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위기 대처 노하우는 ‘윤리적 소비’
이정주 iCOOP생협연합회 회장 bomidami@hanmail.net
4월 현재 밀가루 가격이 작년 말보다 24%나 올랐다. 지난달 정부는 밀가루를 ‘관리품목’으로 지정해 가격 상승 억제에 나섰지만, 한 달도 채 못 되어서 제분업계는 다시 제2차 밀가루 가격 인상계획을 발표했다. 라면, 과자, 빵 같은 밀가루 제품 가격도 다시 줄줄이 오를 전망이다. 밀가루 가격은 우리나라만 오른 것이 아니다. 미국도 작년에 비해 2.5배 정도 올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이미 아프리카 몇몇 국가들과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아이티 등에서는 식료품값 폭등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났으며, 37개 국가가 식량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식당에서 밥의 양을 절반으로 줄였다. 홍콩에서는 벌써부터 쌀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고 베트남은 1인당 배급을 4kg으로 제한했다. 태국은 일부 슈퍼마켓의 1인당 쌀 판매 상한을 정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전문가들은 식량위기가 왔다고 분석한다. 곡물가 상승에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작황부진이라는 단기적 요인과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인구증가와 함께 육류와 곡물 수요증가, 바이오 에너지용 곡물 수요 증가와 같은 장기적 요인이 있다. 밀가루 가격의 고공비행은 대체 에너지 개발을 위한 옥수수 재배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투기성 자본이 곡물 시장으로 유입된 것도 한 원인이다. 카길, ADM, 몬산토 등 초국적 곡물메이저(농식품복합체)의 과점 현상이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곡물가격 상승에는 이밖에도 미국의 경기침체에 따른 달러화 약세, 주택자금 금리 인하, 유가상승에 따른 해상운임 상승, 수출국의 수출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2005년 추운 겨울, 서울 여의도에서는 대규모 농민집회가 있었다.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에 따른 쌀 수입 개방에 대한 항의시위였다.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핸드폰 열심히 팔아서 쌀을 사오면 되지 꼭 우리 쌀을 고집할 필요가 있냐고 했다. ‘농민들에게 베풀 만큼 베풀었다’, ‘수출위주의 우리 경제에서는 농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했다. 우리나라는 시장 개방은 늦췄지만, 2014년까지 쌀 의무수입물량을 8%까지 늘리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만일 우리가 진작 쌀 시장을 개방했다면 지금 어떠했을까? 우리 쌀은 수입쌀과 가격 경쟁이 될 수 없다. 무려 5배 차이가 난다. 우리 쌀이 좋다고 해도 5배 차이가 나는데 기꺼이 먹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 우리나라에서도 사재기나 폭동이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주식인 쌀 만큼은 자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식량 현실은 어떤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사료용 곡물을 포함해 약 28%이다. OECD 29개국 가운데 26위이다. 쌀 자급률이 99%이기 때문에 그 정도이다.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하다. 밥상을 차리면 70%이상은 수입산이라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중국산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식량 수입국이다. 중국도 최근에는 곡물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국제 곡물시장이 만성적 공급부족 구조로 전환된다면 전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문제는 식량위기가 오늘 내일 끝날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동안은 기후 변화와 기상 이변이라는 일시적 현상이 주된 원인이었다면, 오늘의 식량위기는 투기 자본의 흐름과도 관계가 있다. 이들은 세계 곳곳에 식량기지를 만들어 놓고 가격을 조절한다. 울창한 밀림과 논밭을 사들여서 토착민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GMO 옥수수를 대량 재배한다. 카길, ADM 등 몇몇 초국적 곡물회사가 세계 곡물시장의 75%를 독점하고 있다. 카길은 세계 주요국에 1백여 개의 자회사와 1천여 개 공장, 9만7,0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밀, 쌀, 옥수수, 콩, 식용유, 오렌지 농축액, 커피, 육류, 맥도널드 햄버거용 통닭, 통조림 등 거의 모든 종류의 농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다. 국가 간의 경쟁도 중요하지만, 초국적기업, 투기 자본과의 싸움에서 살아남는 것이 앞으로는 난제가 될 것이다.
정부정책에는 안전한 밥상에 대한 고민 없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농정 목표는 ‘돈 버는 농어업, 살맛나는 농어촌’이다. 그렇다면 우리 농정의 목적은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것인가? 농촌을 잘 살게 하는 것인가? 아니다. 농정의 최우선순위는 바로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데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정부는 물론 국민도 잊고 있는 사실이다.
그동안 농정은 주로 생산에 초점을 두었다. 결국 생산량 증가는 이루었으나 소비 문제에 대해서는 미흡했다.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실패했다. 소비 없는 생산은 의미가 없었다. 우리 농산물은 수입농산물과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정부 스스로도 모순된 정책을 폈다.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키운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값싼 수입 농산물로 대체해 왔던 것이다. 농(農과) 식(食)이 분리된 정책은 우리 농산물에 대한 외면을 불렀다. 판로를 잃은 농업은 갈 곳을 잃었다. 소비자도 농업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농민이 생존권을 요구하면 우리 사회에 무임승차하는 이기집단으로 몰아세웠다.
그러면, 국민의 건강권은 어떠한가? 값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와 논란 많은 GMO 옥수수가 곧 수입된다. 수입 조건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로워졌고, 수입업체들에게는 다양한 경로가 생겼다. 대통령 방미 기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격 결정되었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값싸고 맛있는 미국 쇠고기를 먹게 되어 기쁘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혹시나 10년 후 우리 아이들에게 광우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오늘날의 식품 안전 문제는 그 영향이 광범위하고 파급속도가 매우 빠르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경로로 유통되어 불특정다수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가 아니면 그 누구도 건강을 책임져 줄 수 없게 되었다. 식품안전망이 무너진 것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사회적 약자들이다. 아이들, 군인, 빈곤층이다. 값싼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식량자급률이 이토록 낮은데도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국가 전략과제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수입 밀 가격이 계속 오르자 정부는 비로소 우리 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은 농촌의 상황도 참 어렵게 되어 있다. 공급량을 늘리려면 농지와 농민이 필요한데, 이미 농민은 고령화되어 있고, 농지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더 이상 농업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소비자는 정당하게 지불할 준비가 되었나
우리에게 대안은 있는가? 식량자급률과 식품 안전을 높이는 방안은 무엇인가? 식량위기가 오면 국민들은 농업을 살리는데 동참할 수밖에 없다. 농업 문제가 내 밥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위기상황은 어쩌면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먹을거리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 과연 우리들은 먹을거리를 얼마나 존중하는가? 생산자의 땀과 노력, 땅과 물과 공기와 같은 자연의 혜택, 에너지 등에 대해 얼마나 지불하나? 소비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다행히 주식인 쌀이 아직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정부는 식량자급률의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농업을 지원해야 한다. 끊어진 농과 식의 관계를 이으며, 생산에서 가공,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아우르는 식품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식품업체들에 인센티브를 주고 소비 지원책도 내놓아야 한다. 생협, 시민단체와 같은 조직된 소비자의 역할을 키우고 지자체, 관공서, 학교, 병원, 군대 등 안정적인 수요처를 계발해야 한다. 다양한 식품안전교육을 통해 우리 농산물의 가치와 우수성을 알려야 한다. 지자체와 연계된 식품 산업과 농산물 개발을 통해 젊은 층을 흡수하는 산업으로 농업이 다시 발돋움 하도록 해야 한다. 농촌의 다원성을 활용하여 환경적, 문화적 가치를 패키지화한 상품을 개발하여 도시 소비자들이 찾아가는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땅의 자급력 키우는 데 힘써야
정부는 식량자급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 해외농업기지 건설도 현실적인 대안의 하나이다. 일본도 브라질에 도쿄보다 넓은 땅을 사서 사료를 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현지인들에게 발달된 농업 기술과 노하우를 가르친다. 식량문제는 각 나라가 안전한 식량을 생산해낼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비상시에 해외기지에서의 식량조달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해외식량기지의 가능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우리 땅에서 자급력을 키우는 것이 더 시급하고 본질적인 방법이다. 앞으로는 식량자급이야말로 곧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률과 식품안전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안전이 곧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이다. 수입 농산물에 더 이상 가격으로 승부하기 힘들다. 신선도와 영양, 안전성이 관건이다. 초국적 기업들은 소비자의 건강보다는 이윤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결론은 친환경농업이다.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이야말로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나 GMO식품의 수입이 시작되면 소비자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력 추적도, 원산지 표시제도, 식품표시제도 신뢰가 바탕이 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믿을만한 사회 제도와 장치를 가지지 않고 있으며, 소비자가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조차 제공받을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가 30개월 이상 된 소의 고기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가공식품들은 유전자조작식품 표시를 대부분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원할 것이다. 내가 구입하는 상품이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경로로 나에게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아야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식품의 원료부터 안전해야 한다.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 또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동안 친환경농산물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시장도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은 친환경농산물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서 친환경농업 시장은 생산과잉현상이 나타난다. 유통과 가공 과정에서의 혼입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가격보다는 신뢰 회복이 급선무이다. 방법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일관된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중간 혼입을 막을 수 있는 인증제도와 표시 제도를 강화하고, 쇠고기는 일본처럼 광우병 전수 검사는 물론, 체계적인 이력추적제를 도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처음부터 맞춤 시스템 속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이 기획되고 생산될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나쁜 건 사지 말고, 좋은 건 제값 내고
이 모든 것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소비자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 하는 것이다. 단순히 자기 건강을 염려하는 차원이라면 이 문제를 풀어가기 힘들다. 우리 밀 자급률은 0.2%. 우리가 먹는 밀가루는 거의 수입 밀이다. 유기농 밀가루도 대부분 우리 밀보다 싼 수입 밀을 쓴다. 얼마 전까지 3~5배 차이 났던 우리 밀과 수입 밀의 가격차이가 지금은 수입밀 가격이 많이 올라 1.7배까지 줄었다. 이를 가공하면 가격차이가 훨씬 줄어들게 된다. 그동안 0.2%를 지켜온 것이 우리 밀을 지키려는 특별한 사람들의 노력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국민이 ‘제2의 우리 밀 먹기 운동’을 벌여야 할 차례이다. 이것은 나를 넘어 이웃과 지구를 생각할 때 실천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농업을 걱정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식량안보, 식량자급이라고 해서 우리 농업만 보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식량위기의 핵심은 결국 분배 문제이다. 자본과 식량을 소수의 가진 자가 독점하고 골고루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농민들은 힘든 노동착취구조 속에서 굶주리고 있다. 최근 생협에서는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제3세계의 농민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이 사업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 소비에도 얼굴이 있다.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윤리가 있다. 아동착취를 통해 생산된 유기농 카카오와 성인 노동으로 생산된 일반 카카오가 있다고 하자. 당신이라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화학약품을 사용하거나 유전자조작을 한 것이 아닌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 하나가 매일 매일 살면서 어떠한 결정이든 반드시 내리게 된다는 것이며, 그 작은 결정의 차이가 세상을 변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소비자가 모든 것을 움직이는 세상에서 두뇌와 심장 사이의 관계가 끊어진 것은 아닐까요? 대기업이 우리의 음식과 우리 아이의 건강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화가 나겠지요? 정말 화가 나시면 간단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안 사면 됩니다.”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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