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인데도 우리 사회가 워낙 요지부동인 탓일까? 한동안 불을 뿜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뜸해졌다. 그 사이에도 멀쩡한 젊은이들이 양심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하고 감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제19조는 이렇게 규정한다. 헌법재판소 판례를 보면,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자, “세계관, 인생관, 주의·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않아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의 윤리적 판단”을 뜻한단다.
우리 사회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징병거부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국민개병주의를 바탕으로 한 징병제도가 정착되면서,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이들에 대한 처벌도 본격화했다.
병역 거부자는 군 입대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과 입대 이후 총 들기를 거부하는 이들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겐 ‘병역 기피죄’가 적용되고, 후자에겐 ‘항명죄’가 적용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의 수위 또한 바뀌었는데, 이를테면 1950년대엔 처벌 기간이 길어야 1년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 시대가 열리면서 형량이 점차 가혹해져, 한 사람에게 2~3차례 실형이 선고돼 모두 5~6년씩 옥살이를 하는 이들도 허다해졌다.
평화주의자 오태양씨를 필두로 2001년께부터 젊은이들이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이 잇따랐지만, 예전부터 그랬듯 거부자 대부분은 지금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다. 병역 거부의 ‘대중화’와 함께 3년씩 일괄 선고되던 거부자에 대한 형량도 병역 면제 기준인 1년6개월로 짧아졌다.
지난 6월 말 현재 수감돼 있는 병역 거부자는 모두 900명이 넘는다. 병역 거부자와 후원인들의 모임인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임재성씨는 “(이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닌 거부자는 현재 9명이 수감돼 있으며, 이밖에 재판 절차를 밟고 있는 거부자도 5명이 있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이들은 분단국가라는 ‘현실’과 대체복무 신청자 과잉으로 인한 현역병 부족사태라는 ‘우려’를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국’임에도 지난 2000년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한 대만의 사례는 이들의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증명해준다.
대체복무를 현역 복무기간의 1.5배로 정한 대만에선 제도 시행 첫 해 신청자가 되레 모자라 실무자들이 애를 태웠을 정도란다. 또 시행 2년째 부터 전체 입영대상자(약 12만명) 가운데 10% 안팎의 젊은이들이 대체복무 신청을 하고 있는데, 대체복무 인원을 만 명으로 제한해 넘치는 인원은 추첨을 통해 선발하고 있단다. 제도 시행 전엔 신체검사에서 해마다 1만 여 명이 면제처분을 받았으나, 시행 뒤에는 5천명 이하로 줄었으니 전체 병역 대상자는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대체 복무자 만 명이 양로원·장애인시설 등 일손이 부족한 사회복지기관에서 근무하면서 복지 서비스의 질이 크게 향상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대만 의정서(우리의 병무청) 쪽은 이를 통해 약 30억 대만 달러(약 100억원)에 이르는 예산절감 효과를 보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현역 복무든 대체 복무든 모두 ‘나라를 위한 일’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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