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님들, 딱 다섯 사람만 기억하자
사법감시센터 <검찰보고서>
이진영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의 직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린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많은 현실에서는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 자신들의 인사권자인 집권세력의 이해관계에 봉사하고, ‘삼성장학생’으로 상징화 되듯이 경제권력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충실한 수호자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이 모든 이해관계보다 우선하여 검찰 조직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칼을 빼들기도 한다. 이쯤 되면 ‘공익의 수호자’라기보다 ‘조직의 수호자’란 말이 훨씬 어울린다.
검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안다. 선거 때마다 대두되는 공안정국,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옭아매는 위헌적인 법 적용, 말 한 번 잘못 했다가는 철창신세를 지게 만드는 ‘허위사실유포죄’의 발명, 이 모든 것이 검찰의 작품이다. 집권세력과 그 측근의 비리에는 눈감거나 부실수사·꼬리자르기를 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에는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일삼는 검찰, 삼성으로부터 정기적인 떡값을 받는 ‘삼성장학생’, 지역사회와 유착하여 지속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아온 ‘스폰서’ 검사. 지금까지 우리가 익히 보아온 검찰의 모습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력구제’라는 야생의 삶이 아닌 ‘법의 지배’를 택하도록 하고, 개인 대신 국가가 나서서 ‘정의’를 판별하고 처벌하겠다는 생각은 근대국가의 핵심 이념이다. 검찰은 국가를 대표하여 범죄자를 법정에 세운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런 검찰이 공정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물론 이런 비판을 검찰 입장에서는 억울해 할 수 있다. 법조 기자를 오래 한 한겨레 이순혁 기자는 검찰 내부에서 소위 ‘잘 나가는 검사’, 주요 보직을 맡는 검사는 20% 내외이고, 나머지 80%의 검사는 일반 샐러리맨처럼 살아간다고 말한다(『검사님의 속사정』, 씨네21북스).
언론에 크게 비춰지는 이른바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을 받는 사건들은 그 20%의 ‘정치 검사’들 얘기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검사들은 매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만 욕은 함께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11년에 발간한 보고서 <MB 검찰 3년, 한국 검찰의 현주소>.
9월 중 올해의 <검찰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름을 불러 기억하게 하라
참여연대의 운동 방법 중 하나로 ‘네임 앤드 쉐임Name & Shame’이 있다. 말 그대로 이름을 불러서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국가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은 공무원의 의사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실패’는 있지만 그 실패의 책임자는 없는 경우가 많다. 의사결정 과정의 중대한 실수나 위법이 존재할 경우, 그 실패의 책임을 사람에게 물음으로써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이러한 운동 방식의 목표이다. <정책실패 보고서>가 주로 이런 방식을 택한다.
지금, 당신의 기억 속을 짚어 보자. 이름을 알고 있는 검사는 몇 명인가. 검찰총장과 자신이 사는 지방검찰청장의 이름 정도를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검찰’을 욕한 적은 많아도, 어떤 사건을 수사한 ‘누구’ 검사를 비판하기는 어렵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검찰은 검찰’일 뿐, ‘내곡동 대통령 사저부지 불법매입 사건을 담당한 한석리 검사’를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사법감시센터가 매년 제작하는 <검찰 보고서>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난 1년간의 검찰의 주요 수사를 정리하고 그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문제가 있는 사건, 기억해야 할 주요 수사를 선별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며 담당자를 기록한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작업이 필요하다. 그 중 중요한 것이 판결문을 구하는 것과 사건을 기소한 검사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다. 판결문을 구하는 것은 검사가 어떤 내용으로 기소했는지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공소장은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판결문을 통해 확인하는 것인데, 판결문 공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하자. 문제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거나 불기소한 경우인데, 이렇게 되면 검찰의 공식적 결정을 문서로 확인할 길이 없다. 검찰의 권한이 수사하고 기소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불기소권’만큼 막강한 것이 없다는 말도 있다. 앞서 말한 내곡동 대통령 사저 의혹만 해도 검사가 불기소처분을 내리는 바람에 법원의 판단을 구할 사이도 없이 사건이 종결되고 말았다.
그나마 기소 검사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작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한결 편해졌다. 판결문에 기소한 검사의 이름이 나오기 때문이다. 법이 바뀌기 전에는 재판을 담당하는 검사 이름만 판결문에 기록되기 때문에, 기소 검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검찰청별로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했다. 이 경우 검사의 이름은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이므로 당연히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청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비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 부산지검에서 ‘정당 가입 혐의로 현직 검사를 기소한 사건’이 있었는데, 1심 법원에서는 무죄가 나와 검찰이 항소를 한 상태다. 참여연대는 이 사건에서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있었는지 살펴보기로 했고, 기소 처분을 한 검사 이름을 부산지검에 정보공개 청구했다. 그런데 부산지검은 “검사의 이름이 참여연대 등 사회단체에 공개되었을 경우 진행 중인 재판 수행에 영향을 미쳐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하였다. 참여연대는 이 황당한 결정에 대해 행정심판을 청구해 놓았다.
딱 다섯 사람만 기억해 보자
올해도 사법감시센터는 <검찰 보고서>를 만든다. 9월 중 발간될 보고서는 참여연대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며 인쇄본은 언론사와 도서관, 그리고 당사자인 검찰과 법원에 배포할 계획이다. 이번 보고서가 담을 검찰의 수사는 2011년 사건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20여 건의 주요 수사를 추렸다. 2011년의 가장 큰 수사였다고 할 수 있는 저축은행 수사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경우 전국적인 수사가 이루어졌고 참여한 검사의 숫자도 많다.
우리 회원들도 20여 건의 수사 중에서 각자 기억해야 할 사건을 꼽아보면 어떨까. 보통 사건별로 관련된 검사들을 기록하는 방식은, 주임검사-소속부장-차장검사-지검장, 이렇게 네 명이다. 여기에 검찰총장을 더하면 총 다섯 명인 셈이다. 각자 검사 다섯 명의 이름을 기억하자. 그리고 앞으로는 ‘검찰’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대신 ‘무슨 수사를 담당한 검사 아무개’를 실명으로 비판해 보자. ‘검찰’이라는 조직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 20%의 검사, 무리한 기소를 일삼고도 승승장구하는 일부 ‘정치 검사’들을 가려내 보자. 그렇게 되면 검사들이 무서워해야 할 대상이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스폰서 검사 파문으로 온 국민이 검찰을 비판하고 개혁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마저, “검찰만큼 깨끗한 조직이 없다”고 강변했던 오만함을 깨기 위해, 검사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들의 이름을 불렀을 때, 진정으로 공익을 대변하고 국민을 섬기는 봉사자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이진영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회나 국가가 ‘제도’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불합리를 감수하라고 할 때, 혼자서 싸워야 한다면 얼마나 외로울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얼마나 잘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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