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6월 2000-06-01   850

NGO에 생태적 희망은 있는가?

웬만한 신문에서 NGO란은 이제 필수며 NGO학과가 대학원에 신설되기도 했다. 가히 ‘NGO신드롬‘이라 칭할 만큼 시민단체들은 10여 년 웅크림의 세월을 거쳐 역사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 선두그룹(?)에 녹색연합도 있다. 녹색연합은 8개 부서, 11개 지역조직, 3개 산하단체, 40명에 이르는 간사들이 분주히 활동하고 있는 메이저급 환경단체다. 총선시민연대 주요단체로 활약하며 사회적 발언과 그 영향력이 급격히 상승한 대표적 시민단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도대체 4개월에 불과한 신입 간사가 땀과 열정으로 살아온 시민단체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가볍고 편하게 생각을 늘어놓을 수 있으니 기분 좋다.

지난 월요일 전체회의에서 각자의 재정관을 드러내는 토론이 처음 있었다. 참 좋았다. 그런데 많은 활동가들이, 특히 간부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시간을 소모적으로 여기는 듯하다. 실무가 바쁘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세계관을 정립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거나 대폭 줄여야 하는 것은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왜일까? 혹시 그 근저에는 ‘조직이 개인에 우선한다’는 사고가 뿌리깊게 남아있는 탓은 아닐까?

일반적으로 간부진들은 한 조직에서 최고의 결의수준과 경륜, 그리고 집행력을 통해 그 조직과 일체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서 그와는 다른 흐름·경향이 비조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 흐름들이 자유롭게 제기되는 자리가 조직(?)의 입장에선 그렇게 탐탁치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 이쯤되면 ‘실무자’ 개념이 보다 강조된다.

실무란 단체가 유지되고 굴러가기 위해선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기본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실무에 치인다’는 말이 있다. 실무에 치이면 안되나? 바쁘게 일하고 좋지…. 그런데 왜 일하는데? 일이 내 것이 되지 못한 채,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조성 대신 그저 관습과 관성에 젖어 뻔한 과정을 되풀이한다. 어느새 생명과 자연을 향해 가슴을 열고 느끼는 것 대신에 ‘정신없는 분주함’이 활동가의 미덕이 되어 있지만 그 과정의 끝에는 허무함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겨를없이 터지는 환경사안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지만 그렇다고 명쾌하게 정리되는 것도 별로 없다. 그냥 이렇게 서서히 지쳐가는 걸까. 다른 단체 간사들은 어떨까?

또 집회를 열거나, 운동을 조직할 때 방송·신문매체를 빼면 김 팍 빠지게 스스로를 자꾸 소외시켜 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매체의 영향력은 인정하지만 소비문화, 반생태적 문화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텔레비전과 신문의 프리즘으로 비쳐지는 것에 시민운동이 지나친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의 생김새는 어떻게 변모해 나갈까? 내 생각에 저쪽 시스템은 소재 찾을 때나 구색 맞출 때 우리가 필요할진 몰라도 생명 생태운동의 정수를 시스템의 중심 영역에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사실 반대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길을 묵묵히 간다면 언론은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 우리를 편집할 것이다. 사실 과거의 녹색연합은 알아주는 이 없어도 그렇게 걸어오지 않았던가.

단체간 이해관계를 둘러싼 지나친 경쟁, 대안조직이 되지 못하고 동원위주의 대응조직, 투쟁조직을 못 벗어난 데서 오는 취약한 회원참여 활동, 백화점 나열식 운동, 생태적 희망을 확신하고 있지 못하는 활동가들의 모습 등 맘에 걸리는 부분은 더 있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 나는 생태적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 조직 운영원리가 얼마나 자연법칙에 근접해 있는가를 따져 모든 시민사회단체의 ‘생태도’를 측정해 보면 어떨까? 이를 21세기 시민운동의 새로운 좌표로 삼는다면?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녹색연합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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