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8년 05월 2008-04-04   1708

세계는 지금_세계화의 일그러진 얼굴, 한국기업의 국제인권침해

세계화의 일그러진 얼굴,
한국기업의 국제인권침해

나현필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활동가 redleon@naver.com

 

다국적기업의 문제는 세계화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슈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특히, 다국적기업의 힘은 갈수록 커지는 데 반해 이를 통제하거나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는데 있다.

이 문제에 있어, 한국기업도 마찬가지다. 1968년부터 시작된 한국기업의 해외투자는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오다가 소위 ‘세계화’바람이 불면서 업종과 규모에 상관없이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만큼 인권침해도 해외투자 한국기업의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혀버렸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기업의 고유한 특성도 있고,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다국적기업 일반의 문제도 있다.

해외기업 유치경쟁이 노동악화 부채질

최근 세계적인 식품용기 생산업체 테트라팩은 한국의 여주공장을 폐쇄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한국 테트라팩 노조는 공장 폐쇄를 저지하기 위해 석 달 가까운 유럽원정과 한 달이 넘는 단식투쟁을 벌였지만 회사 측은 여전히 공장폐쇄를 강행하고 있다. 테트라팩은 유럽에서 존경받는 10대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음에도 한국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공장폐쇄결정을 내린 것이다. 테트라팩 사례는 존경받는 기업일지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공장을 폐쇄하거나 대규모 정리해고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를 빨갱이 취급하는데 익숙한 한국기업은 당연히 이러한 다국적기업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중남미에 한국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낮은 인건비를 선호하는 중소기업일수록 요즘 경쟁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경제자유구역’에 진출하고 있다. 투자유치를 꾀하는 동남아시아나 중남미의 중앙 및 지역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 외국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명목뿐인 노동인권보장을 그나마도 유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좀 더 값싼 노동력과 기업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찾아 움직이는 다국적기업들로 인해 노동자들은 더 나쁜 노동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정부로부터도 강요당하고 있다.

세계에 악명 높은 한국기업 노무관리

한국기업의 특유한 노무관리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둘째로 하더라도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한 한국인’문제는 여러 차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필리핀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 남성 관리자들의 성희롱은 일상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성관계 요구나 성폭력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더욱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한국기업의 태도이다. 필리핀 가비테 경제자유구역에 진출한 청원패션과 필스전(Phils Jeon)이란 기업에서는 작년부터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는데 두 노조는 올해 6월과 8월에 각각 무장괴한에 의한 살해위협과 피랍까지 경험하였다.

노조는 이러한 폭력에 한국기업이 개입되어 있다고 믿고 있지만 회사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를 항의하기 위해 지난 9월에 두 노조의 대표가 한국을 방문해서 이중, 필스전의 본사인 (주)일경(구 태창)과 면담을 한 적이 있었다. 필스전 노조의 메를리 씨는 공장에서 여러 차례 만났던 한국인 경영자가 자신을 모르는 척 하는 것에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고(그녀는 회사가 주는 모범노동자상까지 받았다), 면담에 동석했던 한국의 노동 및 시민단체 대표들은 경영진이 필리핀 여성노동자들을 가리키며 ‘얘네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격분하였다. 목숨의 위협을 넘어 한국까지 찾아온 여성노동자들을 면전에서 아무렇지 않게 비하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기업의 얼굴이었다.

인권침해, 환경파괴에 너그러운 국내 시각도 문제

한국기업의 해외투자가 늘면서, 자연히 한국기업들은 맥도널드로 상징되는 부정적인 다국적기업의 이미지를 빠르게 획득하고 있다. 일례로, 대우인터내셔널은 버마 군사독재정권에 1,600억 원의 돈을 받고 무기를 수출했다가 큰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포스코는 인도에서 발전소를 지으려다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고, 한국타이어는 헝가리에서 군대식 노무관리로 현지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중소기업들이 벌이는 인권침해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

문제는 이러한 한국기업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와 재계, 심지어 시민사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특히, 한국정부와 기업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고 있는 이른바 ‘자원확보’ 사업들은 대규모 인권침해와 환경파괴를 부를 수 있음에도 별다른 논의 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나마 한국 언론 중에서 양심적이라 평가받는 「한겨레」마저도 ‘태극기를 단 유전이 늘어난다’는 기사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보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열강이 하면 자원침탈이고 우리가 하면 자원확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가 벌이는 버마가스개발부터 시작해서 한국기업과 정부가 빚어낼 수 있는 비극은 곳곳에 잠재되어 있다.

사태가 이처럼 심각함에도 지금 당장 발생하고 있는 해외투자 한국기업의 인권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사실 별로 없다. 언론에 보도되거나 캠페인을 벌이더라도 ‘한국인이라서 창피하다’나 ‘외국까지 나가서 나라 망신시킨다’는 정도로 귀결되는 게 대부분이다. 이래서는 사태가 해결되기 어렵다. 문제는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의 비행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근본적으로 노동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전근대적 시각이다.

새는 바가지 꿰매는 해외한국기업 감시활동에 관심을

60년 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제 23조 4항에는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유엔사무총장이 배출되었다고 자랑하는 이 나라의 가장 큰 재벌기업에서 60년 전의 이 약속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주류언론과 주요 대선후보들은 매일같이 선진국이 되자고 선동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한국 기업들이 불법무기 수출이나 대규모 인권침해를 저지르고 다녀서는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정말 선진국이 되려면 삼성에 노조부터 생겨야 한다. 온 나라에 뇌물을 뿌려 해외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도 부끄럽지만, 노조가 없어서 세계 500대 기업이 요사이 경쟁적으로 가입하고 있다는 글로벌컴팩(Global Compact·#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UN 주도의 국제 협약)에 삼성이 가입조차 못하는 것은 정말 망신스럽다. 더욱이, 우리 한국인 유엔사무총장께서 지난 6월 인권존중을 다국적기업이 지켜야 할 기본원칙-노조 결성은 기본인권이다-으로 내세운 글로벌컴팩 정상회의를 개최한 마당에 삼성의 무노조정책은 참으로 민망하다. 삼성부터 노조가 생겨야, 그리고 기업들이 노동자를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대우해야 한국기업이 해외에 나가서도 지금과 같은 인권침해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은 이런 점에서 참 적절한 비유이다. 국내에서부터 노동인권이 존중될 때만이 해외 한국기업에서도 인권이 개선될 것이다.

한국사회는 유달리 남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쳐질까 민감한 것 같다. 세계 몇 대 국가, 세계 몇 등, 이런 것에 집착하는 한국사회와 이익에 눈멀어 기본적인 인권조차 무시하는 한국기업의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 <국제민주연대>가 하고 있는 해외한국기업 감시활동이 역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존경받는 기업이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를 제시하는 활동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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