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정치
이양수 한양대 철학과 강사
표절은 부정직dishonest의 한 형태다. ‘적절한 허가나 신용 없이 다른 사람의 지적 재산을 사용’하는 것, ‘도둑질의 한 형태’이다. 같은 표절도 질에 따라 다르다. 배우다보면 얼마든지 우발적인 실수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가 고의적이고 악의적이라면 다르다. 진짜 문제는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거짓말, 그 메커니즘이다. 부정직의 처리 방식도 다르다. 우발적인 실수라면 대부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때문에 개선의 여지, 용서의 빌미를 남긴다. 하지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사회에서는 이런 심리적 장치는 아예 무용지물이다.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온갖 변명만 넘친다. 마치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식으로.
일반인에겐 이 모든 게 어이없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표절은 낯부끄럽고 창피한 행동, 자기 영혼을 파는 행동이다. 그러나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문대성 표절 사태를 보면 상식은 작동하는 것 같지 않다. 마땅히 책임져야 할 당사자나 당국은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너무도 무책임한 행동들이 옳은 일인 양 설레발이다. 너무도 당당한 당사자, ‘운동선수가 이 정도 하면 되지 않느냐’ 식의 변명, ‘다른 사람도 다 그런다’ 식의 물귀신 전략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어이가 없고, 파렴치하게 느껴질 뿐이다. 더더욱 매사 공정해야 할 당국의 반응을 보면 분노가 치솟는다. 도대체 학위논문 심사자들은 무엇을 했던 것인가. 표절 여부도 확인하지 못하는 전공자라면 무능력한 게 아닌가. 거기에도 상식은 없다. 알량한 침묵만 있을 뿐이다.논문 심사료는 꼬박 챙기면서도 정작 마땅히 해야 할 자신의 일은 하지 않았다.
학위논문, 왜 쓰는가?
먼저 묻자. 학위논문을 왜 쓰는가? 시쳇말로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 하지만 그 이전에 잊지 말아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묵묵히 자신의 연구를 위해 보냈던 시간들을 생각해야 한다. 학위논문은 자신의 얼굴이다. 온전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었던가.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 이를 통해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다. 논문 심사는 일종의 공증 작업이다. 이 안에는 타인과의 약속, 자신의 정직한 서약이 들어있다. 배움은 이 안에서만 가능하다.
권력욕이 제도를 압도하고
이번에도 우리의 제도적 제어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표절 시비가 불거졌을 때 공당公黨은 상식적이고 건전한 시선을 외면했다. 책임 미루기에 급급했다. 눈앞에 있는 도둑을 잡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는가? 표절로 판명되어도 탈당만 하면 그뿐인가? 당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왜 이 문제를 보지 못하는가? 사실 표절 시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 때마다 늘 솜방망이 같은 처벌뿐이었다. 부정직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는 늘 말장난에 불과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그 때마다 한갓 소동으로 끝날까? 그 밑바닥에는 우리 욕망의 뿌리인 권력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위 자체가 더 큰 권력을 얻는 수단이 될 때, 명함판 권위를 높이는 수단이 될 때, 모든 것은 권력 메커니즘의 일부가 된다. 권력을 등에 업으면 파렴치는 당당함으로 탈바꿈한다. 자기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윗분의 시선만을 살핀다. 같은 배를 탔다는 생각만 한다.
욕망이 앞서면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자기 것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타인의 고통이나 사회 전체의 공공선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탄탄대로 같은 자기 미래만 보이고, 다른 모든 것은 걷어내야 할 걸림돌일 뿐이다. 권력은 마력이다. 이 걸림돌을 쉽게 치우는 수단이다. 그래서 권력이 더 많은 악행을 낳는다.
찾아라, 책임 정치!
우리의 정치는 ‘표절’에 자유롭지 못하다. 권력이 권력을 낳는 정치를 베끼고 있다. 새삼 묻는다. 정치란 뭔가? 자기 소신, 타인에게 인정받은 소신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신성한 한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공교롭게도 정치는 학위논문과 흡사하다. 타인 앞에서 자신을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모르면 이미 건전한 관계는 사라진다. 갑자기 진실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건 허영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습관적인 행동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라고 했다.
우리의 정치는 권력의 메커니즘만을 표절하고 있다. 아메바의 세포분열처럼 우리 정치판은 권력이 권력을 낳는다. 정치 신인 문대성의 행동을 보라.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가. 그에게서 신인으로서의 모습보다는 노련한 권력자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잘못 봤을까. 그는 구舊 정치판을 그대로 베끼고 있을 뿐이다. 독특한 자신을 드러내 인정받기보다 권력만을 꿈꾸고 권력자의 행동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표절의 정치이다. 정작 있어야 할 자기 진정성은 없다. 마치 드라마 정치극을 보듯 권력의 암투만 있다. 소신보다 윗분의 눈치를 살피고, 더 큰 권력을 꿈꾼다.
권력은 정치의 한 면일 뿐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라.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들도 엄연한 정치적 주체이다. 정치의 묘미는 권력을 잡는 데만 있지 않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의 어울림, 진정성 있는 사람들의 조화에 있다. 우리 모두의 소망을 한마음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정치의 참 모습이다. 자기 진실이 권력에 종속되면, 욕망과 권력의 노예, 권력의 메커니즘만 남는다. 책임의 정치는 실종된다. 우리가 두려워할 건 이런 메커니즘이다. 이제 표절의 정치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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