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7월 2000-07-01   994

소신있고 능력있는 대법관을 원합니다

대법관은 법원의 최고 지도부를 구성하는 권력자입니다. 그런데 대법관은 국회의원이나 국무총리 등의 정치인과 달리 고도의 법률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이기에 국민이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법관이 갖는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정치권의 위헌·부당한 법률의 제정, 행정부의 불법·부당한 행정행위의 시행 등과 같이 국민의 권리를 수호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검찰사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현재 우리의 사법체제의 상황을 생각할 때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컨대 대법관은 법원이라는 관료적 조직체의 관리자로서가 아니라 법원을 국민의 인권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로 만들어 나가는 지사(志士)이어야 하며, 이를 망각하거나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존립기반을 무너뜨리는 길을 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새 대법관은 지난 경력 동안 사법권의 독립을 수호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신장하는데 노력해온 사람 중에서 임명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관료제적 서열이 얼마나 높은지, 사법시험 합격기수가 누가 높은지, 어느 지역출신인지는 관심사항이 아닙니다.

확고한 민주적 소신이 새 대법관의 가장 우선적 덕목이며, 법률적 식견과 도덕성, 청렴성 또한 요구됩니다. 우리가 민주적 소신을 최우선 순위에 놓는 이유는 현 단계 우리 사회의 과제가 민주화의 제도적 안착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권위주의적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지도부가 확고한 민주적 소신을 갖고 버티고 서있어야 할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각종의 사건에서 사회적 강자 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국가보다는 시민을 사고의 중심에 놓는 대법관을 요구하며, 불구속재판의 원칙을 실현하고 영장실질심사제도와 보석제도의 활성화를 강력히 추진해나갈 대법관을 원합니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현재 언급되고 있는 대법관 후보는 이상의 기준을 비교적 ‘무난히’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법률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실정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신장하려고 노력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이는 상찬(賞讚)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 속에서 기존의 대법원 판례의 논리와 틀을 벗어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형사법과 관련하여 우리 대법원이 명문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억지(抑止)하고 사법의 염결성(廉潔性)을 고양할 수 있는 현실성있는 유일한 방도인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채택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법칙없이는 영장주의 등 형사절차에 대한 각종의 헌법의 요구는 유명무실해지기에, 현재 여러 선진 민주주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존 판례의 구속에서 벗어나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관점에 확고히 서서 ‘입법적 판결’을 통해서라도 이 법칙을 채택할 대법관을 원합니다.

법원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여전히 법원에 대하여 ‘권위’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권위는 방문자를 짓누르는 듯한 거대한 법원건물이나 법정에서의 고압적 자세와 훈계에서 확보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의 고충을 이해하고 함께 하면서 분쟁을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여줄 때 확보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법원권력의 연원이 국민이라는 점을 믿으며 법원 내에 온존해있는 권위주의적 문화를 청산하고 국민의 충실한 법적 안내자와 조정자로서의 법원상(法源像)을 세울 대법관을 원합니다. 요컨대 새 대법관은 국민으로 하여금 법원을 자신의 좋은 상담자와 문제해결자로 느낄 수 있게 하는 능력과 품성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법관 후보는 법원 내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재조와 재야, 실무와 학계를 막론하고 가장 소신과 능력, 경륜, 인품을 겸비한 사람을 찾아야 함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대법관은 법원 내부의 ‘승진’을 통해 획득되는 ‘보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조건에 부합하는 법률가라면 법원 내부건 외부건 구별하지 않고 대법관으로 임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2000. 6. 22. 조국(동국대 법학과 교수)

참여연대 개혁통신 63호에서 요약 발췌

조국 동국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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