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2년 04월 2012-04-02   5908

나라살림 흥망사-영국 국회의원들은 백수였다?

영국 국회의원들은 백수였다?

 

 

정창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민주주의’, ‘의회’, ‘젠틀맨’ 하면 영국을 생각한다. 원래 영국에서의 젠틀맨은 하급 귀족인 ‘젠트리’를 칭하는 것이었다. 1911년까지만 해도 영국의 국회의원은 대부분 귀족이나 젠트리가 무보수로 봉사하는 직위였다. 그리스 로마의 정치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들이나 아테네의 지도자들도 무보수로 일하면서 봉사했다.

  보수 없이 일하는 젠트리 출신의 국회의원은 언뜻 청렴하고 사심 없는 정치가처럼 보인다. 돈도 이미 많이 가지고 있으니 욕심도 별로 안 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선망하기도 한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 정치를 하면 부패해서 안 된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도 부자 정치인을 선호하는 대중적인 정서가 있는 것을 보면 그런 ‘편견’은 뿌리가 깊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의회

영국 의회에서는 여야가 마주 앉아 의사를 진행하는데 양측 옆에 그어진 붉은 선을 연설 도중 넘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젠틀맨’은 예의 바르고 교양있는 신사?

 

하지만 노동하지 않고 여유가 있어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신사일까? 역사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국 의회의 젠틀맨은 역사에서 말하는 ‘젠틀맨’의 이미지, ‘예의바르고 교양 있는 신사’와는 거리가 멀다.

  당시 영국에서 귀족이란 1만 에이커(40㎢)인 1200만 평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거대 지주를 말하고 젠트리는 3천 에이커인 4백만 평 이상의 토지를 가진 지주를 말한다. 여의도 면적이 둔치까지 136만 평이니 엄청난 땅부자들인 것이다. 이 젠트리들은 산업 자본가들이 아닌 전통적인 토지 귀족들이다.

 
  이때 산업 자본가들은 중류층으로 분류되었다. 이들은 가지고 있는 돈도 적지만 특유의 상류층 문화를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상류층 문화란 특별한 직업 없이 여가를 즐기는 것이 주업인 고급 백수들의 문화다. 사냥하고 도박하고 교양을 쌓다가 짬을 내어 정치를 하는 것이다. 문화도 권력의 역할을 한 셈이다.

  이것이 모범적인 영국 문화로 존경을 받아 중류층들도 흉내를 냈는데, 이것이 흔히 말하는 ‘젠틀맨십’이다. 현재도 계급 정당인 노동당의 지도자들마저도 은퇴 후에는 귀족 작위를 받고 상원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이는 이렇게 뿌리 깊은 사회적인 의식 구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국회의원 유급화는 민주주의 발전의 산물

젠트리의 뿌리는 깊고 강했다. 이들은 전 인구의 0.5%에 지나지 않지만 전체 토지의 55%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의 산업 자본가들은 높은 지대로 곤란을 겪었다. 그래서 땅이 부족해서 영국의 식민지 개척과 대량 이민이 발생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교양 있는 젠트리들은 교양 없는 하층 계급에게 절대로 기득권을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원을 차지한 귀족들은 영지의 대저택에 하인들을 거느리며 살다가 런던에 모여 사교 활동을 했다. 정치는 사교 활동의 산물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 국회의원의 무급 제도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무급 제도에서는 부유한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기득권자들을 위한 국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11년 영국에서 국회의원에게 봉급이 지급된 것은 민주주의의 변질이 아닌 발전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지지해서 의원이 된 노동당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놀면서 정치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제도가 바뀌게 되었다. 비로소 대중민주주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지주 계급은 금융 자본화되어 기득권을 이어갔다.

 영국 국회의사당 전경

1911년 영국에서 국회의원에게 봉급이 지급되기 시작한 것은 대중민주주의 시대의 출현과 궤를 같이 한다.



영국 의회에 붉은 선이 있는 사연

영국의 의회는 여야가 서로 마주앉아 몇 미터 거리에서 서로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양측의 앞에 각각 붉은 선을 그어 놓은 것이다. 이것을 검선劍線이라고 하는데 의원들이 연설 도중 절대로 이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당시 의원들은 칼을 차고 있었는데 흥분해서 검을 뽑더라도 칼이 상대편에 닿지 않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의회에서는 칼부림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귀족·젠트리 의원들도 자신의 이념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코 젠틀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에도 이 전통은 유지되고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첨예한 계급 갈등이나 논쟁이 의회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때 이 붉은 선은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치인은 나라 살림 흥망을 다루는 직업인

얼마 후면 우리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실시된다. 정치도 직업이다. 그들은 희생하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대변하여 자신의 정책, 즉 이념과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직업인이다.

 
  그러나 그들이 특정한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대표자가 아니라 이익 집단일 뿐이다. 그래서 투표가 중요하다. 적극적인 참여로 유권자를 의식하게 하여 그들이 대표자의 역할을 하게 할 것인가, 무관심으로 그들 스스로 자연스럽게 이익 집단이 되게 할 것인가. 대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진짜 백수가 되는 것이 사회에 이익이 될 것이다. 나라의 흥하고 망함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창수의 <나라살림 흥망사>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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