처가 되므로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게 돼 세상에 혼자된 느낌을 받기 쉽다고 말하는 윤진수 씨는 이혼자 공동체가 그래서 활발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왜 이혼했는지 굳이 안 밝혀도 되고,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편안함이 있다. 하지만 공동체가 지닌 문제도 많단다. 유부남이면서 연애나 한번 할까 해서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스캔들을 몰고 다녀 공동체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도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부정적 요소보다 외로움을 함께 나눈다는 긍정적 요소가 크기 때문에 모임은 지속된다고 말한다.
돈 많은 남자 아무에게나 시집가겠다?
하이텔의 이혼자 모임 ‘이혼후기’(이혼 후의 이야기). 97년 3월 10명의 발기인으로 시작한 모임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이혼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현실에서 이혼자 개개인의 삶의 지혜를 교환하며 좀더 활력 있는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정과 희망을 나누는 곳”임을 표방하고 있다. 현재 280여 명의 회원이 활동중인 이곳엔 7 : 3의 비율로 남성회원이 많다. 또한 이들은 아이들을 위한 모임, 여성회원들만의 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펼치고 있고, 지난 3년 반 동안 10여 커플이 재혼에 성공했다.
모임 운영자 이근수 씨(49세)는 모임을 통해 건강한 재결합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이혼 후 충분히 자기 시간을 가진 뒤 재혼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그가 이혼자 공동체를 운영하며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육아라고 지적한다.
“이혼은 당사자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큰 충격을 줍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부모의 이혼은 탈선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무엇보다 부모에 대한 신뢰가 깨진다는 게 충격적이에요. 따라서 전 이혼했다 해서 배우자에게 아이들을 못 만나게 하는 등의 행위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인연을 끊는 건 아이교육에 치명적인 위험을 낳을 수 있거든요.”
그뿐 아니라 사회의식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혼이 서양적 관습이라면, 이혼 후의 삶도 서양체제를 닮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혼 후의 삶은 지극히 한국적이라 이혼자들이 겪는 고통은 말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특히 여성의 경우, 사회적 약자로서 당하는 피해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특히 이혼 후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혼후기에서 상담한 결과 ‘50% 이상의 무직 이혼녀가 돈 많은 남자 아무한테나 시집가겠다’고 말해 충격을 주고 있다고 이근수 씨는 말한다. 90% 이상의 이혼녀들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사회가 무슨 노력을 할 것인가도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평생을 함께 살기로 하고 결합한 두 사람이 헤어진 후 독립적 개체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때로는 너무 냉혹해 극악한 상황에 내몰리지만 그때마다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작은 모임이 있고, 때로는 그들을 통해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좋은 사람 만나길 바라오. 헤어짐으로써 우린 좀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오.”
당나라 시대 한 부부의 이혼문서 ‘부인을 떠나보냄에 동의함’에서 남편이 한 말이다. 떠나는 아내의 등뒤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오히려 지금 세태보다 낭만적인 것 같다. 바둑판처럼 짜인 일상을 기계처럼 살아가는 지금 그런 낭만은 기대할 수 없을지라도 이혼으로 상처받은 우리시대 소수자들이 당당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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