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2년 09월 2012-09-05   2804

[상담] 장거리 연애? 가까이 있을 때 다시 생각해봐!

장거리 연애? 가까이 있을 때 다시 생각해봐!

김남훈 프로레슬러, 육체파 지식노동자
IMG_1283
Q 올해 초 필리핀 여행에서 현지 가이드를 하는 남자를 알게 됐어요. 처음엔 별로 다른 감정이 없었는데, 약간의 사고로 일주일 정도 더 체류하게 되면서 자상하게 신경을 써주는 모습에 제가 먼저 고백을 하고 말았죠. 그는 필리핀에, 저는 한국에.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어요. 직접 만나진 못하지만 페이스북과 스카이프로 알콩달콩 연애하는 재미가 쏠쏠했지요.

그런데 제가 일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고, 서로 어긋나서 연락을 못하고 그러면서 싸움이 잦아지고 그 정도도 심해지네요. 저는 너무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그가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것도 저를 지치게 하구요. 그가 12월에 한국에 온다고 해서 그때까지는 일단 참고 있어요. 전 정말 이 사랑 계속 가져가보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아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수인(가명) 32세,

A 휴가지에서 멋진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은 정말 영화 같은 일이지요. 저도 그런 것을 꿈꾸고 홀로 여행을 떠났다가 동성 술친구만 잔뜩 만들고 온 쓰디 쓴 경험이 있습니다만.
순도 높은 공기, 청량감 있는 바람, 차가운 생맥주와 맛난 음식, 그리고 별이 보이는 밤하늘. 이 즐겁고 행복한 상황은 시간적, 경제적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휴가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더욱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지금 이 상황을 놓치면 안되니까, 뇌 속에서 자동 포토샵이 작동해서 여기저기 단점을 지우고 장점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말인데, 진짜 위기는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12월입니다.

흔히들 남녀관계에 대해서 ‘남자는 블루투스와 같다. 가장 가까운 기기와 연결된다. 여자는 와이파이와 같다. 가장 강한 신호를 내는 기기와 연결된다. 블루투스는 암호가 네자리, 와이파이는 열자리다’ 라고 하지요. 휴가지에서 그는 동남아시아의 강렬한 태양에 잘 태닝된 피부에 오클리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를 짧게 치거나 묶고 있었을 겁니다. 원색의 티셔츠와 샌들도 아주 잘 어울렸겠죠. 바다로 나아가는 배에 앉아 로프에 몸을 기대고 있는 모습은 그 현장에선 가장 강력한 와이파이 신호였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서도 그럴까요? 일단 패션, 동남아에서 오다보니 겨울옷이 별로 없을 겁니다. 몇 년 전 옷에 칼라까지 세우고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지요. 공항철도를 타러 지하 깊숙이 내려가는 것에 놀라워하고, 요즘 인기 있는 술집에라도 가면 어안이 벙벙할 겁니다. 여기서 그의 와이파이 신호가 다섯 칸에서 네 칸으로 그리고 다시 세 칸으로 줄어듭니다.

이건 여자가 조건을 본다거나 이기적이라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확신을 얻으려는 노력이지요. 태고나 지금이나 여자가 임신을 하면 남자는 그냥 돌아서서 자기 일을 할 뿐이지만 여자는 새로운 생명을 10개월간 보듬어야 합니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 모두를 받아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여성은 본능적으로 더 강한 신호를 찾게 된 겁니다. 그 신호는 감성적인 것일 수도, 경제적 능력일 수도 있겠지요. 남자는 사실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신에게 애정을 주는 여자라면 가리지를 않지요. 그리고요. 장거리 연애는 원래 힘들어요. 인간은 외로움을 피부로 느낍니다. 스킨십이 없으면 외로울 수밖에요. 페이스북과 스카이프로는 촉각을 만족시킬 수 없어요.

그래도 냄비 바닥에 붙은 그을음같은 사랑이나마 닦아내기 아쉬워서 이런 상담을 신청했겠지요? 피부로 다시 그의 체온을 느끼는 12월까지는 버텨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냥 던져버리기엔 조금 아깝잖아요. 그 나이에 다시 사랑! 리부팅! 하는 것보단 차라리 몇 달을 더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생맥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말이죠.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