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8년 05월 2008-04-02   538

칼럼_비정규 노동자의 절규와 외침

  

비정규 노동자의 절규와 외침

박영선「참여사회」 편집위원장 baram@pspd.org

 

바야흐로 봄입니다. 어쩜 이렇게 말하는 순간 봄은 저 멀리 가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난화 때문인지 수년 동안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에 매달린 연노란 꽃들 소식에 봄이 왔다고 수선을 떨자마자 여름이 왔다는 웅성거림에 시달리곤 했으니까요. 올해는 봄의 생명줄이 하루라도 연장되어 저처럼 게으른 사람도 도심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진달래, 개나리, 목련들과 제대로 눈을 맞추어보고, 출사 나간 야생화 동호회원들도 맘껏 얼레지며, 현호색, 노루귀, 꿩의바람꽃들을 렌즈에 담아 왔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김 선생. 날은 좋은데 왜 이리 시름은 늘어만 가는 걸까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키웠던 기대조차 거두어야 할 거 같습니다. 갑남을녀들의 소박한 바람은 여전히 소망일뿐이고, 오히려 새로운 걱정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시민운동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상황이 더욱 난감하기만 합니다. 시민들의 케케묵은 걱정거리들이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실종되어 있는데 새로운 난제들이 눈덩이처럼 쌓이기만 하니까요. 좀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누구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서 애물이 되고 있는 사회적 의제들이 산재한데, 이명박 정부 출범 한 달이 남긴 새로운 과제들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라 답답한 심정뿐입니다.

 

아무래도 제일 홀대받는 의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일 거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출발해 정규직이 됐다가 CEO(최고경영자)가 됐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본능적으로 ‘노동자 프렌들리’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책은 ‘프렌들리’는커녕 적대적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토로입니다. 급기야는 지난 3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여 비정규 노동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지요. 대통령은 코스콤 노동자들이 ‘정치적·이념적 목적을 갖고 노동운동을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철거되는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왜 직장에서 쫓겨나고 길거리에서도 쫓겨나며 매를 맞아야 하는지, 근본적으로는 왜 한 직장에서 일하는데 차별받아야 하는지 말입니다.

언젠가 김 선생과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 즐비한 농성장을 지나다 노동자 투쟁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지요. 아마 어떤 행인이 ‘저 안에서 밤새 술 처먹고 자빠져 자고 있을’거란 얘기를 내뱉는 걸 보며 언짢은 마음 끝에 시작한 대화였던 거 같습니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저는 머리띠 두르고 천막이나 치는 구태의연한 운동 방식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으며, 난항이 계속 된다 싶으면 한강 철교에 매달리는 극단적인 투쟁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겠지요.

 

그런데, 김 선생. 이랜드를 비롯한 기륭전자, 이젠텍 등 수백 일, 수천 일을 넘기며 장기투쟁을 하는 노동자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제가 그들의 투쟁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얘기가 뭘 제대로 알고 떠든 것인지 잘 모르겠습디다. 평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규에 공감한다고 했었는데, 진실로 공감했었는지조차 헷갈렸고요. 하지만 그들이 저를 포함한 이른바 시민들이 싫어하는 투쟁을 원해서 하는 게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무관심하기만 한 사회의 냉대를 스스로 깨기 위해 그들은 일부러 고공 크레인에 매달리거나 철교에 몸을 묶는 결단을 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그들의 선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강요당한 셈입니다. 전태일 열사부터 많은 노동자들이 자살이라는 형식을 선택했지만, 그들의 죽음이 모두 사회적 타살이었던 것처럼요.

 

저의 이런 얘기도 시대에 뒤떨어진 타령으로 치부되겠지요. 요즘 같은 시대에 어느 누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규에 아랑곳하겠습니까. 앞에 쓴 것처럼 사회의 애물덩어리에 불과하겠지요. 그런데, 김 선생.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가 850만 명에 이른다는데, 애물덩어리치곤 규모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아무리 새롭게 떠오르는 사회적 이슈가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해도, 이대로 두면 큰일 나지 않을까요?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만 하고 있네요. 어떻게 하면 상춘 대열에 동참할까 기를 쓰다 우연히 보게 된 코스콤 노동자들의 농성 철거 영상을 보고 욱하는 마음에 한마디 한다는 게, 김 선생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말았네요. 다음 편지에서는 상쾌한 소식을 전하겠다고 약속드릴게요.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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