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5월 2000-05-01   957

남북정상회담과 통일운동의 과제

민간채널도 열려야 한다

‘정상회담’, ‘최고위급 회담’. 남과 북이 각각 남북 최고 책임자 회담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4·13총선을 앞두고 4월 10일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를 동시에 발표하였다. 그동안 많은 선거에서 이른바 북풍이 발생해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 발표도 남한의 총선용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선거를 앞두고 발생했던 북풍은 남한의 집권세력이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공안사건을 만들어내거나, 96년 4·13 총선 직전에 북한이 판문점 무력 시위를 한 것과 같이 북한의 정치적 시위가 남한의 선거와 맞물리면서 발생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즉 북풍의 주체가 누구냐는 측면에서 볼 때 남북의 일방적인 행위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 발표는 발표시기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합의한 것이고, 일회적인 자극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행위이며, 남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과거의 북풍과 동일하게 볼 수 없는 점이 존재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남북 정상회담을 피력해왔다. 물론 정상회담은 전두환 대통령부터 역대 집권자들이 희망해왔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정상회담에 대한 희망을 밝혀왔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1985년 신년사에서 처음으로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김일성 주석이 1985년 정상회담을 시사한 것은 북한이 1984년에 남북한과 미국의 3자회담을 제안한 이후라는 데 주목할 만하다.

김일성 주석은 이후 1988년 9·9절 행사 전야제에서 ‘북과 남의 최고위급 회담에서는 누구의 구속이나 보증도 받지 않는 불가침 선언을 채택하고 북과 남의 두 제도를 그대로 두는 조건에서 통일국가의 연방정부를 세우거나 그 실현을 위한 평화통일위원회 같은 것은 창설하는 것을 협의하고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정상회담의 기능에 대해 밝힌 바 있다. 특히 지난 90년 10월 제2차 남북 고위급회담 직후 김일성 주석이 남한의 강영훈 총리에게 고위급회담이 잘 진행되면 노태우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였고 이 장면이 텔레비전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몇년동안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해온 북한 핵문제에 대한 공방은 1994년이 되면서 급기야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1994년 6월 18일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전달한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 제안 소식은 한반도에 조성된 긴장을 순식간에 제거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정상회담을 연기한다고 남측에 통보하였고, 1996년에 김정일 총비서가 밝힌 민족대단결 5대방침에서도 남한과의 대화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원론적으로는 정상회담의 역할을 인정해왔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는 아직까지 합의된 바 없다. 6월 10일 남북의 발표문에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에 기초해서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나타나 있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는 포괄적으로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중심으로 해서 다루어질 것이다.

정상회담은 민간 통일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상회담은 통일로 가는 당국자들의 합의지만 통일은 당국자의 합의 뿐만 아니라 민족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다른 나라의 통일 사례 가운데 베트남 통일은 무력통일, 독일 통일은 급격한 흡수통일이라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예멘의 경우 합의통일이라는 점 때문에 베트남과 독일과는 달리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예멘 통일은 민간의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당국자만의 합의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남북 예멘의 정치세력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자 통일예멘은 내전상태에 빠져들었다. 예멘 통일이 주는 교훈은 민간의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통일이 합의에 의한 평화적인 통일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북 당국의 정상회담은 50년이 넘게 계속된 남북의 대립과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사적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민간의 거족적인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평화적인 통일과정을 맞이하기 힘들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과 함께 민간이 통일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민간이 통일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갖는 의미는 당국자 사이의 합의를 거스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통일의 주체는 전체 민족이기 때문에 온 겨레가 통일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이다.

정상회담은 새로운 통일환경에 창조적으로 대응해야한다는 과제를 민간통일운동에게 제시하고 있다.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원칙을 실천하기 위한 당국자회담이 계속 추진될 것이다. 정상회담 국면에서 민간통일운동의 과제와 목표로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통일과정에 거족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는 정상회담 국면에서 거족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런 장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정상회담 합의로 그 의미가 되살아난 7·4 남북공동성명 채택일과 8·15 광복절, 남북합의서 채택 기념일과 같은 계기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한국 사회 내부에서 통일운동의 연대와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통일운동은 다양한 정치적 견해로 인한 갈등 때문에 ‘통일운동도 통일 못하고 어떻게 통일을 하느냐’는 냉소적인 질문에 시달려왔다. 통일운동의 갈등은 남북의 갈등에서 연유한 바가 크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은 통일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좋은 조건을 만들고 있다. 통일운동의 다양한 접근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통일운동의 연대와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통일을 긴 과정으로 바라보고, 평화적인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민족 내적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관용과 갈등해소’에 대한 연습과 훈련은 평화를 정착시키면서 통일과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관용은 차이를 인정하면서 상호 존중하고 공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서 갈등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넷째,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민족내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문제이다. 정상회담은 통일문제를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지만 필연적으로 국제적인 성격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강대국이나 외국자본의 통일과정에 대한 개입이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문제를 동아시아 평화의 정착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고, 아시아 평화운동 세력과의 연대를 활발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는 한반도 통일의 평화적인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고, 동시에 아시아의 대안안보체제를 형성하는데 한국의 민간단체가 적극 참여하게 되는 의미를 지닌다.

다섯째, 평화협정 체결, 군축,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 남북 기본합의서의 실천을 요구하고 감시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강고하게 구축된 국내외적인 냉전질서의 변화를 가져와서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며, 당국의 합의가 후퇴하지 않게 민간차원에서 지켜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정상회담을 위한 정상회담’, ‘사진찍기 위한 정상회담’이 되지 않아야 한다.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일과정을 시작하기 위한 조치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그러나 정상회담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다. 남쪽에서는 흡수통일의 의사가 없고 북은 적화통일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남과 북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것을 약속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면, 후세의 사가들은 2000년 정상회담이 통일 과정의 첫발을 내딛는 의미를 지녔다고 평가할 것이다.

김창수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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