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등이 미치는 영향
유가 폭등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총체적인 위기감도 확산되면서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석유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국제유가 폭등의 충격이 물가와 국제수지 등 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정부 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편집자주
에너지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gileseo@ournature.org
석유가격은 어디서 어떻게 결정될까
석유 가격이 150달러를 향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물론 석유 가격은 앞으로도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다. 미래의 유가를 족집게처럼 예측할 수 있는 예언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제 값싼 석유의 시대는 명백히 지나갔다는 것이다.
석유를 생산하는 유전은 전세계에 걸쳐 약 2만여 곳이 있다. 그중 하루 1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하는 약 110여 개의 거대 유전에서 전세계 석유생산량의 40% 이상이 나온다. 특히 유전의 ‘왕중왕’으로 불리는 사우디의 초대형 가와르 유전은 하루 450만~520만 배럴 정도를 생산한다. 세계 두 번째 초대형 유전으로서 최근 지난 해에 견주어 10% 이상 생산량이 줄어든다고 발표돼 국제 유가에 영향을 미친 멕시코의 칸다렐 유전 생산량이 120만 배럴 정도인 점을 생각하면 가와르 유전의 규모와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2007년의 경우 전세계 석유 생산량은 하루 약 8,150만 배럴 정도이다. 물론 이 통계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이다. 왜냐하면 전세계 원유생산 국가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정확한 석유생산량을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산유국은 석유관련 자료를 국가 최고급 비밀로 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는 석유관련 정보를 누설하면 7년 징역에 처해진다.
이 때문에 수많은 석유정보회사들이 나름의 정보망을 총동원해서 작성한 석유생산량 보고서들이 해마다 수만 달러의 비싼 값으로 팔린다. 석유생산량을 안다는 것은 바로 돈벌이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는 전세계 석유 수출항에 통신원들을 두고 실시간으로 석유 수출량을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석유를 거래하는 시장은 선물 시장과 현물 시장이 있다. 현물시장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시장이 역사가 오래되었고 지금은 도쿄와 싱가포르도 유명하다. 두바이와 중동지역에서 생산되는 두바이유는 두바이와 싱가포르, 도쿄 등지에서 주로 현물로 거래된다. 우리나라는 석유 수입의 70~80%를 두바이유를 포함한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다.
보통 1~2개월 뒤에 인도될 석유가 미리 거래되는 선물 시장은 시장 동향이 민감히 반영되는 곳이기도 한데, 미국의 뉴욕상품거래소(NYMEX)와 영국 런던의 국제석유거래소(IPE)가 유명하다. 뉴욕상품거래소는 주로 서부텍사스중질유(WTI)와 기타 원유를 거래하고, 런던 국제석유거래소는 브렌트유 등 주로 북해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거래한다.
서부텍사스 중질유와 브렌트유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유가 세계 석유 가
격을 결정하는 국제 지표 역할을 한다. 이들 세 유종이 기준이 된 것은 생산량이 많고 거래가 개방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황 함량이 낮은 서부텍사스중질유가 가장 비싸고 두바이유가 가장 싸다. 황 함량이 낮을수록 정제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브렌트유는 고유황 경질유, 두바이유는 고유황 중질유(中質油)이다.
서부텍사스중질유는 주로 미국에서만 소비되지만 세계 석유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보통 서부텍사스중질유가 오르면 다른 원유도 그 가격이 뛰게 마련이다. 브렌트유는 주로 런던 국제원유거래소에서 취급되는데, 석유 선물 거래의 3분의 2는 브렌트유 시세를 기준으로 한다.
세계 석유매장량의 4분의 3이 묻혀 있다고 알려진 중동 지역의 산유국들은 1987년부터 국세 시세와는 상관없이 석유수출기구(OPEC) 자체에서 7종의 석유를 묶어 유가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둔 바스켓유가를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국제시세와 전혀 무관하게 가격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석유 생산량이 아무리 많아도 수요가 더 많으면 석유 가격은 올라간다. 오늘날 중국과 인도의 경제개발과 성장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 곳곳의 나라들이 경제개발과 성장을 지고지선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른바 근대 산업화란 석유를 에너지로 한 석유문명화이다. 석유 소비가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급속하게 늘어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고갈이 멀지않은 석유
석유가는 왜 이렇게 천정부지로 뛰어오를까. 이른바 전문가들은 이러저러한 분석, 예컨대 수급불균형, 달러약세, 투기자본, 산유국들의 정정 불안 등을 거론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3월 석유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이런 이유를 들면서 두바이유는 2008년 상반기 81.17달러, 하반기에는 다소 내려간 76.08달러 2008년 평균 78.62달러라고 예측하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가격 예측은 빗나갔지만 네 가지 요인들이 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특히 요즈음 들어서는 국제투기자본이 대거 석유뿐만 아니라 각종 원자재와 식량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분석들이 많다. 물론 국제투기자본은 대거 석유 시장에 뛰어들어 유가를 올려놓는 주범 가운데 하나이다. 실제로 전세계 외환거래액 가운데
상품거래에 쓰인 외환거래액은 2%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8%가 투기성 자본 이동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암의 원인이 암세포라는 하나마나한 설명과 똑같다. 왜 투기자본들이 석유 시장에 뛰어들었는지 그 근본 까닭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인류는 석유를 대략 1조 배럴 조금 못 되게 소비했다. 석유생산의 원년은 펜실베이니아의 타이터스빌 지하 21미터에서 유전 시추에 성공한 1859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처음으로 석유 시추가 성공한 것은 1858년 독일 니더작센주의 소도시 비체에서였다. 석유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텍사스 버몬트 인근의 스핀들톱 유전에서 석유가 분출돼 나왔던 1901년부터였다. 그러니까 인류는 수백만 년에서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의 보물인 석유를 1세기라는 그야말로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간에 소양댐 44개가 가두고 있는 물의 양만큼이나 마구잡이로 퍼다 쓴 셈이다. 땅 속에 있는 전체 석유의 대략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전세계 석유의 궁극매장량은 기관과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추정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조 6천억, 미국지질조사연구소는 3조 1천억 배럴, 국제석유가스정점연구회 창설자 가운데 하나인 콜린 캠벨은 2조 5천억 배럴로 본다. 매장량이란 말은 확인매장량, 예상매장량, 가능매장량 등 범위와 관점에 따라 다양한 전문용어들이 있고, 또 재래식 석유, 비재래식 석유 등 어떤 석유를 말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기도 한다. 더구나 매장량 문제는 매우 민감한 정치경제학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마다 기관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전혀 다른 수치를 내놓게 된다. 심지어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의 어떤 교수는 석유는 유기물이 아니라 지구 맨틀 깊은 곳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화학작용으로 생겨난 것이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러시아 이론에 근거해서 매장량을 6조 배럴로 추정하기도 한다.
궁극 매장량이 얼마건 석유는 명확히 언젠가는 고갈되는 자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식의 사실을 잊고 마치 석유는 무한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와 놀라운 풍요의 원천은 다름아닌 석유이다. 석유가 고갈되면 이런 풍요는 전혀 불가능하다. 정확히 말하면 길어야 2백 년쯤 지속될 자본주의 석유문명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짧고 가장 포악한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의 석유문명은 미래를 도둑질하는 자원 착취의 문명일 뿐만 아니라 전혀 지속불가능한 자살문명이기 때문이다. 석유를 그야말로 미친듯이 마구잡이로 불태운 결과 지구는 더워지고 있고, 환경호르몬은 사람과 모든 생명체를 기형과 불임으로 몰고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학살하면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 생명체 전체를 멸종으로 몰고가는 파괴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간명하다. 이제 석유는 배럴당 2백 3백 달러가 문제가 아니라 확보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지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는 석유 자체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말게 될 것이다.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석유정점론(피크오일)이 단순히 석유생산량에 대한 이론으로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56년 킹 허버트가 미국의 석유는 1970년에 정점에 도달한다고 주장하고, 그 뒤 14년이 지난 1970년에 실제로 허버트의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은 이래 오일피크는 에너지 문제의 화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 세계 주요 거대석유회사 가운데 하나인 토탈도 오일피크는 2020년에서 2030년 사이일 것이라고 발표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의 내부 비밀연구에서는 석유정점을 2014년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대체로 석유정점은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어느 지점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편이다. 그러나 지금의 추세를 보면 석유정점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을 비롯해서 리비아,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알제리, 이란, 멕시코, 노르웨이, 영국, 나이제리아 등등 이미 전세계 50개 남짓한 산유국 가운데 그 절반인 25개 나라 이상이 정점을 지났다. 사우디 석유도 이미 작년에 정점에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석유 발견의 정점도 이미 1963년에 지났다. 1990년 이후 발견된 유전의 평균 규모는 5천만 배럴에 지나지 않는다.
석유정점에 도달한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 전세계 공업국가들은 일종의 불가피한 패닉 상태를 겪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체제, 산업구조 자체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탈석유 사회체제로 재편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준비를 제대로 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근대 자본주의 산업체제와 민주주의, 국가 등의 제도가 사실은 얼마나 어리석은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제도인지 다시금 상기하게 만든다. 재생가능에너지로 에너지 체제 전환을 모색하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자본주의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의 근본구조 개혁으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삼풍백화점 5분 전: 풍요에 중독된 한국 사회
이런 에너지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음을 왜 사람들은 애써 외면할까. 아마도 사람들은 붕괴가 현실로 닥쳐야 그때서야 쓰나미였음을 인식할지도 모른다.
한국은 지금 압축산업화와 압축민주화에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풍요의 소비사회이다. 물론 이런 소비생활이 여유로운 삶인지는 다시 따져보아야 하지만 말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차상위 빈곤계층의 팍팍한 삶도 곰곰 다시 생각해보면 역대 어느 제왕보다도 더 나은 소비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차상위 빈곤계층의 월수입은 동남아와 북한 노동자들의 2~3년 수입 전액과 맞먹는다. 영조 임금이 에어컨 틀어져 있는 근정전에서 집무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겨울에 칠레산 포도를 맛볼 수는 없었다.
특히 석유정점은 곧바로 식량파동을 의미한다. 오늘날 농업은 종자에서부터 농약, 비료, 수확, 포장, 운송, 보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 과정에 석유가 투입되는 석유농업이다. 다시 말해 식량의 90%가 석유이다. 값싼 석유 덕분에 우리는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오면서 그 식품보다 4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는 운반과정을 거친 밀가루와 ‘어륀지’를 먹는 호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석유는 교통에 50%, 개별난방과 중앙난방에 25%, 전력생산에 10%, 석유화학에 8%, 농업에 3%, 기타에 4% 쓰인다. 자동차 중심의 사회 또한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숫자는 보여주고 있다.
자, 이 숫자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나머지 탈석유 사회를 의식주 모든 분야에서 어떻게 재기획해야 할지 그것은 대중의 지혜, 촛불 시민들의 상상력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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