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2년 07월 2012-07-06   1621

[살림] 귀농이라는 것

귀농이라는 것

김융희 서툰 농사꾼

여러분을 대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별 볼 장 없는 농사꾼이 무슨 이야깃거리나 할 말이 있을까 싶어 심려가 없지 않습니다. 농업은 이제 구시대의 생업으로 진즉 현대인들의 관심 밖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소외되고 잊혀 가는 우리 농촌 모습을 경험을 통해 진솔하게 쓰고 싶습니다.

요즘 귀농 인구도, 농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농업을 외면하는 세상일지라도, ‘농사를 저버리는 세상은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외면하고 기피하는 가난의 길을 스스로 바라면서 농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니 쉽게 수긍이 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귀농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은 삭막한 환경에서 삶의 방식을 바꿔보려는 대안적 반응 같아서 반갑습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행여 대농의 기업농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는지 걱정도 됩니다. 귀농이라는 것, 농사꾼이 되어 사는 삶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아름다운 환경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전원생활에 대한 기대가 그저 이상향을 꿈꾸며 전원을 즐기겠다는 결심이라면, 생각을 바꾸거나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도시생활에 젖은 물량주의 의식을 접고 근면 소박한 생활로 힘든 고비를 잘 넘기겠다는 의지가 절실합니다. ‘밥 팔아 똥을 산다’는 속담처럼 마음을 비우고, 질적인 삶을 위한 어떤 고난에도 오직 농업을 지키는 생태적 농사꾼이 되겠다는 각오가 남달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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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농가에서 살 때였습니다. 농촌의 옛집이 도시인들에게는 제법 운치가 있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서까래와 들보가 노출된 구조, 창호지문, 재래식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는 생활이 이색적으로 느껴진 모양이지요.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도 기특했고,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피워 밥을 짓는 것도, 굴뚝으로 연기가 솟아 펼쳐진 모습들, 허술하지만 막힘없이 농가에서 찬거리도 자유롭게 조달하며 이색 체험인 듯 즐겁게 식사를 합디다. 그러나 처음에 느낀 재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실망으로 바뀝니다. 재래식 화장실은 불결하고 불안해서 일을 볼 수가 없습니다. 헐렁한 문짝의 방 구조에서는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없고, 파리, 모기, 벌레를 보며 비명을 지르기 일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모두들 도망을 쳤습니다. 지금도 도시 생활, 특히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 농촌 생활은 불편투성이입니다. 그만큼 도시인들에게 전원생활은 현실로 받아들여지기가 어렵습니다. 마음과 현실의 차이는 큽니다.

내가 아는 유복했던 어느 가정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새집을 짓고 농토를 마련해 제법 알뜰한 귀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삼사 년을 못 넘겨 시골 생활을 접고 지금은 서울 근교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만을 의지하며 이웃을 도외시하다가 식구들과 주민들 사이의 갈등으로 귀농에 실패하였습니다.

살림

귀농으로 말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가정도 많습니다. 새로 지어진 예쁘고 아담한 집 앞에서 가꾼 텃밭 채소들이 너무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집주인에게 인사를 청하고 몇 마디를 나눴습니다. 강원도 둔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신 전직 교장 선생님으로 말년을 귀농으로 행복하게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곳은 교직에 계시는 동안 퇴직 후 귀농을 위해 틈틈이 물색하여 마련한 장소라고 했습니다. 옛 화전민 터였다는 둔내 휴게소에서 30분 거리에 대여섯 가구가 살고 있는, 사방이 분지처럼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서울 본토박이로 농사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이곳에 와서 이웃들과 지내며 보고 배운 덕에 지금처럼 익숙한 농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말이면 자식들과 지인들이 찾아오고, 함께 지내고 갈 때엔 싱싱한 채소 보따리를 챙겨주는 재미가 삶을 즐겁게 한다고 자랑입니다. 이웃들과 수시로 오가며 술도 마시고 농사일도 나누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변화처럼 농촌의 인심도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순박하고 정이 많던 옛 농촌 사람들이 아닙니다. 삶의 갈등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연유하며, 시골 이웃들은 매우 단순하여 감정 노출이 쉽습니다. 도시인들은 그 감정을 교양이 지배하고 감출 수도 있지만, 시골 인심의 아주 단순한 생각은 본능적 이해득실에도 민감해, 이내 본색을 드러냅니다. 도시인들은 개성을 지키며 이웃과 떨어져 살아도 별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 생활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만 합니다.

농사란 것이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품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먹을거리를 가꾸는 일입니다. 생명의 중요함만큼 농업은 신성하며 농사꾼은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농사일과 농사꾼의 꼴이 어떻습니까? 수확량을 늘리고 작물의 질을 높인다며 함부로 맹독성 농약과 비료 살포를 불사하고, 마음대로 유전자까지 조작하는 거침없는 행위가 농업의 현실입니다. 애지중지하여 기른 작물을 가격 때문에 마구 갈아엎고, 쌀값을 올려 달라며 길거리에 쌀을 함부로 버리는 사랑이 없는 농사꾼의 작태를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귀농이라는 ‘농사꾼이 되는 길’도 기분에 의한 일시적 충동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말로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김융희
화랑을 경영하다가, 지금은 연천에서 조그만 텃밭에 자급용 채소를 가꾸며 지내는 서툰 농사꾼. 수유너
머 회원으로 가끔 공부방에도 들락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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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은 네 명의 필자가 번갈아 연재합니다. 김융희 님의 글은 11월호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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