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새로운 사회가 필요하다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1월의 책
“1994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는 세대입니다. (중략) 2007년 이후에 태어난 지금은 어린이들은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모릅니다. 우리를 둘러싼 사물의 질서를 태양이나 달이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히 유지되고 반복되어야 할 것으로 여기며, 낯설게 바라볼 단 한 번의 동기조차 갖지 못했다면, 우리들의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건지 생애 전체를 되짚어 따져볼 일입니다.”
-『검색되지 않을 자유』중에서

디지털 시대의 소리 없는 아우성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나이에 따라 이 시대를 받아들이는 정도와 이 시대에 대한 태도가 다를 텐데, 1981년에 태어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즈음 다음DAUM에서 이메일 주소를 처음 만들었고, 대학에 와서 거의 모든 과제를 손 글씨가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했지만 이메일로 제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수강신청과 학점 확인을 하고 조별 과제 소통과 동아리 모임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졌다. 20대 초중반을 싸이월드와 함께 보냈으며, 그때 만난 인연과 그때 행한 즐겁고도 부끄러운 추억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다. 일을 시작하면서 메신저를 사용했고, 어느새 전화보다 이메일이 정확하고 빠른,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는 가장 좋은 소통 수단이라 믿는다.
누구나 시대의 변화를 맞는다. 개인 수준에서 기억을 더듬는다면 특별히 아쉬울 것도, 애써 외면할 이유도 없겠다. 그런데 시선을 넓혀 세대로, 계층으로, 사회, 자본, 국가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아마 수많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시대의 깃발을 흔드는 디지털 바람이 어디로부터 얼마나 세게 불어오는지,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깃발은 어디에서 어디로 나부끼며 우리의 시선을 이끌고 새로운 시대를 전망하는지, 먼발치에서나마 살펴볼 때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
대체로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을 디지털 세대라고 부른다. 넷세대, 디지털 네이티브, 엄지세대 등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고,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 그리고 이들이 마주한 시대에 대한 앞선 세대의 평가는 (늘 그랬듯) 양쪽으로 갈린다. 새로운 시대를 온 몸으로 체험한 이들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감각으로 전과 다른 세상을 열어갈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과 앞선 세대가 더 앞선 세대로부터 이어받은 전통과 문화의 기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이런 평가에 대한 시선도 둘이다. 문화 변동기에 늘 마주하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반응과 이번 변화는 혁명에 가까워 전에 없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가장 멍청한 세대』는 긍정적 전망보다 우려를 담은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미디어와 전자 기기에 지적 능력을 위탁한 요즘 세대가 지식, 독서, 학습에서 큰 위기를 맞이했다는 분석이다. 훨씬 많은 교육의 기회와 훨씬 많은 지식 습득의 방법을 갖췄지만, 지적인 습관은 도리어 사라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공유하는 또래 세대의 자기중심적 콘텐츠에만 집착하는 이들을 ‘가장 멍청한 세대’라 지칭하며,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온 문화적, 시민적 유산의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비판한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프랑스의 노老 철학자 미셸 셰르는 『엄지 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에서 인터넷을 자신의 뇌와 연결된 뇌로 활용하는 새로운 세대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들이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기 위해서, 앞선 세대 역시 전과 다른 시선과 태도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
앞선 문제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시야를 넓혀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구조와 변동에 대해 살펴보면 세대적 특성을 넘어선 시대적 과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게 앞선 고민에 대한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검색되지 않을 자유』는 최근 각광받는 빅데이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빅데이터가 강조하는 ‘예측 가능한 인간’이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기획이며, 경제동물의 다음 버전으로 인간을 품종개량하는 일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한다.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인간의 행동반경은 비트화된 돈의 흐름을 넘기 어렵고, 행동 능력의 범위 또한 데이터베이스화된 경우의 수에 갇혀” 삶이 아닌 삶의 사본寫本으로 존재하는, 다시 말해 인간의 정의가 바뀌는 격변기라는 분석이다. 빅데이터의 주장과는 반대로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의 바깥, 마케팅의 바깥, 신자유주의의 바깥에 놓인 ‘알지 못하는 무엇’의 잠재성을 위한 윤리를” 구하자고 외치며 정보자본주의를 넘어설 방향을 제안한다.
앞선 책이 한국의 오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었다면 『디지털 디스커넥트』는 미국의 사례로 비슷한 맥락을 짚는다. 자본주의가 인터넷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저자는 “혁명적 기술의 혜택을 모든 인민이 공유할 수 있고, 환경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게 하며, 민주주의의 재활성화나 확장에 연결시킬 수 있게”하려면 갈등이 고조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가운데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자본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살리자는 말이다. 자본의 욕망과 국가권력의 의지가 일치하여 인터넷을 장악했고, 인터넷은 이제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소통의 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민주적인 여론과 진보적인 정치의 가능성이 폐쇄된 지금, 디지털 문명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며 인터넷과 미디어를 본래의 목적과 기능, 즉 사회의 공공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시급한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앞서 말한 새로운 세대를 위한 진정한 고민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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