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에 굶주린 아이들
고진하『참여사회』 편집위원 gojinayo@hanmail.net
장마전선이 올라오는지 습한 바람이 부는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6시 글쓰기 공부 시간을 5분쯤 넘겨 도착했다. 종종걸음으로 아파트 출입구로 들어서는데, 승강기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튀어나온다. 나와 같이 공부를 하는 6학년 아이들이다. “얘들아, 지금 어디 가니?” 한 녀석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조그맣게 말했다. “선생님, 고양이 잠깐만 보고 올게요.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
지난주에 아이들이 잠깐 같이 갈 데가 있다고 수업을 10분만 일찍 마쳐달라 했다. 아이들이 내 손을 끌고 간 곳은 관리사무소. 경비 아저씨가 동물을 유난히 좋아하시는지, 그곳에는 아기 고양이들이 있었다. 고양이 보러 오는 것을 엄마가 알면 안 된다고 아이들은 내게 주의를 주었다.
늦었는데 안 된다고 할까? 그러나 아이들은 고양이에게 줄 빵을 들고 벌써 저만큼 달려가고 있었다. “얘들아, 5분만 보고 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러나 아이들은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이제 그만 오라고 손짓하며 부르자 순순히 달려온 것만도 다행이었다.
“선생님, 탄천에 같이 가면 안 돼요?” 수업이 끝날 즈음 한 녀석이 물었다. 아파트는 탄천 가에 있다. 저녁이면 주민들이 산보하거나 운동을 즐기는 한가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벌써 저녁 8시다. “어쩌지? 선생님은 빨리 돌아가야 되는데.” 아이는 아쉬운 듯 “그때 너무 행복했어요” 한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5월 어린이날 무렵에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그곳에 갔다. 한 시간쯤 산책로를 따라 걷고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만한 일로 그렇게 행복했다니…. 미안한 마음에 “다른 날, 식구들이랑 같이 가면 되잖아?” 하자 “숙제하느라 시간이 없어요” 한다.
하기야 영어 학원, 수학 학원 각각 주 2회에 영어 과외, 수학 과외가 주 2회씩. 그뿐인가. 피아노에 글쓰기까지….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엄마 따라 교회에 가는 시간이 쉴 수 있어서 제일 좋다는 아이들이다. 한 녀석은 힘들어서 피아노만이라도 끊어달라고 졸라도 엄마가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고 울었다. 그러니 나처럼 느슨한 선생님 시간에 고양이도 보러가고 산책도 가야겠지.
“방학이 되면 시간이 좀 나겠지?” 하는 궁색한 나의 위로에 “학원 보충 때문에 더 바빠요. 차라리 방학이 없는 게 나아요” 한다. 그 중 두 녀석은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면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호주로 6주 동안 어학연수를 떠나 개학 직전에야 돌아온다. “오래도록 공부 열심히 하려면 건강이 따라주어야 하니까 산책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려봐” 하자 돌아온 대답. “나중에 그렇게 안 해도 되게 지금 공부 열심히 하래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학원, 과외는커녕 학습지도 안 시키고 놀리고 있는 내가 갑자기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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