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2년 09월 2012-09-05   1508

[기획] 무감사회

무감사회
노동자 권리에 무감한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
 

끝나지 않은 폭력에 대한 이야기
지난해 가을 찾았던 발레오만도의 농성장 한편에는 겨울을 나기 위한 장작이 쌓여 있었다. 공장은 용역경비가 지키고 서있고, 퇴근하는 노동자들은 회사 눈치가 보여 바로 건너편에 해고자들의 농성장이 있음에도 20여 년을 함께 일한 동료를 한번 찾아보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다시 여름, 아직도 공장 안에서는 한강철교, 오리걸음 등 노동자들을 길들이기 위한 반인권적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KEC 노동자들에게도 용역경비의 폭력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다. 2010년 6월 30일 새벽, KEC에 투입된 650명의 용역경비는 기숙사에서 잠자던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끌어냈다. 대다수가 여성이었던 기숙사, 그곳에는 임신한 여성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 노동자도 있었다. 지독했던 악몽, 씩씩하고 힘차게 투쟁하며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도 그날의 폭력을 되새기는 노동자들은 또다시 눈물을 보인다.

유성기업의 투쟁도 끝나지 않았다. 용역경비와 싸우며 매일 수십 명의 부상자를 냈던 노동자들. 헬멧, 보호 장구, 곤봉, 해머, 소화기로 무장한 용역경비들은 노동자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일터를 지켜내야 했고, 노동조합을 지켜내야 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폭력, 현재진행형인 투쟁, 공장 안에서 지속되는 용역경비의 감시와 통제. 노동조합을 공장에서 몰아내고 말겠다는 자본의 의지에 따라 현장은 용역경비의 통제 아래 놓였고, 그로 인한 폭력은 일상화되고 있다.

SJM과 만도에 용역경비가 투입되면서 또 다시 용역폭력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지만, 폭력에 노출된 노동자들에게는 2010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일이다. 용역경비가 투입되던 날, 그날의 폭력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노동자들의 밤과 낮, 일상을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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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자동차 부품업체 SJM에서 노사분쟁이 발생하자
             컨택터스 용역경비들이 회사를 점유했다
 

골칫거리 노동조합을 해결해 주겠다는 그들
노동조합의 투쟁을 파괴하기 위해 자본은 여기저기서 용역을 끌어 모은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은 여기저기서 같은 얼굴을 발견하기도 한다. 2010년 초 발레오만도에 투입되었던 용역경비는 발레오만도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인원을 빼서 KEC로 이동하고, 경상병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2011년 유성기업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곳 어디에나 용역경비가 등장한다. 현장에서 현장을 옮겨 다니는 용역들은 마치 건설현장에 들어가는 노무팀처럼 팀을 이루고 컨택터스와 같은 큰 업체에 줄을 대어 현장에 투입된다. KEC처럼 대규모로 용역이 투입될 때는 전국에서 용역들을 끌어 모으고, 등록금을 벌기 위한 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동원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 용역들을 현장에서 현장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자본이 직접 나서서 하는 일은 아니다. CJ씨큐리티나, 컨텍터스처럼 그런 역할을 도맡아 해주는 회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소위 노사관계 전문 용역들이다. 이들은 오히려 당당하게 노동조합의 분쟁을 자신들이 해결해 주겠다고 광고하며 노사관계에 개입해 들어온다.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자본의 이해를 우선시 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기형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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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7월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 때에 쇠파이프 등으로 중무장한 용역경비가
             농성 중인 노조원들을 강제 진압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용역폭력을 눈감는 공권력
그리고 공권력은 이들의 폭력에 눈감는다. 경찰은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에도 모른척하고, KEC의 노동자들이 용역 폭력을 신고를 했을 때는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늘 용역경비와 구사대의 편, 노동자들에 맞서는 자리에 위치했다. 사용자의 시설 보호 요청으로 들어오는 경찰은 노동자들을 향해 방패를 들이밀고, 곤봉을 휘두른다. 용역경비와 공조하여 노동자들을 짓밟기도 한다.

용역 폭력이 발생했을 때 용역경비에 대한 기소율은 40%를 약간 웃돌고 구속자는 없는 반면, 노동자와 철거민 기소율은 90%가 넘고 40여 명이나 구속된 것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이러한 현상이 퇴직한 경찰공무원의 재취업 자리가 용역경비업체에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과 무관할까. 노동부는 법원의 결정이 나기도 전에 이미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검찰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결사의 자유는 좀 더 많은 이윤을 얻겠다는 자본에 의해 짓밟히고 공권력은 그를 용인한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그제서야 용역 업체 한두 곳을 처벌하는 것이 공권력이 이 문제에 대응하는 전부이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은 경비업체 한두 개를 처벌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유성기업 사태 이후 CJ씨큐리티라는 업체의 허가를 취소했지만, 지금 컨택터스라는 업체가 나타났고 이 업체가 여러 노동 현장에 개입해 왔음이 또 드러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형적 현상을 만들어내는 사회 자체에 대한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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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폭력을 만들어내는 사회
노동조합을 무너뜨리려는 자본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자본은 상시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 하나로 노동조합에 대한 폭력적 파괴를 택했다. 그 실험은 발레오만도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대다수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이 있던 자리에는 어용노조가 들어섰다. 공장에 남은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했을 어용노조, 그러나 그 다음 이어진 것은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살인적인 노동 강도, 그리고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폭력에 너무 둔감하고,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에 대해 냉담하다. 수십 명이 다치고 노동조합이 와해되어도 오히려 그들이 임금 얼마를 받는지, 혹시 조중동이 말하는 소위 귀족노동자는 아닌지, 또 노동자들이 자본에 대항해 휘두른 폭력은 없는지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또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이 당한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보려 한다. 웬만한 폭언 정도는 그러려니 하기도 하고, 점점 더 심각한 폭력에 대해서만 겨우 그 심각성을 깨닫는 정도가 된다. 그런 사회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줄 수 없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 주장에 냉담한 사회는 누구의 권리도 지킬 수 없다. 그런 냉담함이 자본의 용역 폭력을 낳고 그에 대한 사회적 대처를 더디게 만든다. 지금 벌어지는 폭력들은 타인의 권리를 짓밟기 위해 벌어지는 행위이다. 아무리 미미하다 하더라도 권리를 억누르겠다는 시도 자체에 우리는 분노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시선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태는 지속적으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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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용산참사 후 사진가 노순택은 이 나라를 ‘용영깡패들이 마음껏 폭력을
             휘두르도록 망을 봐주는 경찰의 나라’라고 했다.
 

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용역경비가 아니라 하더라도 노동 현장에서는 일상적으로 자본에 의한 억압이 발생하고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생계에 매달려 굴종을 강요당한다. 그것을 방어할 수 있는 것, 그 최소한의 권리이자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권리가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이다.

흔히 노동권은 노동자만의 권리, 사업장 안에만 존재하는 권리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껏 노동조합을 만들며 노동자들이 지켜온 것은 자신의 일자리만은 아니다. 노동자 조직과 투쟁의 약화는 결과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욱 축소시키고, 노동자 권리의 축소는 좁게는 노동현장에서의 인권의 제한과 박탈, 크게는 사회 양극화로까지 이어진다.

권리 주체가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회는 균형을 유지할 수도, 정의를 구현할 수도 없다. 자기 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결집과 행동이 보장되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논쟁과 충돌, 대화와 투쟁이 권리로서 보장될 때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정의’와 ‘평등’, ‘인권’에 대한 지향을 놓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엄진령
2002년 비정규직 투쟁을 처음 접한 이후, 비정규직 운동에 작은 힘이나마 되고자 꾸준히 노력하고있다. 2006년부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상근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금은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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